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090
한자 玉盆里
영어공식명칭 Okbu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옥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현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 -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옥분동으로 개설
개설 시기/일시 1958년 1월 1일 -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옥분동에서 대구시 옥분동으로 편입
개설 시기/일시 1963년 1월 1일 - 대구시 옥분동에서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옥분동으로 개편
개설 시기/일시 1988년 5월 1일 -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옥분동에서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옥분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95년 3월 1일 -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옥분리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옥분리로 편입
성격 법정리
면적 5.0㎢
가구수 153가구[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여] 322명[남자 177명/여자 145명]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옥분리(玉盆里)라는 명칭은 마을 주위 산에 있는 돌이 옥(玉)과 같이 곱게 생기고,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 모양이 물동이와 비슷하다 하여 동이 분(盆) 자를 써서 옥분리라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형성 및 변천]

본래 대구부 상수남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수남면의 옥분동과 단양동을 병합하여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옥분동이 되었다. 1958년 1월 1일 행정 구역 개편으로 대구시에 편입되어 대구시 옥분동이 되었다. 1963년 1월 1일 달성군에 다시 환원되어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옥분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하면서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옥분리가 되었다. 1995년 3월 1일 달성군 전역이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어,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옥분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옥분리의 동부와 서부는 산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산지 가운데 신천 유역의 하안 단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산지이다. 옥분리의 북서쪽에 위치한 최정산[905m]에서 옥분리의 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는 옥분리의 서부 대부분을 차지하며 산줄기의 말단부 산기슭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보이며 신천 변으로 이어진다. 옥분리의 남동쪽에 위치한 상원산으로부터 북서쪽으로 뻗어 간 산줄기는 신천을 경계로 옥분리의 동부를 차지한다.

[현황]

옥분리가창면의 동부 중앙에 위치한 마을로, 옥분리 하나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2015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5.0㎢이며, 총 153가구에 322명[남자 177명, 여자 145명, 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옥분리는 북동쪽으로는 단산리, 남동쪽으로는 삼산리, 서쪽으로는 주리, 남쪽으로는 우록리, 북서쪽으로는 대일리와 이웃하고 있다. 옥분리의 자연 마을인 구진터·구진기(舊陣基)는 임진왜란 때 이곳에 방어 진지를 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다양(多陽)·단양(丹陽)은 마을 지형이 서쪽으로 트이어 한낮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서쪽 햇빛을 많이 받아 붙여진 이름이다. 들마·평촌(平村)은 들판 한가운데 위치하여 이름 붙여졌다. 옥분리에는 신천을 따라 국가 지원 지방도 30호선이 통과하며, 도로 옆의 삼정산 산기슭을 따라 대부분의 취락이 형성되어 있다. 옥분리의 산업은 삼정산 산기슭의 농경지와 신천변의 충적 지대에서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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