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친일반민족행위자. 김대우(金大羽)[1900~1976]는 1900년 7월 10일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상준(金商俊)은 소유 토지가 1487만 610㎡, 소작인이 80여 명에 달하는 대지주이자, 강동군 군참사(郡參事)와 학교 학무위원, 금융조합 부조합장 등을 역임한 지역 유력자였다....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1949년 2월 대구에 설치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경상북도 조직. 1948년 8월 5일 국회 제40차 본회의에서 김웅진 의원 등이 ‘반민족행위처벌법 기초특별위원회’ 구성안을 긴급동의로 제안하여, 거수표결 끝에 재석 155, 찬성 105, 반대 16표로 가결되었다. 곧바로 28명의 기초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법안 기초작업에 착수하였다....
광복 후 대구에 군정 실시를 위하여 미군이 주둔한 사건. 태평양전쟁에서 연합국이 승리하고 패망한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기 위하여 1945년 9월 8일에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여 총독부 대표로부터 공식 항복을 받고, 9월 9일에 38선 이남에 군정을 실시한다는 미군 사령부의 명령 제1호를 발표하였다. 그 후 미군은 대구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주둔하였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 현풍 초등학교 내에 있는 학생들에게 충성 맹세를 강요한 일제 강점기의 비. 황국 신민 서사비는 1930년대 후반 중 일 전쟁이 시작되면서 민족 말살 정책의 하나로 내선 일체·황국 신민화 등을 강요하면서 일본 제국주의가 암송을 강요한 황국 신민 서사를 새긴 비이다. 황국 신민 서사는 조선 총독부 학무국이 교학(敎學) 진작(振作)과 국민 정신 함양을 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