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제
-
박장석 씨를 처음 만난 것은 마수리의 대성(大姓)인 운봉박씨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신석 이장인 이유성 씨가 한문 공부도 많이 했고 보학에도 밝은 분이 박장석 씨라고 말하면서 그를 추천했다. 사실 마수리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운봉박씨의 유래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역사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기 때문이다. 박장석 씨를 만나 운봉박씨가 고려 말에 시작되었다는...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마제동(馬蹄洞)·온수리(溫水里)·내룡동(內龍洞)·학성리(鶴城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마제와 온수의 이름을 따서 마수리(馬水里)라 하였다. 마수리는 남쪽 가섭산(加葉山) 줄기가 뻗은 골짜기 아래 형성된 마을로 북쪽에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일찍이 운봉박씨 운성부원군파 후손들이 들어와 세거하였다....
-
마수리는 본래 충주군 신석면(薪石面) 지역이다. 1760년(영조 36)에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보면 신석면에는 5개리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마제리이다. 당시 마제리에는 94가구에 600명(남 230, 여 370)이 살고 있었다. 이후 발간된 『충청도읍지』, 『호서읍지』 그리고 「충주목 지도」 등 인문지리서와 지도에 마제리는 꼭 언급되고 있다. 이와 같은 마...
-
마수리는 현재 충주시 신니면 13개 법정리 중 하나이다. 신니면의 동쪽에 위치한 마수리는 마제와 신석 2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마수리는 과거 마제, 신석, 온수골 3개 마을이 있었으나, 1982년 율곡지구 사업으로 온수골이 없어지면서 2개 마을로 변화되었다. 마수리의 남서쪽에는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가섭산[709.6m]이 있다. 그러므로 마수리는 가섭산...
-
가섭산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온수골로 내려와 마제와 신석을 지난 다음 요도천으로 합류한다. 그러므로 마수리의 한가운데를 시내가 흘러간다. 마수리는 이 하천 양쪽에 생긴 논과 밭을 근거지로 발달하였다. 이러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는 마수리의 중심 마을은 마제이다. 마제는 이 하천의 중하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마제라는 동네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
-
마수리 농요의 명인 지남기(池南基)[1926~2005] 선생은 1926년 4월 10일 괴산군 불정면 웅동리[웅골] 274번지에서 아버지 지현덕 씨와 어머니 남궁순 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이웃하고 있는 외령리 잿말(영촌 본동)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자랐다. 24세 되던 1949년 당시 19세이던 김금순[1931~ ] 씨와 결혼하였다. 김금순 씨는 충주시 살미면...
-
신석은 마제 개울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개울에 세워진 신석교를 지나면 왼쪽으로 신석 마을회관이 나오고 그 길을 지나면 새말이 펼쳐진다. 이곳이 새말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새롭게 형성된 마을이기 때문이다. 이곳 새말이 신석의 중심 마을이다. 새말 위쪽으로는 신석을 이루는 두 개의 마을, 용숫말과 질둑개가 있다. 용숫말은 마제 개울을 사이에 두고 마제와 마주...
-
마제는 마수리의 중심마을이다. 마제리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나타나는 최초의 기록은 『여지도서』(1760)이다. 그리고 이후 발간된 인문지리서에서 마제리는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이 통폐합되면서 마제리라는 이름이 마수리로 바뀌었지만 마제는 인구와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여전히 마수리의 중심 마을이다. 더욱이 마수리 농요가 1972년 전국 민속...
-
최종남[1957~] 씨는 현재 남편 박경석 씨와 함께 논농사도 짓고 젖소도 키운다. 젊은 시절에는 논농사를 80마지기씩이나 지었다고 하니 대단한 여성이다. 요즘도 젖소를 키우느라 아침과 저녁에는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저녁 6시에 시간을 내서 1시간가량 마을회관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는 이종순[1931~ ] 씨가 함께 하면서 마수리 농요에...
-
마수리는 충주시 신니면 14개 법정리 중 하나이다. 본래 충주군 신석면(新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니면(薪尼面) 마수리(馬水里)가 되었다. 마수리라는 이름은 당시 가장 큰 마을이었던 마제동(馬蹄洞)과 온수리(溫水里)에서 한 자씩 따서 만들었다. 마수리는 신니면 용원리의 남쪽, 신니면 견학리의 서쪽, 주덕읍 대곡리의 북쪽에 자리 잡고...
-
일반적으로 박씨의 시작은 신라를 세운 혁거세로부터 본다. 혁거세의 후손인 신라 54대 경명왕(景明王)[917~923]은 여덟 왕자를 두었고, 이들이 다스리는 주군(州郡)에 따라 박씨의 관향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운봉(雲峰)박씨도 이들의 후손일 것으로 여겨지나 문헌이나 족보를 통해 계보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1988년에 발행된 『운봉박씨 족보』에 따르면 계보가 경명왕의 큰...
-
마제 이장 박용기(46세) 씨는 현재 다섯 가지의 일을 하고 있다. 마을의 이장이고, 농요보존회 총무이고, 운봉박씨 충주파의 총무이고, 정미소의 주인이고 농사를 짓는 농군이다. 정미소와 농사일은 가업이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만, 마을일, 농요보존회의 일, 종친회의 일은 좋든 싫든 맡게 된 일이다. 그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게 된 것은 사실 그의 능력 때문이기도 하고...
-
지남기 선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박기서[1932~ ] 씨이다. 1953년부터 지남기 선생과 친교를 맺었으며 1960년대 후반에는 지남기 선생과 함께 마수리 농요를 복원하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972년에는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지남기 선생의 메김 소리를 받기도 하고 후렴구를 부르기도 하면서 마수리 농요를 전국적인 무형문화재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