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362
한자 朴南玉
영어공식명칭 Park Namo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3년연표보기 - 박남옥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6년 - 박남옥 경북여학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43년 - 박남옥 이화학당 가정과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55년 - 박남옥 영화 「미망인」 제작
몰년 시기/일시 2017년 4월 8일연표보기 - 박남옥 사망
출생지 하양읍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영화감독
성별 여성
대표 경력 영화 「미망인」 제작자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여성 영화감독.

[개설]

박남옥(朴南玉)[1923~2017]은 1923년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박태섭, 어머니는 이두리이며, 10남매의 셋째 딸이다. 1955년 영화 「미망인」을 제작한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이다.

[활동 사항]

박남옥 집안은 영천을 거쳐 1930년 현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으로 이사 왔다. 남욱정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6년 경북여학교를 입학하였다. 조선신궁봉찬체육대회에 참가하여 1학년 때는 높이뛰기 4등, 2학년 때는 투포환으로 3년 연속 우승하였다. 1943년 이화학당 가정과에 입학하였다.

박남옥은 1943년 친구 남편인 윤용구 감독의 소개로 조선영화건설본부 산하 광희동촬영소에 근무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하였다. 1944년 이화학당을 중퇴하고 『대구일일신문』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하면서 영화평을 썼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광희동촬영소에서 「자유만세」[최인규, 1946], 「새로운 맹서」[1947] 등에 참여하면서 영화 일을 배웠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구도청에 국방부 촬영대가 조직되었는데, 박남옥은 국방부촬영대에 합류하여 전쟁 뉴스를 촬영하였다. 1953년 5월 극작가 이보라와 대구에서 결혼하였다. 전쟁 과부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찍으라고 둘째 언니가 준 380만 원으로 1955년 영화 「미망인」을 제작하였다. 1957년 동아출판사에서 2년 동안 근무하다가, 영화 일을 다시 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 4월 동경아시아영화제에 김진규와 함께 참석하였다.

박남옥은 2017년 4월 8일 미국에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박남옥은 1955년 영화 「미망인」을 제작하였다. 1959년 잡지 『시네마 팬』을 창간하였다. 박남옥의 딸 이경주는 박남옥이 쓴 글을 가지고 『박남옥-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마음산책, 2017]이라는 자서전을 발간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7년 제1회 여성영화제에서 『미망인』이 개막작으로 상영되었다. 「미망인」은 “1950년대 전쟁미망인이라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관계도를 통하여 당시 여성이 처한 곤궁한 현실을 리얼리즘에 입각해 조망한 훌륭한 여성영화”라고 평가받는다. 임순례 감독의 「아름다운 생존-여성영화인이 말하는 영화」[2001], 김재 감독의 「꿈」에서 박남옥의 생애와 영화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서울여성영화제는 2008년 한국여성감독에게 ‘박남옥영화상’을 제정, 수여하였다. 2017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박남옥을 기리기 위하여 ‘박남옥영화상’을 부활하였다. 2018년 12월 5일부터 15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아름다운 생존」이라는 제목의 기획전시에서 박남옥을 비롯한 홍은원, 최은희, 황혜미, 이미례, 임순례 등 한국영화 발전에 이바지한 여성 감독의 일대기를 조명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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