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달성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516
한자 -[達城郡]
영어공식명칭 Dolmen
이칭/별칭 지석묘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이재환

[정의]

청동기 시대 달성 지역의 고인돌.

[개설]

고인돌[支石墓]은 거대한 돌을 이용해 만든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무덤으로, 돌널무덤[石棺墓], 독무덤[甕棺墓]과 함께 사용되었으며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은 대부분 무덤으로 쓰였지만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墓標石)으로,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기념물]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거대한 고인돌 덮개돌을 채석하고 옮기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협력 체계나 강력한 지배력이 있어야 하며, 또 노동력을 얻는 대가로 향연을 베풀 수 있는 잉여 생산물의 축적이 있어야 가능하므로 북방의 유목 사회보다는 정착 농경 사회에서 가능한 무덤 양식이다. 즉, 정착 농경 사회에서 마을 공동체를 단위로 원시 신앙을 기반으로 한 씨족 의례로써 고인돌을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형태]

고인돌의 형태는 전통과 독자적인 문화 속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각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탁자식(卓子式), 기반식(基盤式), 개석식(蓋石式)의 세 종류가 있다. 탁자식은 땅 위에 잘 다듬어진 판돌[석판(板石)] 3~4매로 짜맞춘 돌널[石棺]을 만들고, 그 위에 넓고 큰 판돌 형태의 돌을 올려놓아 책상 모양을 띠는 것으로 주로 한반도 중부 이북 지방에 많으므로 '북방식'이라고도 한다. 기반식은 지하에 구덩이를 크게 파고 판돌이나 깬돌[할석(割石)]로 돌널[석관(石棺)]을 만든 다음 주위에 굄돌[지석(支石)]을 4~8개 놓고 그 위에 커다란 바위 같은 덮개돌[상석(上石)]을 올려놓은 형태이다. 주로 한반도 남부 지방에 분포하여 '남방식'이라고도 한다. 개석식은 굄돌이 없이 지하에 만든 무덤방 위에 바로 뚜껑으로 덮개돌을 덮은 것으로 기반식으로 포함시켜서 고인돌[無支石式]이라고도 한다.

고인돌의 무덤방 평면 형태는 긴네모꼴[장방형]이 대부분이다. 만드는 재료에 따라서 판돌로 만든 돌널 모양[석관형(石棺型)], 깬돌이나 냇돌로 쌓은 돌덧널 모양[석곽형(石槨型)], 구덩이만 있는 모양[토광형(土壙型)], 덮개돌 아래에 돌만 돌린 돌돌림형[위석형(圍石型)] 등이 있다.

[달성의 고인돌]

달성군의 고인돌은 화원읍 천내리에 7기, 논공읍 금포리에 6기, 구지면 평촌리에 16기, 가창면 대일리에 12기, 냉천리에 24기 등 50여 기가 남아 있다. 원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고인돌이 분포하였지만 하천 주변의 경작지나 구릉 비탈에 분포하였던 고인돌이 도로 공사, 경지 정리 등으로 인해 많이 유실되었으며, 또 지하 무덤방과 분리되어 옮겨진 경우도 많다. 달성군의 고인돌은 대부분 개석식이며, 일부 기반식도 확인된다. 발굴 조사된 예가 없어서 지하 무덤방의 구조나 고인돌 덮개돌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한다. 다만 달성군 가창면 지역의 고인돌은 신천 중하류의 상동 고인돌 떼·중동 고인돌 떼·대봉동 고인돌 떼와, 구지면 평촌리 고인돌 떼는 평촌리 돌널무덤 떼와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고인돌 떼 덮개돌 가운데 화장사(華藏寺) 경내에 위치한 덮개돌 1기에 동심원 무늬 암각화가 새겨진 예가 있는데, 이는 인접한 달서구 진천동의 동심원 무늬 선돌 암각화와 함께 대구 월배·화원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의 암각화 문화 및 관련 의례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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