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보
-
1907년 관기 제도가 폐지된 후 대구의 기생들이 만든 조직. 기생조합(妓生組合)은 기생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기예를 학습하기 위하여 조직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김소운(金素雲)[1907~1981]은 1907년 1월 5일 지금의 부산광역시 영도구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김교중이고, 호는 소운(素雲)·소운(巢雲)·삼오당(三誤堂)이다. 1919년 옥성보통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1920년 일본 도쿄 가세중학교[開成中學校]에 입학하였지만,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으로 중퇴하였다. 시, 수필...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극작가이자·언론인. 김영보(金泳甫)[1900~1962]는 1900년 지금의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개성에서 자랐다. 1912년 개성의 한영서원(韓英書院) 초등과를 졸업하고 1916년 조선총독부 시행 보통문관 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하였다. 일제강점기부터 주로 언론에 종사하면서 문학잡지에 시와 소설, 희곡 등을 발표하였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한국...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소년 문사. 김영희(金英熹)[?~?]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에서 태어났다. 대구고보(大邱高普)[현 경북고등학교]를 다녔고 일본 고베[神戶]에서도 작품을 발표하였다....
-
대구에서 활동한 시인이자 아동문학가. 김요섭(金耀燮)[1927~1997]은 1927년 4월 6일 함경북도 청진시 나남면[현 나남구역]에서 태어났다. 청진교육대학을 다니면서 시와 동화 중심의 동인 활동을 하였다. 졸업 후 월남하여 대구 『영남일보』 문화부장을 지냈다. 김요섭은 이원수, 박경용, 박홍근, 김영일 등과 함께 아동문학의 중심에서 활동하였다....
-
일제 강점기에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에 있던 영화관. 대구구락부(大邱俱樂部)는 1911년 쓰지소노 지로[辻園次郞]가 지금의 경상감영공원 서편, 중구 대안동 79번지 대구중부교회 자리에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개관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조선인 유지들이 결성한 사회구제 단체. 대구사회사업연구회(大邱社會事業硏究會)는 1921년 대구에서 조선인 유지들이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의 주선으로 사회사업을 펼칠 목적으로 결성한 사회 구제 단체였다....
-
한국문학의 형성기인 1920년대부터 ‘대구’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시, 소설, 아동문학, 평론 등 전 장르에 걸쳐서 한국 근대문학을 개척하고 일군 작가. 대구의 문인은 한국 문학의 형성기인 1920년대부터 ‘대구’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시, 소설, 아동문학, 평론 등 전 장르에 걸쳐서 한국 근대문학을 개척하고 일군 작가를 말한다. 대구의 문인을 정의할 때 지역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친일 경제인. 박노경(朴魯庚)[1899~?]은 1899년에 태어났다. 1940년 10월 21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서 달성인쇄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대표로 취임하였다. 1941년 5월 경북도회[달성군]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매일신보(每日申報)』에 당선사례 광고를 게재하였다. 1942년부터 1949년까지 경상북도과물협동조합 이사를 역임하였다. 19...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수학한 학자이자 정치인. 송남헌(宋南憲)[1914~2001]은 1914년 4월 11일 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시에서 태어났다. 1934년 관립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군산보통학교와 경성재동보통학교 교사를 지냈다. 일제강점기에 아동문학에 관심을 두고 다수의 평론을 발표하였다. ‘경성방송국 라디오 단파방송 밀청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
6·25전쟁 중 대구에서 활동한 신문기자이자 소설가. 장덕조(張德祚)[1914~2003]는 1914년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필명은 춘금여사(春琴女史), 일파(一波), 노노자(怒怒子), 일본식 이름은 마고나가 히가시[孫長東]이다. 대구여자공립보통학교[현 대구서부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북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
6·25전쟁 중 대구에서 공군종군문인단 사무국장으로 활동한 소설가. 최인욱(崔仁旭)[1920~1972]은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최상천(崔相天), 호는 하남(河南)이다. 1920년 해인불교전문학원을 졸업하고 1938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단편 「시들은 마음」이 선외가작, 1939년 『매일신보』 신춘문예 「산신령」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언론인. 한응렬(韓應烈)[?~1949]은 평양에서 태어나 대구로 이주하였다. 1933년 10월 26일 서북 출신들이 조직한 서우구락부(西友俱樂部)에 참가하고 서기로 활동하였다. 1933년 『남선경제신문(南鮮經濟新聞)』 기자로 활동하며 조선인 기자들의 친목을 위하여 조직된 칠조회(七鳥會)에 참여하였다. 1935년에는 『매일신보』 기자로 활동하였다....
-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자라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홍옥 사과나무. 장미과의 갈잎떨기나무 사과(沙果)나무는 중국 화북지방 빈과(蘋果)의 방언이다. 영어의 애플(Apple)이 바로 빈과에 해당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670년 전까지 사과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사과를 의미하는 또 따른 한자는 내(柰)이다. 개화기의 서양능금은 ‘서양 선교사’와 ‘일본인 농업 이민’을 통해 우리나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