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내리에 전해오는 대표적인 금석문으로는 풍덕마을의 동쪽 언덕인 제내리 353번지에 입향조 이덕량의 장남인 이정지(李廷芝)의 묘와 묘역 입구에 묘비가 있다. 묘역은 넓고 여러 기의 묘가 있다. 이정지의 묘는 가장 상부에 있으며 10여 평의 규모에 상석과 망주석이 있다. 묘비는 묘역으로 진입하는 입구인 마을쪽 언덕 위에 있으며 비각을 세우고 있어 이채롭다. 비석의 총 높이는...
입향조 이덕량의 자는 하경(厦卿)이고 처음이름은 덕명(德明)이라 했으며, 어려서는 현덕(玄德)이라 불렀다가 다시 덕량으로 바꾸었다. 그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장남인 진안대군 이방우(李芳雨)의 9세손이다. 만년에 벼슬하여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에 이르렀으며 통정대부 호조참의에 증직되었다. 묘소는 풍덕의 동북쪽 사락리 산 60의 엄동 황금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그에게는 아들이 셋이...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사람들이 살지 않던 황금곡(현재 사락리)을 처음 개척한 사람들은 함종어씨, 의령남씨, 상주박씨였다고 한다. 함종어씨 입향조인 어맹종(魚孟淙)의 배위(配位)는 의령남씨인데 외조부가 태종의 첫째 왕자인 경녕군(敬寧君)이다. 경녕군의 묘소가 음동에 있는 것으로 볼 때 아마도 이곳에 터를 잡은 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 1898년에 발...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진안대군의 10대손이다. 할아버지는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풍덕마을 입향조인 이덕량(李德樑)이고, 아버지는 이정협(李廷莢)이다. 양지현감을 지낸 김시필의 사위이다. 어려서부터 담력이 있고 기개가 당당하여 무인의 기질을 보여 주었다. 1676년(숙종 2)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78년(숙종 4) 관직에 올랐다....
제내리에는 마을에 다음과 같은 풍덕전거(豊德奠居)가 전해지고 있다. 마을 개척자인 이덕량이 방죽안을 개척하여 성동·대촌·풍덕의 세 마을에 터를 닦아 세 아들에게 각기 나누어 장남은 성동에, 차남은 대촌에, 그리고 막내는 자신이 자리 잡은 풍덕에 살게 하였다. 그런데 이덕량은 막내를 제일 귀여워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가장 좋은 터를 잡아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여 풍수가에게...
주덕에서 노은으로 연결되는 525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2.2㎞ 지점에 이르면 풍덕마을 버스정류장이 나타난다. 이곳 버스정류장 옆에는 풍덕마을 안내 입석과 ‘전주이씨진안대군파세거지(全州李氏鎭安大君派世居地)’라는 표지 입석이 마주 서서 오는 이를 반겨준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황새동산과 서방모랭이를 끼고 동북쪽으로 이어지다 숲거리에 와서 두 갈래 길이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