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서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만수교를 중심으로 행정구역상으로는 분명히 구분되고 있지만, 자연적으로는 월악산을 껴안는 송계계곡으로 인위적 구분은 할 수 없는 지역이다. 시의 경계는 안내되어 있어도 누구 하나 의식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냥 계곡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곳일 뿐이다. 가끔 보이지도 않는 선으로 금을 그어 놓고 내 땅, 네 땅, 구분짓는 사...
-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행해지는 색채를 이용하여 표현하는 예술의 한 분야. 고대의 미술품을 살펴보면 회화 부문의 유물은 남아 있는 것이 없어 유물인 토기, 석조 미술품을 중심으로 시대적으로 대표적인 미술품을 소개하였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미술품은 충주박물관 소장품을 위주로 하여 소개하였다.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조돈마을의 충주 조동리 유적은 3차에 걸친 조...
-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입적 승려를 추모하는 묘탑 형태의 조형물. 부도는 고승이 입적한 후 유체를 풍장(風葬) 또는 다비하고 나온 유골이나 사리를 수습하여 봉안하기 위한 기념적인 조형물이다. 부도는 목재·석재·벽돌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만들어졌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 석재로만 건립되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석조 부도라고 한다. 석조 부도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고승의 유골...
-
국원성은 고구려가 평양 천도 후 남진을 계속하여 5세기 전반 충주 지역을 점령하고 설치한 수도 다음 가는 부도(副都)였다. 고구려의 남방 경영 책원지이자 신라 공격의 전초기지였다. 충주 고구려비는 이러한 고구려 남진 정책의 성공을 기념하는 비로, 한반도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비이기도 하다. 고구려가 충주에 국원성을 설치하여 고구려 영역으로 편입한 것은 충주...
-
문헌에 기록되기 이전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우리나라에 있어 선사시대라 함은 구석기시대, 중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그리고 초기 철기시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며, 약 70만 년 전부터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 역사시대는 우리나라의 경우 서력기원 전후인 삼국시대 형성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약 2,000년간을...
-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정토사지에는 보물 제17호인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忠州 淨土寺址 法鏡大師塔碑)가 위치하고 있었다. 정토사와 관련된 문헌 기록은 많지 않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약간의 기록이 남아 있어 사찰의 연혁을 살피는 데 도움을 준다. 『신증동국여지...
-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지에 있던 고려 전기 홍법국사 탑비. 홍법국사는 통일신라 선덕왕대에 태어나 12세의 나이에 출가하였고, 당나라를 다녀온 뒤 선(禪)을 크게 일으켜 국사 칭호를 받았다. 시호를 홍법, 탑명을 실상(實相)이라 하였다. 정토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고려 목종이 시호를 홍법, 탑명을 실상(實相)이라 내려주러 탑비를 건립하였...
-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에 있는 신석기시대 유물산포지. 충주는 남한강과 달천강으로 인해 선사인들이 생활하기에 좋은 환경이 갖춰진 곳으로 짐작된다. 유적은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확인된 것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구석기시대 유적은 중원 문화권을 대표할 만한 유적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신석기시대나...
-
김생의 글씨는 풍운의 조화와 사람으로서 신(神)의 경지에 이른 필치라는 평을 받고 있다. 충주에서는 오현(五賢)의 한 사람으로 추대하여 우륵문화제 때에 추모제를 지내고 있으며, 1996년에는 김생연구회가 조직되어 김생의 서예를 연구·전승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 김생의 진품 유적을 찾을 길은 없고, 단지 김생의 글씨를 집자한 경상북도 봉화군의 태자사낭...
-
고려 전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승려. 홍법국사의 생전 활동 모습에 관해서는 어디에서도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정토사홍법국사실상탑비(淨土寺弘法國師實相塔碑)가 전해지고 있어 비문의 내용을 통해 부분적이지만 그 생애의 일부를 어느 정도 확인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비문마저도 마멸이 심하여 전문의 정확한 판독은 불가능한 상태이며 판독이 가능한 부분만을 토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