항목 ID | GC023004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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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萬運 |
영어음역 | Yi Manun |
이칭/별칭 | 원춘(元春),묵헌(黙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헌규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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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
성별 | 남 |
생년 | 1736년 |
몰년 | 1820년 |
본관 | 광주 |
대표관직 | 통정대부 첨추(僉樞) |
[정의]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本貫)은 광주(廣州). 자는 원춘(元春), 호는 묵헌(黙軒). 이당(李唐)의 차자 이집(李集)을 일대(一代)로 하고 좌통례공 이극견의 차자 승사랑 이지(李摯)를 칠곡 입향조로 하는 광주이씨이다. 귀암(歸巖) 원정(元禎)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동지(同知) 이동영(李東英)이고, 어머니는 의성김씨, 부인은 평산신씨이다.
[활동사항]
1736년(영조 12)에 태어나 생원시를 거쳐 1777년(정조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주부(主簿)·좌랑(佐郞)·도사(都事) 등을 역임했다. 경종 연간의 신임옥사 때 4대조 이담명(李聃命)이 앞서 숙종 연간의 경신환국 때 희생된 자신의 아버지 귀암(歸巖) 이원정(李元禎)의 원수를 갚으려 하였다는 죄목으로 형벌 받은 일로 인하여 벼슬길이 막혔다. 1795년(정조 19)에 특별한 교지로 불러 인견하고는 하교하기를 “이제야 스승 삼을 선비를 얻었다.” 라고 하였다. 드디어 지평(持平)·안의현감·정언 등에 이르렀으나 요직에는 나아가지 못하였고. 벼슬은 통정대부 첨추에 그쳤다. 문장과 덕망이 뛰어나고 높아 유장(儒匠)이 되었으며, 천문·지리·역산(曆算)·명물(名物) 등에 밝았다.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 살았다.
[저술 및 작품]
『증보동국문헌비고(增補東國文獻備考)』를 9년간에 걸쳐 편찬하였으며, 저서로 『묵헌문집(黙軒文集)』 등 유집(遺集) 수십 권이 있다.
[묘소]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관기촌 앞에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