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씨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훈을 추모하는 인천이씨 공도공파 문중 재실. 경모재(敬慕齋)[연경동(硏經洞)]는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恭度公派) 24세손 이훈(李薰)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훈은 인천이씨 무태(無怠)[현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인 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의 후손이다. 이주가 지금의 수성구 파동에서 무태로 이주한 후 후손들이...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훈을 추모하는 인천이씨 공도공파 문중 재실. 경모재(敬慕齋)[연경동(硏經洞)]는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恭度公派) 24세손 이훈(李薰)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훈은 인천이씨 무태(無怠)[현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인 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의 후손이다. 이주가 지금의 수성구 파동에서 무태로 이주한 후 후손들이...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주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된 재실. 경암재(景巖齋)는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의병장 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를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주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임(景任), 호는 태암(苔巖)이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서 태어나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낙재(樂齋) 서...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주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된 재실. 경암재(景巖齋)는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의병장 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를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주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임(景任), 호는 태암(苔巖)이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서 태어나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낙재(樂齋) 서...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이석규를 추모하는 재실. 금서재(琴西齋)는 개항기의 학자 이석규(李錫奎)[1816~1892]를 기리기 위하여 지역 유림과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 문중이 힘을 합쳐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이석규의 자는 치옥(穉玉)이고, 호는 금서재(琴西齋)이다. 부모에 대한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으며, 학문에도 힘을 써 학덕으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 『심경석...
-
대구에 입향하여 세거하고 있는 성씨. 조선 초에 대구는 본부(本府)와 수성현(壽城縣), 하빈현(河濱縣), 해안현(解顔縣)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본군(本郡)의 내성(來姓)이 1이니, 도(都)이다. 수성(壽城)의 내성(來姓)이 7이니, 유(柳)·장(張)·최(崔)·신(申)·유(劉)·고(高)·정(鄭)이요, 해안(解顔)의 내성이 3이니, 제(諸)...
-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있는 개항기 인천이씨 쌍명재공파 국동파 문중의 서사. 대구 도남동 유화당(大邱 道南洞 有華堂)은 1,600년대 중후반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세거지를 마련한 인천 이씨 쌍명재공파(雙明齋公派) 국동파(菊洞派) 문중의 서사(書舍)이다. 현재 건물은 1864년(고종 1) 건립되었다. 1916년 대대적인 보수가 있었으며, 별칭으로 ‘국동서실(菊洞書室)’이라고 불...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옥산전씨 문중 재실. 대구 둔산동 추모재는 옥산전씨의 시조인 고려 신호위대장군 전영령(全永齡), 고려 예조판서 문평공(文平公) 전백영(全伯英)의 후손이자, 통훈대부 기장 현감 전침(全琛)의 현손인 만봉(晩峰) 전시림(全始琳)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
대구광역시의 여러 종가에서 대대로 전하여 내려오는 내림 음식. 대구 지역 종가음식은 종가 구성원의 삶이 담겨 있는 고유한 식문화이다. 종가음식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식재료를 정성스럽게 손질하여 조리하는 향토음식의 보고이자 전통의 맛이 보존된 전통 음식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에 있는 이승휘를 추모하기 위해 1875년에 건립된 재실. 대구 평광동 추모재는 인천이씨 23세(世) 장사랑(將仕郎) 이승휘(李承輝)[1579~1639]를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승휘의 묘소 아래에 세워진 묘소 수호 재실이기도 한 대구 평광동 추모재는 1875년(고종 12)에 후손들이 건립했다. 이승휘는 어려서부터 효행과 학행이 있어 지역 사림으로부터 추중을 받...
-
대구 지역에 세거하는 성씨와 세거지를 기록한 책. 『대구향안 24문중(大邱鄕案 24門中)』은 1949년에 대구 지역에 세거하는 24개 성씨와 세거지를 기록한 책으로 원래의 이름은 『대구향교 향안속수록(大邱鄕校鄕案續修錄)』이다....
-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창렬각. 덕산 이씨 창렬각(德山李氏彰烈閣)은 일제강점기 열녀였던 덕산 이씨의 효행과 정절을 후손들이 잊지 않고자 건립된 창렬각이다. 이씨는 인천이씨(仁川李氏) 이재엽(李載燁)의 아내로서, 시집을 가기 전부터 부모에게 효도하고 동기간에 우애가 있는 등 모든 예법에 어긋남이 없었으며, 시집을 가서 남편에게 도리를 다하였다. 1921년 11월에...
-
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 형성된 성이 같은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 조선 후기 친족 질서는 내외친이 망라되는 양계적(兩系的) 친족 질서에서 적장자(嫡長子) 중심의 부계적(父系的) 친족 질서로 변화되었다. 구체적으로 혼인 형태에서 유교적 요소의 강화, 적장자 중심의 남녀 차등 상속, 장자 단독 봉사(奉祀), 부계 혈연을 중심으로 한 문중(門中)의 결성과 동성마을의 형성 등으로 나타났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밀양 박씨 창렬각은 조선 후기 순조(純祖) 때의 열부였던 밀양 박씨(密陽朴氏)의 정절과 효행을 기리고자 건립한 정려각이다. 박씨는 인천이씨(仁川李氏) 이용섭(李龍燮)의 아내로서 중년에 남편을 여의고 낳은 자식이 하나도 없었다. 당시 자신의 손으로 초상을 치르며 장례를 직접 보살피었다. 5촌 조카를 후사(後嗣)로 세워 초상을 맡게 하...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서계서원(西溪書院)은 오천(烏川) 이문화(李文和)·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를 제향하는 서원으로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恭度公派)의 대표 서원이다. 서계서원에는 조선 말 명필인 윤용구(尹用求)가 쓴 현판이 아직 남아 있다. 본래는 동재와 서재가 모두 있었으나 지금은 사우, 강당, 환성정(喚惺亭) 등으로 구성되어...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서계서원(西溪書院)은 오천(烏川) 이문화(李文和)·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를 제향하는 서원으로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恭度公派)의 대표 서원이다. 서계서원에는 조선 말 명필인 윤용구(尹用求)가 쓴 현판이 아직 남아 있다. 본래는 동재와 서재가 모두 있었으나 지금은 사우, 강당, 환성정(喚惺亭) 등으로 구성되어...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인천이씨 세거지. 인천이씨(仁川李氏)는 허씨(許氏)에서 갈린 분적종(分籍宗)으로 경원이씨(慶源李氏) 또는 인주이씨(仁州李氏)로도 불렸다. 이허기(李許奇)를 시조로 받들고 식읍으로 받았던 인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고려 중엽 이자의(李資義)[?~1095]와 이자겸(李資謙)[?~1126]부터 조선 초기 이징옥(李澄玉)[1399~145...
-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행보(行甫), 호는 낙재(樂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예빈시직장 서필(徐弼)이고, 할아버지는 서응기(徐應期)이다. 아버지는 전교 서흡(徐洽)이고, 어머니는 이익조(李益祖)의 딸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큰아버지 서형(徐浻)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부인은 박배(朴培)의 딸 죽산박...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을 결성하여 왜적에 맞서 싸운 임진왜란 의병장. 서사원은 임진왜란 때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 결성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의병장으로 활약하였고, 또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모당 손처눌과 함께 지역의 유생을 모아 선사재와 연경서원에서 강학하여 대구의 문풍을 진작시켰다....
-
대구광역시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오고 있는 성씨. 한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성씨는 다양하지만, 조선시대에 주(州)·군(郡)·현(縣)으로 구별된 행정지역에 세거한 성씨는 향안(鄕案)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일정한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향교의 운영에 인원과 재정 등을 부담하고 있다. 또한 서원·사당·서당·정자 등 문중 단위의 유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읍지(邑誌) 등의...
-
토성이 기록된 이후 이전의 문서에서 빠진 대구광역시의 성씨. 조선 초에 작성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성씨(姓氏)를 토성(土姓), 속성(續姓), 내성(來姓)으로 분류하고 있다. 토성은 그 지역을 본관으로 하거나 그 지역에 오랫동안 세거한 성씨이며, 속성은 이전의 문서에 빠진 것을 후에 다시 기록한 성씨이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속성은 문서, 즉 장적(帳籍) 등을 작성...
-
조선 후기 대구에 정착한 학자. 송원기(宋遠器)[1548~1615]의 본관은 야로(冶爐)이며, 자는 학무(學懋), 호는 후촌(後村) 또는 아헌(啞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송방현(宋邦賢)이고, 할아버지는 송응규(宋應奎)이다. 아버지는 송사호(宋師顥)이고, 어머니는 성주도씨(星州都氏)이다. 부인은 이윤(李潤)의 딸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형은 송원도(宋遠度)이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이문성을 추모하는 재실. 심수재(心輸齋)는 인천이씨(仁川李氏) 무태(無怠)[현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인 태암(苔巖) 이주(李輈)의 아버지 소재(疎齋) 이문성(李文星)[1531~1571]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이문성을 추모하는 재실. 심수재(心輸齋)는 인천이씨(仁川李氏) 무태(無怠)[현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인 태암(苔巖) 이주(李輈)의 아버지 소재(疎齋) 이문성(李文星)[1531~1571]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수령 1,000년, 400년의 보호수 두 그루. 중국 동부, 타이완, 일본 등에 분포하는 느티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의 산기슭이나 골짜기에 자라는 느릅나뭇과의 낙엽활엽교목이다. 연경동 느티나무는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879에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인데, 연경동 연경교에서 태봉마을 방향으로 500m 정도 가다 보면 약 6m의 간격을 두고 동서로 마주...
-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에 있는 이영환을 추모하는 재실. 영사재(永思齋)는 천하(川下) 이영환(李英煥)[?~?]을 기리기 위하여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 문중에서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영사재가 처음 건립된 것은 1935년이며, 지금의 재사는 1975년에 중건한 것이다. 영사재 뒤편으로 난 산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인천이씨 문중의 선영이 있다. 문중에서는 ‘칠전(漆田) 선영’이라...
-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에 있는 이영환을 추모하는 재실. 영사재(永思齋)는 천하(川下) 이영환(李英煥)[?~?]을 기리기 위하여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 문중에서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영사재가 처음 건립된 것은 1935년이며, 지금의 재사는 1975년에 중건한 것이다. 영사재 뒤편으로 난 산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인천이씨 문중의 선영이 있다. 문중에서는 ‘칠전(漆田) 선영’이라...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영양 남씨 정렬각(英陽南氏旌烈閣)은 조선 후기 영조(英祖) 때 효부이자 열녀였던 영양 남씨의 극진한 효행과 정절을 기리고자 1797년(정조 2)에 건립한 정려각이다. 남씨는 인천이씨(仁川李氏) 이만섭(李萬燮)의 아내로서 아름다운 덕성과 도량이 남달라 평소의 행실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았으며 시부모를 섬기면서 정성을 다하였고 남편을 대...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협을 추모하는 재실. 오사재(五思齋)는 이협(李莢)[1603~1682]을 기리기 위하여 인천이씨(仁川李氏) 회와공 종중에서 이협의 묘소 아래에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이협의 자는 요서(堯瑞), 호는 회와(悔窩)이다. ‘오사재’라는 명칭은 『예기(禮記)』「제의(祭義)」 편의 “제계(齊戒)를 하는 날에는 부모님이 거(居)하시던 곳을 생각하며, 웃는 소리...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협을 추모하는 재실. 오사재(五思齋)는 이협(李莢)[1603~1682]을 기리기 위하여 인천이씨(仁川李氏) 회와공 종중에서 이협의 묘소 아래에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이협의 자는 요서(堯瑞), 호는 회와(悔窩)이다. ‘오사재’라는 명칭은 『예기(禮記)』「제의(祭義)」 편의 “제계(齊戒)를 하는 날에는 부모님이 거(居)하시던 곳을 생각하며, 웃는 소리...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개항기 정려각. 월성최씨 효열각(月城崔氏孝烈閣)은 조선 후기 철종(哲宗) 때 효부이자 열녀였던 월성최씨의 지극한 효행과 정절을 기리고자 개항기인 1864년(고종 1) 11월에 세운 정려각이다. 최씨는 인천이씨(仁川李氏) 이익상(李翼祥)의 아내로서 시어머니가 병상에 있을 때 젖을 짜서 먹여 주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약으로 먹임으로써 시어머니의 생명을...
-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 위치한 자연마을. 위남마을은 봉무동의 자연마을이다. 현재 50여 호가 거주하고 있으며, 인천이씨가 주성이다....
-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이석규(李錫奎)[1816~1892]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치옥(穉玉), 호는 금서재(琴書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시채(李時采)이고, 할아버지는 이학섭(李學燮)이다. 아버지는 이기각(李基珏)이고, 어머니는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부인은 김해김씨(金海金氏)이며, 아들은 이우춘(李遇春)·이해상(李海祥)이다. 형은 이석구(李錫龜)이고, 동생은...
-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이억상(李億祥)[1835~1905]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대요(戴堯), 호는 수헌(守軒)이다. 아버지는 이석린(李錫麟)이고, 어머니는 문화류씨(文化柳氏)이다. 아들은 이병운(李柄運)이다....
-
대구광역시에서 인물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인물 설화는 대부분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인물의 유형에 따라 이인, 영웅, 장수, 명인, 고승, 열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인물 설화는 특정한 지역이나 사물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민중들 사이에서 친숙하면서도 널리 이야기되면서 역사적이고 교훈적 의미를 지닌다....
-
이허기를 시조로 하고 이말흥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인천이씨(仁川李氏)의 시조는 이허기(李許奇)이다. 이허기는 본래 김해허씨(金海許氏)였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14년(755년) 사신으로 당나라에 파견되었는데, 756년 안록산의 난 때 촉으로 피난하는 당 현종(玄宗)을 호종(扈從)하였다. 757년 난이 평정되어 도성으로 돌아온 현종이 허기에게 상으로 서책과 함께...
-
대구 지역에 남아 있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집 재실(齋室)은 조상을 추모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묘소 근처나 강학지, 유허지 등에 지은 집을 이르는 말이다. 재실의 ‘재(齋)’는 ‘제계(齊戒)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맑게 하여 선조를 생각하고 추모하는 것을 뜻한다. 묘소에 재실을 둔 것은 진한(秦漢) 때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
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문관. 전백영(全伯英)[1345~1412]의 본관은 옥산(玉山)이며, 호는 파계(巴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청도감무 전효량(全孝良)이고, 할아버지는 전객령 전문주(全文柱)이다. 아버지는 상호군 전의룡(全義龍)이고, 어머니는 집의 최원우(崔元祐)의 딸 월성최씨(月城崔氏)이다. 부인은 인천이씨(仁川李氏)이며, 아들은 전유성(全由性)이다. 동생은 전백종(全伯宗)이...
-
대구광역시에 현존하는 조선시대부터 집성촌을 이루어 온 문중의 큰집. 종가(宗家)의 사전적 의미는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 온 큰집”이지만, 종가는 전체 부계친족(父系親族) 집단의 맏이 집안을 가리키는 대종가(大宗家)와 대종가에서 갈라져 나와 새로운 종가를 이룬 소종가(小宗家)가 있다. 『예기(禮記)』「대전(大傳)」 편에서 유래한 종법(宗法)에 따르면 부계친족의 맏이는 대대로 영...
-
개항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 문인학자. 채귀해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낙응(洛應), 호는 치헌(痴軒)이다. 조선 중기의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채수곤(蔡壽坤), 아버지는 채석범(蔡錫範),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택승(宅承)의 딸이다. 부인은 인천이씨(仁川李氏)로, 석유(錫裕)의 딸이다. 3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채규식(蔡奎植)...
-
현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건립한 이억상을 추모하는 재실. 척첨재(陟瞻齋)는 조선 후기의 학자 수헌(守軒) 이억상(李億祥)[1835~1905]을 기리기 위하여 인천이씨(仁川李氏) 태암공파 수헌공 종중에서 이억상의 묘소 아래에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효자. 하정익(夏正益)[1794~1839]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내겸(乃謙), 호는 추모재(追慕齋)이다. 아버지는 하학필(夏學必)이고, 어머니는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진무원종훈(振武原從勳) 하운서(夏雲瑞)의 후손이다....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이순희를 추모하는 재실. 회연재(晦淵齋)는 회연(晦淵) 이순희(李淳熙)[1908~1972]가 만년에 서재로 건립하였다. ‘회연정사(晦淵精舍)’ 또는 ‘도곡산방(道谷山房)’이라고도 한다. 이순희는 1930년에 일본 도시샤고등상업학교[同志社高等商業學校]에 유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1946년에 조선방직주식회사 대구메리야스공장 공장장이 되었으며, 1947년에...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이순희를 추모하는 재실. 회연재(晦淵齋)는 회연(晦淵) 이순희(李淳熙)[1908~1972]가 만년에 서재로 건립하였다. ‘회연정사(晦淵精舍)’ 또는 ‘도곡산방(道谷山房)’이라고도 한다. 이순희는 1930년에 일본 도시샤고등상업학교[同志社高等商業學校]에 유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1946년에 조선방직주식회사 대구메리야스공장 공장장이 되었으며, 1947년에...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월성최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는 효열각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효열각(孝烈閣)」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월성최씨(月城崔氏)의 효행과 열행(烈行)을 기리는 효열각(孝烈閣)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효행담이자 열부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