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말
-
미륵리사지를 돌아보면 사지와 구분지어 야트막한 담장을 두른 곳을 볼 수 있다. 정원석 몇 개를 배치한 평탄한 정원을 연상시킨다. 미륵대원 터이다. 고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에 사원을 설치하여 불교의 이상세계를 널리 확산시켜 민중의 평안을 꾀하는 한편 유사시에는 사원 세력을 동원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전략을 써왔다. 자연스럽게 사찰 내에 보급을 위한 병참기지도 설치되었다....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미륵리라는 명칭은 충주 미륵대원지에 있는 보물 제96호인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미륵리는 일명 미륵뎅이, 미륵댕이라고도 불린다. 미륵리는 연풍군 고사리면 미륵리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괴산군 상모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중원군 상모면 미륵리...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는 안말·점말·지릅재·토현(土峴)[일명 흙벼루]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으며, 음력 정월 초사흘 전에 좋은 날을 가려서 서낭제와 산신제를 지냈다. 미륵대원지 앞 개울 건너에 있는 느티나무 밑에서 서낭제를 모셨으나, 안말이 폐동된 이후 현재는 느티나무...
-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미륵부처님이 오랜 시간을 말없이 서있는 그 곳을 가는 길은 가히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수안보 방면으로 가는 길을 더듬어 본다. 충주에서 남으로 3번 도로를 타고 20여㎞를 달리면 그 유명한 수안보 온천이 나타난다. 예전에는 상모면이라고 불렸지만 2007년 수안보면으로 개칭되었다. 여기서 잠시 온천을 즐겨도 좋겠다....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점말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가마터. 점말이라는 이름이 붙은 지역은 수공업을 주로 하던 곳으로 무쇠점·옹기점·가마점 등이 있었던 곳으로 주목된다. 미륵리 점말은 미륵대원이라는 관방과 사찰이 어우러진 지역이기는 하나, 오랫동안 농업과 임산가공업, 그릇 제작 판매 등이 주민 살림의 근본을 이루었다. 점말에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100호...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점말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수안보면은 주민들의 뜻에 따라 상모면을 개정하여 이루어진 명칭이다. 수안보면에서 가장 유적이 많은 곳은 미륵리이다. 미륵리에는 충주 미륵대원지를 비롯하여 충주 미륵리 요지, 하늘재 등 많은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다. 미륵리의 점말은 지릅재를 넘어 미륵리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마을이다. 점말이...
-
해발 400m의 고지로 월악산을 비롯, 박쥐봉, 월항삼봉, 포암산, 만수봉 등으로 둘러싸인 산골 분지 미륵리. 그곳에 미륵리 사람들의 꿈이 커지고 있다. 소나무 숲이 울창하여 공기가 좋고 수정 광맥을 타고 흐르는 물이 좋으니 그러한 환경 속에 자라는 식물은 최고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릅재를 넘어 미륵리가 가까워지면 검은 차광막을 씌운 비닐하우스 3동이 내리막길 옆에...
-
미륵리는 월악산 국립공원의 들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월악산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산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칠하고 백두대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대체적으로 산이 험악하고 골산(骨山)이라 밋밋함이 없다. 그만치 절경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안에는 골짜기도 많다. 송계계곡, 만수계곡, 하늘재계곡 등… 골짜기! 왠지 모르게 사람들에게 안온함을 주는 공간이 된다....
-
‘터진 데’는 다 지냈단다. 미륵리의 동제(洞祭)는 사방 미륵리로 들어오는 길목마다 다 지냈다고 했다. 밤, 대추, 밤, 백설기, 그리고 돼지머리를 준비해서 제관들이 마을 곳곳에서 지냈다고 했다. 마골점 봉수대에서 우선 지낸 다음 암말에서는 미륵사지 앞 200여m 지점의 서낭당과 당시 마을에서 약 200여m 하늘재 방향으로 올라가서 나무에 ‘검줄(금줄)’을 치고 지냈고, 점말에서는...
-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후기까지 마을 이름은 서운이었다. 그러나 1870년대 들어 설운으로 바뀌었다. 설운으로 바뀌게 된 연유는 분명치 않다. 조선시대 살미면의 리와 호구 변화를 살펴보면 그 기록이 1759년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까지 이른다. 이곳에 서운(鋤云)이 나오는데 서운리를 말한다. 서운이라는 이름은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호서...
-
지릅재 를 힘들게 올라서서 심호흡 한번 한 후, 나무로 둘러싸인 고갯길을 천천히 내려오면 높은 산 밑에 웅크리고 있는 마을이 보인다. 아늑하다. 참 고요하다. 특히 겨울의 미륵리 입구는 적막하다. 마치 돌을 던지면 잔잔한 물결이 퍼질 것 같은 고요함이다. 그 입구 좌측의 조그만 뒷동산 밑으로 ‘중원미륵리도요지’라는 간판이 있는 건물이 있다. 이것은 또 다른 차원...
-
봉수(烽燧)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가장 빨리 변방의 소식을 중앙으로 전달하던 통신 수단이었다. 30여 리를 기준으로 서로 잘 보이는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쌓고 횃불과 연기를 올리는 중요한 시설이었다. 봉수제도가 처음 시작된 것은 삼국시대부터 실시되었지만 고려시대에 와서 체계적으로 정비되었고 조선 세종 때에 봉수대 시설과 봉군의 신분, 봉수의 노선을 구분하여 조선 봉수의 근...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점말에 있는 조선 후기에서 조선 말기에 이르는 백자가마터. 가마는 토기나 자기·기와·항아리 등을 굽는 시설이다. 초기에는 노천에서 구웠기 때문에 굽는 온도가 낮아 그릇이 무르고 거칠며 붉은 색을 띠었다. 그후 점차 기술이 발전하여 야산의 야트막한 경사면을 이용하여 여러 칸의 굴 모양으로 만든 오름칸 가마[등요(登窯)]가 등장하였다. 오름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