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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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영세 상공업자와 도시 노동자를 위하여 설립된 서민 금융기관. 상호신용계의 전 용어인 무진(無盡)은 일정한 수의 계좌를 모아 기간과 금액을 정하고 정기적으로 납입한 사람에게 1계좌마다 추첨이나 입찰 등의 방법으로 금액을 내주는 일종의 계와 비슷한 형태의 제도이다. 1910년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후 개인이 하던 무진업을 1922년 5월 11일 조선총독부가 회사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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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인 자본가들이 대구에 설립한 회사. 1936년 대구 지역 조선인 자본가들은 대구의 주택난이 점점 심화되자 경북상공주식회사(慶北商工株式會社)의 설립을 준비하였다. 1937년 6월 28일 10여 명의 자본가들이 중구 대신동에 마련한 임시 사무소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경북상공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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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김관제(金觀濟)[1886~1951]는 1886년 6월 18일 지금의 경산남도 고성군 개천면 명성리에서 태어났다.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중국 만주로 망명하여 민족계 학교를 설립하였다. 이후 국내로 돌아와 대구에 한약방을 열고 사회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건국동맹에서 활동하였다. 광복 후에는 조선건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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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응섭(金應燮)[1878~1957]은 1900년대 초 대구에서 교남교육회, 조선국권회복단 등에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하고 중국 동북[만주]에서 의용단, 정의부 간부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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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에 설립된 사립 학교. 1929년 기준 달성군 내 수학 대상 인구 가운데 실제 교육 기회를 얻은 아동은 전체 지원자 769명 중 618명, 곧 80%였고 나머지 20%는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이는 일제의 지배하에 조선인의 교육 기회가 평등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당시 달성군 인구에서 입학 지원자 수가 아니라 입학해야 할 대상자를 기준으로 그 규모를 파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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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에 설립된 사립 교육 기관. 덕산학교(德山學校)는 1921년 당시 경상북도 달성군 월배면[현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 지역]에 설립되었던 사립 교육 기관이다. 당시 달성군 월배면에 거주하던 유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윤상태(尹相泰)[1882~1942]가 덕산학교를 설립하여 단독 경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6회 졸업식은 1927년 3월 19일 오전 11시에 덕산학교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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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불상을 모셔 놓고 공적으로 불교 신행을 행하는 장소. 대구광역시가 속한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5세기 초 눌지왕 때로 추정된다. 양나라 사승인 원표(元表)에 의하여 불교가 왕실에 전해지고, 이차돈의 순교로 527년(법흥왕 14)에 국교로 공인되면서 사찰이 창건되기 시작하였다. 기록상으로 보이는 최초의 사찰은 534년(법흥왕 21)에 착공되어 544년(진흥왕 5)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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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서병룡(徐丙龍)[?~?]은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에서 태어나 20세까지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그 후 달성 학교에 2년간 수학하였다. 재산은 동산·부동산을 합해 시가 2,000원 정도였다. 1908년부터 대구 농공 은행(大邱農工銀行)의 행원으로 근무하면서, 1909년 달성 친목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때 서상일(徐相日)·윤상태(尹相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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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정부 관료. 서상환(徐相懽)[1888~1968]은 1888년 9월 24일 지금의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태어났다. 1910년대 재건 달성친목회에서 활동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법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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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사찰. 안일사(安逸寺)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통일신라의 전통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末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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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사찰. 안일사(安逸寺)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통일신라의 전통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末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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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안일사와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안일사의 유래」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앞산[660.3m] 중턱에 있는 안일사(安逸寺)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사찰유래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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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동진(禹東進)[?~?]은 경상북도 달성군 월배면 상인동[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1913년 음력 정월대보름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 안일암에서 시회를 가장하여 결성된 재건 달성 친목회[조선 국권 회복단 중앙 총회]에 관계하였다. 달성군 월배면 상인동의 윤상태(尹相泰)와 우하교(禹夏敎)의 권유를 받고 달성 친목회에 가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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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병기(禹丙基)[1903~1944]는 1903년 11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에서 조선문제시국연구회(朝鮮問題時局硏究會)를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호는 월해(月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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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시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탑. 우재 이시영 선생 순국기념탑(又齋李始榮先生殉國紀念塔)은 우재 이시영(李始榮)[1882~1919]을 기리기 위하여 1972년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세운 기념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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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윤흠(允欽), 호는 노암(魯菴). 증조할아버지는 우이진(禹履鎭), 할아버지는 우해정(禹海鼎)이다. 아버지는 우권동(禹權東), 어머니는 조봉대부(朝奉大夫) 이석린(李錫麟)의 딸 인천 이씨(仁川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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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성민(聖玟) 또는 성천(聖天), 호는 향산(香山). 아명은 주경(周經)이다. 윤상우(尹相佑)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윤필은(尹弼殷)이며, 작은 아버지는 윤상은(尹相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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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창기(尹昌基)[1888~1927]는1888년 2월 1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문화동에서 태어났다. 1910년대 대구에서 재건 달성친목회 및 강유원간친회(講遊園懇親會) 등에 가입하여 항일 비밀결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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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시영(李始榮)[1882~1919]은 1882년 1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조선국권회복단] 결성에 참여하여 교통부장을 맡았고, 서울에서 3·1운동에 참가한 뒤 중국으로 망명하여 흥업단(興業團) 특파원으로 활동하였다. 이시영(李時榮)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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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1월 15일[음] 대구 안일암에서 결성된 항일 비밀결사. 달성친목회는 1909년 정운일·최병규·이근우 등이 친목을 도모하고 실업 및 교육의 발전을 목적으로 결성한 계몽운동 단체였다. 달성친목회는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활동을 펼칠 수 없었다. 이후 달성친목회 회원 윤상태·서상일·이시영 등이 1913년 1 월 15일[음] 대구 안일암에서 시회(詩會)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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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설치된 조선식산은행의 지점.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 10월 조선총독부의 금융정책에 따라 대구 지역에 설립된 금융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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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를 한 사람. 일제는 조선을 강점한 후 민족 동화를 조선 통치의 최고 방침으로 설정하고, 민족 동화의 완성을 위하여 조선인 협력자, 곧 친일파를 양성하였다. 친일파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자발적 친일파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일제의 친일파 양성 정책과 자발적 친일파의 특성은 시기마다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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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대구에서 서상일이 설립한 잡화 상회. 태궁상점은 근대적 이윤 추구를 위하여 설립된 잡화 상회이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창구 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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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유림단의 파리 만국 평화 회의에 보낸 독립 청원 운동. 3·1 운동의 전국적 확산과 1919년 2월 친일 세력과 경성의 일부 친일 유림이 야합하여 합방 절대 지지 한일 불리 청원서(合邦絶對支持韓日不離請願書)를 일왕에게 보내려던 음모가 폭로되면서 유림의 독립 청원 운동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었다. 달성군에서도 파리 만국 평화 회의에 제출한 독립 청원 운동이 독자적으로 진행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