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계마을의 줄다리기는 마을 자체에서 연례적으로 행했던 ‘애기줄’, ‘청년줄’ 형태의 줄다리기와 외부 집단의 참여와 더불어 3년마다 행했던 ‘귀줄’ 형태의 줄다리기가 1946년까지 공존해왔다. 목계마을은 충북선 철도가 가설된 1930년대 이전까지는 남한강 수운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역사, 지리적 환경으로 인하여 ‘귀줄’ 형태의 줄다리기가 전승할 수 있었다. 목계...
-
음력 정월 9일이 되면 목계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부흥당(富興堂) 당고사(堂告祀)가 해마다 열린다. 예전에는 해질녘에 준비하여 11시 반에 끝을 맺었는데 요즈음은 점심때가 되면 시작한다. 목계별신제보존회(牧溪別神祭保存會) 사무실 앞에 도착해 보니 마을 어른들이 풍물 채비를 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는 풍물이 없었으나, 마을 어르신들이 예전에 하던 모습을 되찾아 보...
-
1910년을 전후하여 연초제조업이 크게 일어나 담배 연료인 황색종 잎담배의 수요가 급증하자 조선총독부 전매국에서는 황색종 재배를 계획하고 1910년 12월부터 산지조사를 실시했다. 1912년 황색종 산지 선정 당시의 조사에서도 충주는 미국의 황색종 산지인 버지니아주와 위도가 같고 농작물에 큰 피해를 미치는 기후변동이 없었고 교통도 편리한데다 상당한 면적의 대평야는 지형과 배수가 양...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가양리(佳陽里)와 춘문동(春門洞)에서 ‘가(佳)’자와 ‘춘(春)’자를 따 ‘가춘(佳春)’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엄정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주리(上酒里)·하주리(下酒里)·가양리·백야동(白也洞)·춘문동의 일부가 통합되어 가춘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 가양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가춘리 가양에서는 원래 추수가 끝날 무렵인 음력 11월 5일 산신제를 올렸으나 1970년경에 마을 청년들이 마을 개발에 장애가 된다며 서낭당과 산제당을 부수고 불을 놓아 폐지되었다. 1970년대 초반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미신 타파를 이유로 전국의 제당들이 곤욕...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 상주동 미락골·득골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 주동에서 왼쪽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옥녀봉 아래 미락골과 득골이 있다. 그 중 왼쪽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 미락골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옆 마을인 득골과 격년제로 음력 10월 3일에 산신제를 지낸다. 옛날에는 제일(祭日)은 음력...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 수랫말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 지내던 마을 제사.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 수랫말은 가양교를 건너 오른쪽에 형성된 마을로,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 저녁 5시경에 산신제를 지내왔다. 마을 뒷산에 산신당이 모셔져 있었으나, 1978년 새마을사업의 일환으로 미신 타파가 강조되자 산신당이 철거...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 주동 주민들이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 주동은 주동교 건너에 형성된 마을로, 술엣골이라고도 부른다. 이 마을에서는 가뭄이 심할 때면 마을 뒷산에 있는 용터지기라고 불리는 우물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마을 뒷산에 한 평 정도 되는 우물이 있었는데 아무도 그 깊이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고...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 주동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 지내는 마을 제사. 주동에서는 양력 10월 3일 오전 11시부터 산신제와 서낭제를 지낸다. 마을에서 1.5㎞ 떨어진 뒷산 중턱에 있는 산제당에서 산신제를 먼저 지내고 내려와 마을 입구에 있는 서낭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서낭제를 지낸다. 그러나 1972년 강원도 남부와 충청북도...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 주동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태실비. 가춘리 주동 태실비는 1983년 4월에 발견되었는데, 비문과 『태봉등록(胎封謄錄)』, 『선원계보(璿源系譜)』를 통해 비의 주인공이 인조의 후궁인 조귀인(趙貴人) 소생의 1남 숭선군(崇善君) 이징(李澂)과 2남 낙선군(樂善君) 이숙(李潚)임이 밝혀졌다. 1643년 숭선군을 장태(藏胎)하고 1645...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유봉리와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운남리에 걸쳐 있는 산. 해발고도 598m로서, 원주시와 맞닿아 있는 충주시 최북단 경계부를 이루는 주요 산 중 하나이다. 산 자체는 크지 않으나 이곳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옥녀봉[730m]·오청산[652m]·천등산[802m]으로 뻗어 있고, 서쪽으로는 소태재를 넘어 국사봉[508m]·묵봉산[470m] 등 중소 규모의...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서 갓 밑동을 발효시켜 만드는 향토 음식. 충주시 엄정면은 예부터 물산이 집중되고 많은 인파를 끌던 곳으로 다양한 음식 문화가 발달하였다. 특히 목계 지역은 남한강이 인접해 있어 예부터 내륙의 항구라 칭하였으며, 강변은 토질과 물 빠짐이 좋아 갓과 같이 좋은 채소를 많이 생산해 왔다. 또한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은 장사가 잘 되고 육류...
-
1940년에 세워졌던 담배 수납장이 특이하게 생겨 많은 사람들이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윤우식 씨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6·25전쟁 때 불타버렸고 미군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1950년대(혹은 1960년대) 말에 재건축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그 인터뷰 과정에서 영단 방앗간의 창고 건물의 상량문이 남아 있어서 그...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괴정리(槐亭里)와 동도리(東道里)에서 ‘괴(槐)’자와 ‘동(東)’자를 따서 ‘괴동(槐東)’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엄정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행정리(杏亭里)·동도리·괴정리·족동리(簇洞里)가 통합되어 괴동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조선 말기 하마비.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궁가, 문묘 등의 앞에 세워놓은 표석으로,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게 하였다. 충주 지역에는 충주향교 앞의 하마비와 충주 경종 태실 앞의 하마비가 있다. 충주 경종 태실 앞에 1689년(숙종 15)에 세운 원자아기씨 태실비와 1726년(영조 2)에 세운 경종...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행정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행정은 괴동리 비석마을에서 추평교를 지나 도로 우측에 형성된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오래 전부터 음력 정월 보름날 서낭제를 지내고 농악을 앞세우고 집집마다 돌며 복을 기원하는 걸립을 해왔다. 행정 중앙에 있던 느티나무 신목은 수명이...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는 1912년에 세워진 장로교 교단으로 ‘예장통합’이라고도 하며, 신학적 성격으로는 보수와 진보를 포용하는 중도적 입장이다. 하느님의 사랑과 말씀을 전도하고 성경 말씀을 실천하며, 예배와 성경에 대한 교육을 통하여 지역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5년 11월 23일 청년 2...
-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교육자. 김규회는 1935년 11월 지역민의 교화와 지역 문화의 발전에 대한 뜻을 품고 초가집을 빌려 야학을 시작하였다. 1937년 4월에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사재를 들여 개량 서당을 건립하였다. 1940년 3월 19일 엄정공립심상소학교 부설 추평간이학교가 설립될 때 가산과 서당 재산을 희사하여 지역 교육의 기반을 갖추는 데 기여하였다....
-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행정가. 김사묵은 1856년 4월 9일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서 출생하였다. 1885년(고종 25)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일본유람신사 단원으로 활약하였다. 1897년 중추원 참서관을 지냈고, 1902년 평리원 수반검사,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 1903년 경무청 경무국장을 지냈고, 1905년 3월 경무청 경찰국장을 지냈다. 1907년 경무...
-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 및 직동과 살미면 향산리를 연결하는 고개. 직동(일명 곧은골, 고든골)에서 살미면 향산리 난영이마을(일명 나냉이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나냉이재는 대림산[489m] 동쪽 능선에 있는 고개로, 북쪽으로 남산[636m]과 이웃하고 있다. 발티와 함께 충주시 남동부에서 소백산지로 들어가는 길목이었으며, 마즈막...
-
1960년대 팔당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서울에서 올라오던 황포돛대를 세운 상선들과 영월, 단양 등지에서 서울로 향하던 뗏목들이 목계나루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 목계의 상경기는 침체의 늪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목계나루에는 남한강을 건너 서울로 가는 손님들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와 찻배가 있어서 목계의 중요한 수입원 구실을 하였다. 이러한 목계마을이 회복 불능의 상태...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논동(論洞)과 강현리(江峴里)에서 ‘논(論)’자와 ‘강(江)’자를 따 ‘논강(論江)’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엄정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강현리 상갈동(上葛洞)·하갈동(下葛洞)·논동이 통합되어 논강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논강리 강현마을에 있는 마애비. 자연암석을 이용하여 비의 윤곽을 만들고 글자를 새긴 마애비이다. 마애비는 일반적으로 경승지에 조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논강리 강월동천은 엄정면 논강리 강현마을 어귀에 위치하여 마을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소태면에서 엄정면소재지로 통하는 중간 강현리 어귀에 강현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논강리에 있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논강리 유물산포지는 엄정면 논강리 동촌마을 앞 동촌들 밭 경작지에 위치한다. 좌우로는 법고개 등의 구릉이 자리하고 있다.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가 충주시의 문화유적분포지도를 발행하기 위해 충주관내 전 지역을 지표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유물은 경질토기류 17여 점...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논강리 왜째마을 앞에서 발원하여 목계리로 흐르는 하천. 엄정면 논강리 차돌고개 부근에서 발원하여 마을 앞을 흐른다고 해서 논강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길이는 약 5㎞의 소하천이다. 엄정면 논강리에서 시작하여 목계리에서 영덕천으로 흘러드는 남~북 방향의 소하천이다. 주변의 원곡천이나 구룡천에 비해 길이나 유역 면적도 상당히 작으며, 배후산...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논강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에 한 처사가 제자인 김명천 통제사(統制使)와 함께 진리를 논하던 곳이어서 논잇골이라 하였다 한다. 논잇골은 이(理)를 논(論)한 곳이라는 뜻의 한자어 ‘논이’에 ‘골’이 결합되면서 사이시옷이 삽입된 것이다. 논잇골의 한자어 표기는 논동(論洞)이다. 논동은 논익골로 불리기도 하는 데 논잇골의 ‘ㅅ’이 ‘골’의 ‘ㄱ’에...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서 담배를 소재로 부르던 유희요. 「담바귀 타령」이라고도 하는 「담배 노래」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는 광해군(光海君, 1608~1623) 원년에 일본으로부터 담배가 들어왔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에 퍼졌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임진왜란 때 동래·울산 지역에 오래 주둔하던 왜병에 대한 반발과 적의를 은연...
-
목계마을 강변에서는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연날리기, 윷놀이, 망월 돌리기, 쥐불놀이, 대보름 망월제, 달집태우기 등 푸짐한 행사가 열린다. 목계문화보존회와 충주문화원이 주관하는 이 행사는 목계마을의 문화와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리라고 본다. 연날리기는 충주 시내 일원에서 자신들이 만들어 가지고 온 연들을 가지고 멀리 날리기로 겨루기도 하...
-
금가면 하담리와 경계를 이루는 강변에 두무소가 있다. 탄금대 열두대 앞에서 푸른 물결을 헤치며 배를 타고 창동 마애불, 중앙탑, 충주 고구려비를 지나 내려오면 충주 조정지댐이 가로막는다. 지금은 댐으로 가로 막혀있지만, 옛날에도 여울이어서 큰 배가 다니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이 여울을 지나 모현정을 바라다보고 내려오면 물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강 한가운데에 홀로 강...
-
부흥사 돌탑을 찾아가는 길은 멀지 않지만 처음 찾아가기는 쉽지 않다. ‘중원목계문화보존회’ 사무실에서 뒷길을 돌아가면 ‘부흥사 가는 길’이라고 쓴 조그마한 팻말이 서 있다. 이것을 지나치면 다른 곳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한다. 팻말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골목길을 돌아 뒤쪽으로 경사가 급한 비탈길을 한참 올라가면 조그마한 절인 부흥사가 보인다. 그리고 뒤쪽으로 돌탑이...
-
목계마을회관 건립에는 다른 마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안타깝고도 훈훈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목계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김현해 씨를 통해 목계마을회관 건립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목계리 326-4번지에 사시던 박옥순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후 홀로 남은 지 수십 년을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 외롭게 살아오셨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병환을 얻어 병...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면화동(免禍洞)[일명 미락골]은 지도에 미락골로 표기되어 있다. 지역 주민들은 미레골, 미락골, 미낙골 등으로 부르고 있다. 가춘리(佳春里)의 행정리인 주동에 딸려 있는 자연마을로, 주동에서 술옛골천을 따라 올라가다 득골 직전에서 오른쪽 골짜기로 따라 들어가면 있는 마을이다. 면화동은 동학농민운동 때...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에 있던 초등 사립학교. 엄정면 지역 주민의 문맹 퇴치와 교육 보급을 통한 인재 양성을 교육목표로 하였다. 1909년 발간된 『한국충청북도일반』에 의하면, 엄정면에는 2개의 사립학교가 있었던 바 이웃한 목계리의 안종화가 설립한 통명학교와 미곡리(현, 엄정면 입구의 윤민걸 가옥 소재의 자연부락)의 명신학교이다. 1908년 11월 4일...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서 옛날 뱃길이 무사하고 내륙의 장사가 잘 되기를 비는 민속 의례. 목계 지역은 충북선 철도가 가설된 1930년대 이전까지 남한강 수운의 중심지였다. 목계 지역이 남한강 수운의 중심지로 부상하여 성황을 누릴 수 있었던 직접적인 원인은 가흥창(嘉興倉)의 설치와 존속에 있다. 가흥창은 1465년(세조 11)에 설치되어 개항 전까지 존...
-
목계교(牧溪橋)를 건너 목계마을로 접어들면, 왼쪽 산 바위 밑에 목계가 어떤 마을인지를 금방 알 수 있게 하는 비석군(碑石群)이 있다. 샛강에 다리를 놓아 제하공덕(濟河功德)을 칭송한 ‘밀양박공해성송덕비(密陽朴公海成頌德碑)’, 개인 재산을 털어 목계국민학교를 설립한 공을 기려 마을 사람들이 세운 ‘파평윤공해영송덕비(坡平尹公海英頌德碑)’를 비롯하여 목계마을의 유래와 목계...
-
목계마을의 사라져가는 전통 문화 유산을 연구·보존하자고 일어나던 중 충주문화원에서 후원하여 2004년 7월 20일에 목계전통문화보존회 창립 총회가 문화원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 총회에서 초대 회장으로 변태길 회장(전 신명중학교 교장)이 선임되었다. 변태길 초대 회장(2004.7.20.~2006.12.31.)에 이어 2대 회장은 김경렬 회장이 맡고 있다. [부록...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서 매년 9~10월경 치르는 민속놀이. 목계 줄다리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고증할 수는 없지만, 조선 후기에는 상품 화폐경제가 발달하고 전국이 하나의 유통망으로 연결되면서 마을의 안녕과 뱃길의 무사함을 기원하던 별신제와 더불어 성대하게 치러졌다. 민족 문화가 크게 탄압받던 일제강점기에 명맥이 잠시 끊겼다가 광복 이후 2회 실시되...
-
1930년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조선국세조사보고’의 직업별 인구 항목에 보면, 충주군 전체 수산업 인구 25명 중 엄정면에서 수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9명이었다. 물론 엄정면에서 강을 끼고 있는 마을은 목계 밖에 없었으므로 이 9명은 모두 목계 주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어업에 종사하는 마을 사람들이 계속 있었으며 최근까지 목계에서 어업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
1930년대에 철도와 도로망이 개설된 후 수운을 기반으로 성장해 가던 남한강 주변의 많은 포구들이 쇠퇴의 길을 걷게 되지만, 목계는 나름대로 새로운 변신을 하며 시대적 변화에 적응해 나갔다. 6·25전쟁 이후까지도 수운의 기능을 유지하였다. 1960년대 초 팔당댐 공사로 수로가 막히기 전까지는 돛단배가 오르내렸고 강원도 정선 등에서 생산된 목재를 서울로 운반하는 뗏목은 수시로 내려...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계동과 묵밭골의 명칭을 따서 목계라 하였다고 하나 문헌에는 그 이전부터 목계라고도 하였다. 본래 충주군 엄정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말·웃말·묵밭골·건너말 등이 통합되어 묵계동으로 개칭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되었고, 1995년 1월 1일 중...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주민들이 비가 오기를 빌며 지내던 마을 제사. 목계 강변 상류 됫섬 옆에 있는 두무소(杜舞沼)[일명 두모소]의 용바위[龍岩]에서 지냈는데, 근래에는 기우제를 지낸 적이 없다. 엄정면 목계리에서는 아무리 가물어도 하지(夏至) 전에는 기우제를 지내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으나, 가뭄이 계속되면 노인들이 기우제를 발의하였다....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목계리는 강원도 일대에서 생산된 뗏목들이 내려오다 머물기도 하고 충주 지방이 세곡을 운반하는 조운의 중심지가 되면서 강가 항구로 발전하였다. 그 때문에 배들의 안전한 운항을 비는 기원제가 열렸을 것이다. 아마도 이때 모시던 용왕신과 마을 입구를 지키던 서낭신이 언제...
-
목계마을의 생활상을 알아보기 위해 목계정류소(문화수퍼)에서 목계1리 전·현직 이장인 김현해 씨와 강광남 씨를 만나 목계마을의 문화와 관련하여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낭각시는 여러 번 바뀌었다고 한다. 아주 오래 전은 알 수 없고, 근래에는 족두리를 쓴 화상이 있었는데 없어진 후 흰옷에 고깔을 쓴 화상을 잠깐 모셨으나 마을 사람들의 여론이 원래 모습과 너무 다르...
-
목계별신제 보존회장을 지낸 변태길 교장선생님의 부인인 김영자 씨는 목계에서 생산되는 갓의 밑동을 이용하여 채나물을 맛있게 요리하는 재주를 가졌다. 이 소문이 온 동네에 퍼져 목계 부녀회원이면 누구나 요리 방법을 배워 손님이 오면 특별식을 내놓는다고 한다. 갓채의 요리 방법은 다음과 같다. 〈준비물〉:갓무 밑동, 설탕, 식초, 참기름, 소금 〈만드는 순서〉 1) 갓무 밑동을 아주 가...
-
목계마을 사람들은 별신제의 경비 추렴과 특히 줄다리기 줄을 만들기 위해 수백 토매의 짚을 자체 공급해야 했고, 이러한 일은 제작 과정에서 협동심을 발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줄다리기에는 난장판이 곁들여지고 유흥과 놀이 문화가 주를 이루므로 주먹패도 있게 마련이었고 외지에서 드나드는 뱃사공들은 직업 특성상 행동이 거칠고 사나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목계 사람들이...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1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고난과 역경을 순수하게 예수교의 신앙심으로 이겨내고자 설립되었다. 1906년 3월 10일 모 선교사가 설립하였고, 1926년 조선예수장로교회 목계교회로 명의를 변경하였다. 1928년 황해 지역과 충청북도 지역 교회가 합병하여 조선기독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38년 신상철 교사가 담임을 하다가 3년...
-
목계의 뱃고사는 일년 내내 무사 운항을 비는데 목적을 두었다. 예전에는 제일(祭日)을 정월 특정일로 고정하였고 제장(祭場)을 나루터(선착장)로 삼았으며 선주나 뱃사람이 직접 제관이 되어 행례를 거행하였다. 그러나 1925~1930년 사이에 중부 내륙지역을 관통하는 도로가 개통되었고, 충주-조치원간 충북선 열차가 개통되면서 목계나루의 활기가 점차 시들해졌다. 또한 197...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미곡리(美谷里)와 내동(內洞)에서 ‘미(美)’자와 ‘내(內)’자를 따 ‘미내(美內)’가 되었다. 본래 충주군 엄정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미곡리·내동·후동(後洞)·장대리(場垈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미내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에 위치한 반공지사 추모탑.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반공지사 66명을 기리기 위하여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에 건립되었다. 탑이라고 이름하였으나 일반적인 불탑의 형태가 아닌 일종의 조형물로 볼 수 있다. 미내리 반공지사 추모탑은 6·25전쟁 때 자유를 수호하다 산화한 이 지역 반공지사 66위(位)를 봉안한 탑으로, 매년 6월 6일 현충일...
-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의료인이자 교육자. 민광식은 광복과 한국전쟁을 전후한 혼란기에 근대 미국의학을 근간으로 우리나라 외과의학의 틀을 갖추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민광식은 1912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나 엄정초등학교와 경복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제2고보를 거쳐 1936년에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하였다. 1937년부터 평양연합기독병원 외과에서 임상수...
-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자선사업가. 박해성은 밀양박씨 간의공 24세손으로 1862년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서 박치근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사서삼경을 통달하였고, 자상한 인품과 온후한 심성으로 마을과 지역주민을 위한 일에 항상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04년 당시 엄정면 목계나루터에서 선착장을 가려면 샛강을 건너야 했는데, 다리...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노변공원에 있는 박해성의 공덕을 기리는 비. 박해성(朴海成)은 목계 나루터에서 선착장으로 가려면 샛강을 건너야 했는데, 다리가 없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고 사재를 털어 돌다리를 가설하였고, 이에 1940년에 박해성가설석교비(朴海成架設石橋碑)가 세워졌다. 그러다 나루터가 제 구실을 못하면서 제방 밑에 비가 방치되자...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서 밤밭마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엄정면 괴동리 태봉 동북쪽에 밤밭 또는 행정이라고 하는 마을이 있다. 엄정면의 행정은 은행나무가 많아 행정마을로 불리는데, 전에는 이 마을에 밤나무가 많아서 마을 이름을 밤밭·율전·밤마루 등으로 불렀다. 「밤밭」 이야기는 밤나무를 심어서 지네를 물리쳤다는 괴수퇴치담이자 지명전설이다....
-
1945년 당시 충주 인근에서 벌채한 목재를 동량면 조돈나루에 모아 뗏목을 만들어 남한강 수로를 이용하여 서울로 운반하였다. 이때 뗏목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 마을 사람들이 상당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목계마을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살았고 아들인 권태희 씨의 죽마고우이기도 한 조일상 씨를 통해 권중대 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군청에 근무하던 권중대(權重大)[19...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찰. 백운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충주군 북쪽 태봉산에 있다고 하였다. 사원 입구 남쪽에 충주 경종 태실과 태실비가 있다. 백운암의 법당 안에는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이 있는데,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 및 대원사 충주 철조여래좌상과 함께 충...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백운암에 있는 고려 후기 청동 반자. 백운암은 1886년 진령군 여대감이 창건한 사찰로서, 이후 1977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사찰에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철불(鐵佛)과 탱화 등이 남아 있다. 철불은 백운암의 창건 기록으로 보아 후대에 다른 사찰에서 옮겨와 봉안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유물들과 함께...
-
목계마을에서 별신제나 백중놀이, 단오 등의 행사가 있을 때 풍물을 놀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쓴 농기(農旗) 앞에서 흥을 돋우던 놀이 중의 하나가 ‘제 머리 마빡’이다. ‘제 머리 마빡’은 허수아비 몸체에 큰 바가지를 연결한 형태로 제 손과 발이 인형의 제 마빡(이마)을 칠 수 있었다. 인형의 이러한 특성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유래담...
-
부흥산 돌계단은 급경사여서 양쪽에 만들어 놓은 손잡이를 잡고 올라가야 안전하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 한 숨을 돌리면 목계마을 주민들이 동제를 지내는 부흥당이 앞을 막아선다. 부흥당 문은 항상 자물쇠로 잠겨 있다. 문을 열면 당내에는 세 분의 신상이 모셔져 있다. 중앙 정면에는 서낭신도(城隍神圖)가, 정면에서 보아 서낭각시의 오른쪽에는 산신도(山神圖)가, 왼쪽에는 용왕신...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서 돌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엄정면 목계리 강변에 목계별신굿의 해당 신격을 모신 ‘부흥당’이 있으며, 산속에는 ‘부흥사’라는 사찰이 있다. 이 사찰에는 최봉출 옹이 쌓은 돌탑이 있는데, 이를 ‘부흥사 돌탑’이라고 부른다. 이를 증거물로 삼고 있는「부흥사 돌탑」이야기는 돌탑을 쌓게 된 내력을 담은 축조전설이다. 200...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서 붕어를 재료로 한 향토요리. 엄정면은 과거 목계나루에 세곡선과 상선이 드나들고 보부상들로 붐비었을 때에는 상주(常住) 인구뿐만 아니라 유동 인구도 많아 상업이 활기를 띠었다. 그러다가 경부선 철로가 개통되고, 목계다리가 놓이면서 물류유통의 중심이 수로에서 육로로 바뀌었고 목계는 급속히 쇠락하기 시작하였다. 남한강이 흘러가는...
-
목계2리 이장인 우수인(55세) 씨를 통해 의사자 유현상 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2007년 7월 1일, 이날 많은 사람들이 목계강 변에 나와 더위를 피하기 위해 강물에 들어가 목욕을 하거나 보트에 타고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또 낚시 배를 타고 강 깊숙이 들어가 낚시를 하는 강태공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 일대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강물이 불어나기 시작...
-
목계 별신제(別神祭)는 마포나루에서 목계나루에 이르는 뱃길의 무사한 운항과 목계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이다. 보통 3~4년을 주기로 4월 초파일을 전후한 2~3일 동안 영신굿-오신굿-송신굿의 순서로 굿판을 벌였다고 한다. 충주 지역은 물론 전국 8도의 무당들이 모여 제의를 주관하였다. 무엇보다도 전국의 유명한 무당들이 모여 기예를 선보이면서 다양한 축원을 했기 때문에 각지에서...
-
목계마을에서 남한강가로 나가면 긴 강둑이 남한강과 목계마을을 구분한다. 강둑 아래로 난 길을 내려가면 넓은 둔치가 있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 행사가 열리고 목계별신제가 열릴 때는 줄다리기가 시연되는 곳이다. 주말이 되면 산악 모터싸이클을 즐기는 동호인들이 모여 실습을 하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한다. 또 가족 단위로 모임을 갖는 모습은 정겹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백사장...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성마루는 ‘성’과 ‘마루’로 나눌 수 있다. ‘성’은 ‘城’의 뜻이며 ‘마루’는 중세 국어 ‘[宗]’로 소급할 수 있다. ‘’는 ‘산등성마루, 재, 고개, 산봉우리’ 등에 쓰이는 지명 요소로 ‘큰, 넓은, 으뜸’ 등의 뜻을 지닌다. 그러므로 성마루는 성처럼 높은 곳에 크고 넓게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으로...
-
목계는 본래 충주군 엄정면 지역으로 산계동(山溪洞) 또는 목계리로 불렀다. 산계동의 산(山)은 ‘뫼’ 혹은 ‘모이’로 불리다가 ‘목’으로 변한 것으로 보이는데, 마을 뒷산인 갈산이 ‘갈매기’로 부르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현재와 같은 목계리의 지역 구성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통해 전통적으로 목계를 구성하던 여러...
-
1960년대에 일반적인 농촌에서는 추석이나 설 때 신파극(연극)을 하거나 노래 자랑(콩클 대회) 등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목계마을에서도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이런 행사를 추진하곤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목계 별신제 보존회장을 지낸 변태길 교장선생님께서 신파극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변태길 교장선생님은 “1961년 1월 설날을 즈음한 연극을 준비할 때 일이었습니다. 마을에...
-
목계교를 건너 목계마을 서쪽 입구 노변에는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모아 고마운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덕비들이 있다. 그러면 비문을 중심으로 그들의 공덕을 알아보자. 첫째 목계줄다리기·별신제 유래비와 같은 영역에 세워진 박해성[1862~1923] 송덕비이다. 뒤쪽에 밀려있는 화강암 비석의 전면에 ‘박해성씨가설석교(朴海成氏架設石橋)’, 우측면에 ‘을축 11월(乙丑十一月)’...
-
목계마을에서 원주 쪽으로 향하다가 보면 마을이 끝나는 곳에 강변횟집이 있고 그 앞에 노변공원이 있다. 노변공원에는 마을 사람들이 세운 목계나루터비, 김현중의 ‘아! 사랑하는 목계’ 시비, 이효승의 송덕비, 현대의 대표적인 시인인 신경림(申庚林)의 ‘목계 장터’ 시비가 서 있다. 우리 고장의 정서를 고스란히 간직한 ‘목계장터’는 그 옛날 목계의 영광스런 모습과 나루를 무대...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신대리(新垈里)와 구만리(九萬里)에서 ‘신(新)’자와 ‘만(萬)’자를 따 ‘신만(新萬)’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엄정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대리·구만리·가자동(柯子洞)·두리(斗里)·탄방리(炭坊里)·미곡리(美谷里)·족동(簇洞)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신만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족동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서낭제. 마을 앞 냇가에 있던 400여 년 된 느티나무를 신목으로 모시고 서낭제를 지내다가 1975년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미신을 타파한다는 명목으로 베어 팔고 폐지하였다. 1980년부터 마을 앞 길가에 있는 400여 년 된 느티나무를 신목으로 모시고 서낭제를 지내고 있다. 4...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탄방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탄방은 엄정면 소재지에서 추평저수지 쪽으로 올라가다가 미내리를 지나 삼거리에서 다리를 건너 산척면 송강리 쪽으로 가면 산 밑에 형성된 마을이다. 오래 전부터 음력 정월 보름 전후에 택일하여 서낭제를 지내오다가 1960년대 이후 지내지 않고 있...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용산리에 있는 사립 중학교. 21C를 주도할 긍지 높고 당당한 사람을 추구한다. 기초 교육의 충실로 지식 기반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사람, 양심·규칙·예의를 잘 지키며 공동체 의식이 투철한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춘 교양 있는 사람, 애국심이 강하고 목표 의식이 뚜렷한 진취적이고 자주적인 사람, 건강한 몸과 강인한 의지를...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에서 신털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엄정면 신만리 탄방부락의 성마루마을에서 남동쪽으로 600m를 가면 주막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보면 신털봉이란 낮은 산봉우리가 있고 그 맞은편에 큰 산소가 보이는데 이것이 양정승의 묘다. 「신털봉」 전설은 양정승의 장례 날 마침 비가 와서 조객들의 신발에 흙이 묻어 묘지 건너편 언덕에...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에 있는 조선 말기 사찰. 신흥사는 1890년 오영근에 의해 엄정면 신만리 장병산 자락에 처음 건립되었으나 절의 경내·외에서 사찰 관련 유물들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본래 이곳은 고려시대 절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영월(李泳月)이 1924년 법당을 중창하면서 신흥사라 이름 붙였고, 1952년에 중창하였다. 그 후에도 1976년...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억정사지에는 현재 보물 제16호로 지정된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가 남아 있어 고려시대 번성하였던 사찰 터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절터 주변은 모두 경작지로 변하여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전하는 바에 의하면 예전에는 석탑의 부재 등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현재 사찰 터에 전하는 유일한 유물인 충...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용산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세상에 소망을 주는 교회, 감동 있는 예배, 행복한 교제가 있는 교회, 열정 있는 선교, 지속적인 교육훈련을 통한 교인 성숙, 이웃을 향한 섬김의 교회가 되기 위해 건립되었다. 1954년 6월 26일 교회를 창립하였다. 1956년 10월 첫 예배당을 현 엄정초등학교 뒤에 신축하...
-
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억정사에서 엄정면이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원래 이곳에 엄정사라는 사찰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현재 엄정사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으나 엄정면이라는 이름도 억정사 보다는 엄정사라는 사찰 이름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본래 중원군 지역으로, 엄정면이라 하여 노곡(蘆谷)·능리(陵里)·태산(台山)·율리(栗里)·산계(山溪)·상론(...
-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엄정면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충청북도 충주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주덕읍], 12개 면[살미면·수안보면·대소원면·신니면·노은면·앙성면·중앙탑면·금가면·동량면·산척면·엄정면·소태면], 12개 행정동[성내/충인동·교현/안림동·교현 2동·용산동·지현동·문화동·호암/직동·달천동·봉방동·칠금/금릉동·연수동·목행/용탄동] 중 엄정면의 행정 사...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 천주교 교회. 엄정면 관내에 있는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돕고자 목행동성당 엄정공소를 설립하였다. 1958년 교현동성당의 한테레사가 엄정면 미내리에 머물면서 전교를 하고, 집을 사들여 공소로 사용하였다. 1964년 현재의 위치에 공소 건물을 지어 준공하였으며, 이규환 누갈따가 회장으로 있으면서 공소...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용산리에 있는 재래시장. 엄정장은 1770년(영조 45) 간행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250여 년 전부터 장이 서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엄정장이 최초 어디에 섰던가는 문헌에 기록된 바가 없으나 지금의 엄정면 괴동리 어느 지역인가에 열렸을 가능성이 높다. 세월이 흐르면서 엄정면의 중심지...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용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애국 애족하는 정신이 몸에 밴 애국 생활, 민주 시민으로서의 예절과 질서를 익혀 바르게 행동하는 도덕 생활, 실험 실습 기능과 탐구 과정을 익혀 과학적 사고력과 과학적 생활 태도를 기르는 과학 생활, 기초 학력을 기르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의적 생활, 보건 안전 생활과 체력 단련에 힘써 튼튼한 몸과 마음을 기르는 건강...
-
충청북도 충주시에 엄정면 목계리에 있었던 엄정초등학교 목계분교장. 다양한 생활 경험을 통하여 몸과 마음의 균형을 갖춘 개성을 추구하는 개성인, 자기 주도적인 기초 학습 능력을 길러 세계화·정보화에 적응하는 능력인, 적성·능력·진로에 관심을 갖고 폭넓은 학습 경험을 통하여 자기 진로를 개척하는 개척인, 민족정신과 전통문화를 애호하는 정신을 길러 미래의 가치를 창조하는 창조...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용현리(龍峴里)와 토산동(兎山洞)에서 ‘용(龍)’자와 ‘산(山)’자를 따 ‘용산(龍山)’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엄정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토산동·법현리(法峴里)·향림동(香林洞)·목동(牧洞)·용현리·장대리(場垈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용산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용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고묘군. 용산리 고묘군은 1998년 충주시 문화유적분포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으로, 주변 봉분의 분포를 통해 조선시대 고묘로 추정된다. 엄정면소재지에서 엄정교회와 엄정초등학교 사이의 농로를 따라 오르다 오른쪽 논을 끼고 400m 정도 들어서면 과수원 뒤쪽의 경작지 사면에 위치한다. 경작지 주위로 일부 석재가 보이...
-
목계 줄다리기에 사용하는 줄을 만드는 데는 엄청난 짚이 들어간다. 아마 수백 토매가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협동심과 단결심이 발휘되지 않으면 줄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마침 목계2리 이장을 맡은 우수인 씨가 줄 제작을 책임진다고 해서 찾아보고 인터뷰를 하기로 하였다. 한우농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상당히 바쁜 가운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말씀을 해주셨다....
-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육영사업가. 우범성은 1938년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에서 운암 우병훈의 아들로 태어났다.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에 명지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64년에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있는 신명중학교 교사로 교직에 발을 내딛고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975년 부친의 유업을 이어 학교법인 신명학원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
-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군인. 우병옥은 1925년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에서 태어나 엄정초등학교와 경성공립공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46년 육군사관학교를 1기로 졸업하여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1948년 육군본부 정보국 차장과 인사국장을 거쳐 1949년 중령계급으로 제3사단 참모장이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김포지구 전투사령관으로 전투...
-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육영사업가 우병훈은 1919년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에서 아버지 천곡 우선덕과 어머니 원주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3년 엄정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38년 일본에 있는 흥문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49년 농촌 계몽과 민족중흥의 기치를 걸고 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였고, 재단법인 신명학원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원당리(院堂里)와 월곡리(月谷里)에서 ‘원(院)’자와 ‘곡(谷)’자를 따 ‘원곡(院谷)’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엄정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당리·월곡리·옥성리(玉城里)·유현리(杻峴里)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원곡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원곡리 옥성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옥성에서는 옛날부터 마을 입구의 서낭당에서 서낭제를 지내 오다가 100여 년 전에 대홍수로 말미암아 마을 전체가 큰 피해를 입고 서낭당도 매몰되었다. 현재 마을회관 건너편이 모두 쓸려나가 농토가 없어졌는데 지금도 땅 밑을 파보면 다른 지역과 달리 자갈이...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원곡리 원당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충주시 엄정면 원곡리 원당(일명 하일마을)은 추평저수지 쪽으로 올라가다가 탑평삼거리에서 좌측 길을 따라가면 원곡저수지 위와 아래에 형성된 마을이다. 오래전부터 음력 정월 14일에 당고사를 지내왔다. 원당마을 앞산 중턱에 위치한 당집이 제당이다. 당집...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원곡리 하일마을에 있는 고대 유물산포지. 원곡리는 원당마을·월곡마을·옥성마을이 병합되어 이루어진 행정구역으로 원당과 월곡에서 이름을 땄다. 원곡리의 행정리로는 옥성과 하일이 있다. 옥성은 돌탑으로 유명하며, 하일은 한반도를 닮은 마을자랑비를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하일마을은 괴동 행정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계속 올라가다가 탑평삼거...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원곡리에 있는 저수지. 원곡저수지는 충주시 엄정면, 제천시 백운면, 강원도 원성군 귀래면의 경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옥녀봉(玉女峯)[600m]과 서쪽의 갈미봉[548m: 일명 관모봉] 사이의 하일골 골짜기에서 남류하는 웃하일천과 외춘이고개의 외춘이골 골짜기에서 남동류하는 다리실천 등이 하일마을 다리실에서 합류하여 원곡천(院谷川)이 되어...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원곡리 소림마을 갈미봉에서 발원하여 율능리 영덕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엄정면 원곡리 소림마을 갈미봉에서 발원하므로 원곡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길이는 약 15㎞ 정도이며, 원곡천은 영덕천으로 유입되어 남~북 방향의 지류들 중 가장 길고 넓은 곡저평야를 이루고 있다. 하천 내부에는 가춘천·유봉천·하월천 등 소지류들이 유입하고 있어 인접한 송...
-
목계 주민들이 매년 정월 9일 당고사를 모시는 부흥당은 목계에서 원주로 가는 길가에서 봉제산(부흥산) 쪽으로 가파른 계단을 30m쯤 올라가면 있다. 단칸 목조와가(木造瓦家)로, 그 규모가 크지는 않다. 아마도 위쪽에 바위가 있어 넓은 터를 만들 수가 없었기에 그렇게 된 것 같다. 올라가면서 오른쪽 바위틈에도 약간의 제물을 차리고 치성을 드릴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유봉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유봉교회는 엄정면 유봉리 221번지[유봉길 251]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총회) 소속의 규모가 작은 교회로, 충주 지역에서는 가장 이른 1903년에 건립된 기독교 교회이다. 하나님의 성전을 구축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평화가 가득한 나라를 만드는 등 일제강점기의 기독교 탄...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유등리(柳等里)와 중봉리(中峰里)에서 ‘유(柳)’자와 ‘봉(峰)’자를 따 ‘유봉(柳峰)’이 되었다. 1583년(선조 16)부터 밀양박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하나 후대는 없고 경주이씨가 이거하여 14대를 살아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충주군 엄정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유등리·중...
-
1950년대에 충주군수를 역임한 행정가. 윤갑은 1899년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서 아버지 윤양래와 어머니 이치성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제6대와 제10대 엄정면장을 지냈으며, 1956년 충주군수가 되어 충주읍이 시로 승격되는데 노력하는 등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하였다. 윤갑의 지역발전을 위한 헌신을 기리기 위하여 주민들이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학자이자 행정가. 윤태동은 1900년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에서 아버지 윤호와 어머니 최완희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신학교와 경성고등보통학교, 일본의 강산고등학교를 거쳐 1925년에 일본 동경제국대학 독문과를 졸업하였다. 졸업과 동시에 예과 강사 및 촉탁으로 있다가 1930년에 동경제국대학 조교수, 1933년 경성제국대학 예...
-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자선사업가. 윤해영은 파평윤씨 소정공(昭靖公)의 31세손으로 1906년 충청북도 충주군 엄정면 목계리에서 아버지 윤진국(尹鎭國)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가정에서 한문을 공부한 후 인천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목계금융조합에 근무하다가 부친의 사업을 계승하여 근대적 정부 도정공장을 운영하면서 지역의 각종 사회활동에 참여하였다. 성품이 과묵하고...
-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관이자 교육자. 윤호는 연일현감과 사헌부 감찰 등을 지낸 아버지 윤양계(尹養桂)와 어머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윤호가 태어난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미내동에 있는 중원윤민걸가옥은 현재 중요 민속문화재 1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어려서는 한학을 수학하고, 1885년(고종 22)에 마지막으로 실시된 무과 시험에 급제하였다. 1895년에...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율리(栗里)와 능리(陵里)에서 ‘율(栗)’자와 ‘능(陵)’자를 따 ‘율능(栗陵)’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엄정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주군 엄정면 율리·능리·노곡리(蘆谷里)·태산동(台山洞)이 통합되어 율능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
-
현재 목계에 거주하는 윤태호(1934년생) 씨를 통해 한복 선물로 인하여 벌어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충주의료원 원장을 지낸 의학박사 김규태(1926년생)의 어머니인 이우봉(李又鳳)[1907년 생] 여사는 일찍이 남편과 사별한 후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 평생을 바쳤다고 한다. 그녀는 바느질 솜씨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이화여자대학교...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족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문경공 이채 부부 합장묘. 이채(李采)[1745~1820]의 본관은 우봉(牛峰)으로, 자는 계량(季良), 호는 화천(華泉),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1744년(영조 20)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휘령전(徽寧殿) 참봉, 사헌부, 호조, 형조의 관직을 거쳐 돈령부주부를 지냈다. 음죽현감(陰竹縣監) 재직 때...
-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행정가이자 정치인. 이효승은 전주이씨 경명군파 12대손으로 1928년 엄정초등학교를 10회로 졸업하였고, 충주교현학교 고등과를 졸업하였다. 1941년 엄정면장을 역임하였고, 1952년에 초대 충청북도의회 의원에 당선되어 도정에 참여하였다. 1958년 최초의 직선제로 엄정면장에 당선되는 등 4회에 걸쳐 13년간을 엄정면장으로 봉직하였다....
-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정치인. 이희승은 아버지 이종원과 어머니 김계득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엄정보통학교와 경복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있는 입명관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39년 일본 중앙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였으며, 광복 후 1947년 문교부 기술교육원 부원장을 시작으로 관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미군 통역관과 포로심...
-
목계마을에서 바라보면 남한강 건너 맞은편에 솔밭이 보인다. 언뜻 보아 200~400여 년 이상 됨직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충주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소풍을 오기도 하고 물놀이 장소로도 이용되던 소위 ‘목계 솔밭’으로 알려진 곳이다. 행정구역상으로 충북 충주시 가금면 장천리 412-1번지 향천마을인 이곳에는 6·25전쟁 중에 지방 공산당들에 의해 반동분자로 몰려...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용산리에 있었던 천연원목 인테리어 제품 제조업체. 도시 생활에서도 자연의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 고객의 요구에 맞추어 환경 친화적이면서 건강에 유익한 천연원목 인테리어 제품을 생산·판매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4년 4월 일진산업을 설립하였다. 2001년 1월 일진아트산업(주)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었다. 2003~2006년 기업의 수익성과...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와 율능리를 연결하는 고개. 미내리 장터(일명 장대, 또는 시장)은 미내리뿐만 아리라 엄정면의 소재지로서 옛날부터 3일과 8일에 개장되는 내창장으로 유명하였다. 율능리는 엄정면 최남단 지역인데 바마루(일명 율리)는 율능리의 으뜸 마을로서 국도 변에 위치하고 있다. 과거에 미내리와 율능리 주민들이 서로 시장을 앗아가려고 쟁탈전을 벌렸...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와 신만리에 걸쳐 있는 산. 산의 형태가 마치 병풍처럼 웅장하게 생긴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해발고도 408.8m의 저산성 산지로서, 엄정면과 산척면의 경계를 이루는 남~북 방향 산줄기의 일부를 이룬다. 중생대 쥐라기 흑운모화강암이 해체되지 않고 남은 지대로서, 정상부 부근에는 병풍바위, 서쪽에는 붉은바위가 있는 등 고도는 낮지만 산세는 비...
-
목계2리 마을회관 맞은편에 ‘목계 풍물방’이 있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아주 낡은 건물이다. 풍물방을 운영하는 변종근 씨와 미리 만날 약속을 한 터라 벌써 나오셔서 기다리고 계셨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무실 겸 작업실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사용하는 분의 성격을 짐작하게 하였다. 찾아온 이유를 말씀드리고 ‘제 머리 마빡’의 유래에 대해서 말씀을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원...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출신의 행정가. 지정환은 충주의 금가공립보통학교(현 금가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국립경찰전문학교를 나왔다. 한국전쟁 중인 1950년 단양경찰서장을 지냈고, 1953년 옥천경찰서장을 역임하였다. 1956년에 민주당 충주시부위원장을 맡다가 제2대 충주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징계자격위원장을 거쳐 의장으로 활동하였다. 1960년 민주당 정권이...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서 민물고기인 참매자를 조려 만든 향토 음식. 예부터 충주는 뱃길을 통해서는 강원도 태백산에서, 육로를 통해서는 경상도에서 사람과 물산이 많이 모여 들었다. 그리고 이들 물산은 자연스레 목계 내륙항을 통해 한양으로 운송되었다. 따라서 목계는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고 각종 음식이 발달하게 되었다. 특히 남한강에서 많이 잡히는 참매자 등 민물고기 음식...
-
매년 단오일을 전후하여 목계마을의 사람들은 남자들을 중심으로 천렵에 나선다. 천렵 장소는 석도산 아래 됫섬이었다. 일부 마을사람들은 걸어서 가기도 하고 일부는 선유놀이나 연등 및 불꽃놀이에 쓸 물건들을 싣고 배로 됫섬 앞에 있는 되여울까지 올라간다. 선유놀이에 쓰던 배는 목계나루를 건너던 배 중에서 길이가 15~20m 정도의 중형배였다. 천렵은 강물에 서식하는 물고기를 잡는 것을...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하느님처럼 부활한 예수님을 본받고자 성령을 찬미하는 예배를 드리고, 지역사회에 봉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55년 4월 20일 교회를 창립하였다. 1973년 1월 최종락 전도사가 부임하였으며, 1976년 11월 현재의 성전을 건축하였다. 1976년 이상숙 전도사, 1990년 김창길 목사, 1997년 진...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추동(楸洞)과 탑평리(塔坪里)에서 ‘추(楸)’자와 ‘평(坪)’자를 따 ‘추평(楸坪)’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엄정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추동·탑평리·명지동(明池洞)·직동(直洞)과 춘문동(春門洞)·옥성리(玉城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추평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고묘군. 엄정면소재지에서 괴동리-추평리 방면으로 향하면 추평초등학교에 이른다. 초평초등학교와 삼성마을 뒤쪽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부분에 해당한다. 1998년 충주시 문화 유적 분포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조사 당시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곳에서 4기의 봉분을 확인하였다. 그중 제일 아래 것이 직경 5m의 크기로 가장...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에 있는 엄정사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시대 절터. 엄정면의 지명이 그동안 억정사에서 유래하였다고 알려졌으나 엄정사라는 절이 있었음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을 살펴보면 충주의 청룡, 김생, 용두, 엄정, 억정, 향림 등의 사전지를 빼앗는 사람을 추핵하지 않은 수령에게 벌을 주는 조처를 취하였...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에 있는 저수지. 충주시 엄정면, 제천시 백운면, 강원도 원성군 귀래면의 경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옥녀봉(玉女峯)[600m]과 동쪽의 시루봉[730m] 사이의 남쪽 계곡에서 흘러내린 계곡수가 추평저수지로 유입되고 있다. 엄정면 추평리 추동마을 방향으로 올라가면 예전에 배터마을이 있었는데 저수지 공사로 수몰되어 지명이 배...
-
목계 정류장에서 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목계1리 구회관이 나온다. 여기서 뚝방 길을 따라 더 가면 새터가 나온다. 이곳에는 외지인의 별장도 있는데, 조일상 씨의 집이 여기에 있다. 물론 별장 건물은 아니다. 미리 연락을 하고 찾아가니 기다리고 계셨다. 목계마을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먼저 조일상 씨가 부흥당 당고사의 축문을 쓰게 된 연유를 물어보게 되었다...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용산리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지성·인성·체력 등을 갖춘 실력 있는 사람, 지식을 융합하고 계발하는 창의적인 사람, 지식 기반 사회의 다양성을 인식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협력적인 사람, 위기를 문제 해결의 기회로 삼는 미래 지향적인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51년 12월 20일 학교법인 신명학원이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56년 3월...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경종의 태실. 경종대왕 태실비에 의하면 경종이 1688년(숙종 18) 10월에 태어나자 이듬해 2월에 태장하였으며, 1762년(영조 2) 9월 가봉(加封)하였다. 영조는 선왕 경종의 태실을 꾸미고, 순호군(巡護軍) 16명을 두어 3년마다 위안제(慰安祭)를 지냈다. 태장(胎藏) 시 태실비에 ‘강희이십칠년십월이십팔일...
-
목계마을은 2006년 11월 23일, 문화관광부 문화역사마을가꾸기 선정위원회에 의해 ‘문화·역사 마을가꾸기’마을로 선정되었다. 이 사업은 2006년 11월부터 2007년 5월까지 6개월간의 학술 용역 기간을 거쳐 2007년 5월부터 2009년 5월까지 24개월간을 전체 사업 기간으로 한다. 목계는 내륙지역 제일의 소금 및 염장어류 시장이었으나, 새로운 교통 기...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백운암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후기에서 고려 전기 철불좌상.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은 백운암에서 주존불로 봉안하고 있는데, 원래 이곳에서 전하던 불상은 아니다. 인근에 고려시대 대규모 절터인 억정사지(億政寺址)가 있어서 그곳에서 옮겨온 불상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백운암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창건 연기가 전하고 있다. 1882년...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부흥사에 있는 조선 전기 방형의 기단에 판석을 쌓아 만든 전탑 모양의 적석유구. 엄정면 목계리 부흥사 내의 산신당 옆에 위치한다. 일반적으로 불탑이 금당 앞 중앙에 위치하는 모습과는 다르다. 벽돌 크기보다 작은 장방형의 작은 돌을 이용하여 높이 약 8m, 둘레 약 13m로 쌓았다. 밑에서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드는 형상이며, 일반...
-
목계마을에서 남한강 건너 맞은편에 솔밭이 보인다. 언뜻 보아 200~400여 년 이상 됨직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충주 사람들이 한 번씩은 이 숲 아래 강가에서 물놀이를 했던 기억들이 있다. 현재는 소나무 숲이 많이 줄어서 남아 있는 부분이 200~300m 밖에 안 된다. 일제강점기에도 ‘마쓰바라(松林, 松園)’라 하여 쉼터이자 놀이터였다고 한다. 현재의...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신흥사에 있는 조선시대 석조 나한상군. ‘나한’은 아라한의 줄임말로 수행에 정진하는 불제자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16나한, 500나한 등을 모신다. 신흥사에 전하는 나한은 일부인 4구만 전하는데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모두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충주 신흥사 석조나한상군은 대웅보전 안에 근래에 만들어...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고려 승려의 탑비. 억정사(億政寺)에 전해오는 비(碑)로, 대지국사가 1328년(충숙왕 15)에 태어나 14세에 출가하고 1390년(공양왕 2) 입적할 때까지의 행적을 기록하고, 대사의 인품과 학력을 기리는 내용이 실려 있다 엄정면 괴동리 억정사지의 높은 언덕 위에 우뚝 서서 괴동리 앞들을 향...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충주시 엄정면 용산리와 원곡천을 사이에 두고 미내리 미실마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북향으로 있다. 충주 윤양계 고택은 1865년(고종 2) 병마절제도위, 연길현 감도청부도사, 사헌부감찰을 지낸 윤민걸의 고조부 윤양계가 살았다고 하는 전통 주거 양식이 살아 있는 가...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 사지에 있는 고려 전기 삼층석탑. 충주 추평리 삼층석탑은 사찰 가람의 필수적인 조형물이었다. 고려시대 들어와 불교가 국교로 신앙되면서 전국을 중심으로 많은 사찰이 창건되고 이와 함께 석탑이 건립되었다. 추평리 사지에서 가까운 지점에는 백운사·억정사지 등이 위치하고 있어 이들 사찰들과 함께 고려시대 불교 신앙의 중요한 역할을 했을...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 있던 사립 초등학교.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주민의 문맹 퇴치와 교육 보급을 통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통명학교는 1909년 4월 28일 사립학교로 인가를 받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 설립되었다. 설립자인 안종화(安鐘和)는 교장의 역할까지 하였으며, 설립 당시 교사 2명에 학생 68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유봉리에서 풍류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엄정면 유봉리 옥녀봉 밑에 ‘풍류바위’가 있다. 「풍류바위와 옥녀」는 이 바위에 얽힌 슬픈 사랑 이야기로서 신선담에 속한다. 1998년 충주문화원에서 발행한 『충주의 향토사』-민담민요편에 실려 있으며, 2002년 충주시에서 간행한 『충주의 구비문학』에도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
목계 서북쪽 입구 노변공원과 목계줄다리기 별신제유래비가 서 있는 곳에는 목계 주민들에 의해 세워진 공덕비에 학교 설립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 마을 사람들의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서로 엇갈린 주장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기 위해 윤해영 씨의 아드님이신 윤우식 씨를 윤태호 씨와 함께 찾아보기로 하였다. 대문을 들어서서 찾아온 사연을 말하자 강경한 어조로 “그런 일이라면...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경량(景亮), 호는 한천(寒泉). 아버지는 생원(生員) 허초(許礎)이고 어머니는 임하임씨(臨河林氏)이다. 숙종조 영의정을 지낸 허적의 할아버지이다. 선조 때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등용된 뒤 1587년(선조 20) 선공감 봉사(奉事)가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 왕을 따라 호종했으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여차(汝車), 호는 묵재(黙齋)·휴옹(休翁). 아버지는 보은현감 허한(許僩)이며 어머니는 김제갑(金悌甲)의 딸이다. 허적은 1633년(인조 11) 24세 되던 해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7년 28세의 나이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로부터 주서·검열·봉교·수찬을 역임하였다. 1640년(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