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290 |
---|---|
한자 | 徐涉 |
영어공식명칭 | Seo Seop |
이칭/별칭 | 남은(南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일주 |
활동 시기/일시 | 1453년 - 서섭 계유정난 때 유배 |
---|---|
출생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거주|이주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묘소|단소 | 서섭 묘소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
사당|배향지 | 분양서원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길 119[지성리 733-1] |
사당|배향지 | 중양서원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면 정동길 520-1[중산리 185-2] |
사당|배향지 | 덕산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46길 5-3[황금동 258] |
성격 | 문관 |
성별 | 남 |
본관 | 달성 |
대표 관직 | 이조판서 |
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문신.
서섭(徐涉)[?~?]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호는 남은(南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서균형(徐均衡)이고, 할아버지는 서침(徐忱)이다. 아버지는 광흥창부승(廣興倉副承) 서문한(徐文翰)이다. 부인은 예조참의 채윤(蔡崙)의 딸 인천채씨(仁川蔡氏)이고, 아들은 서진원(徐震元)·서감원(徐坎元)·서간원(徐艮元)이다. 형은 서제(徐濟)·서도(徐渡)이다.
서섭은 세종(世宗) 대에 과거에 급제한 후에 문종(文宗) 대와 단종(端宗) 대에 걸쳐 벼슬을 지냈다. 관직은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란 때 수양대군이 김종서(金宗瑞)·황보인(皇甫仁) 등을 죽이고 안평대군 부자를 강화도에 유배하자, 서섭은 간신들을 물리치고 집현전 학자들을 등용하라는 상소를 올려 유배되었다. 1457년 단종이 사망하자 「문영월사변통곡(聞寧越事變痛哭)」이라는 시를 남기고 낙향한 후 은둔하며 여생을 보냈다.
서섭과 형 서제의 충절은 한동안 숨겨져 있었는데, 1920년 후손 서의곤(徐義坤)이 집을 수리하다가 서섭의 유고(遺稿)와 행장(行狀)을 발견하여 『남은선생문집』으로 출판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서섭의 저술로는 『남은선생집(南隱先生集)』 2권 1책이 있다.
서섭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다.
서섭은 사망한 뒤 무주의 분양서원(汾陽書院)과 영일의 중양서원(中陽書院), 대구의 덕산서원(德山書院)에 배향되었다. 덕산서원에는 서섭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