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영세 상공업자와 도시 노동자를 위하여 설립된 서민 금융기관. 상호신용계의 전 용어인 무진(無盡)은 일정한 수의 계좌를 모아 기간과 금액을 정하고 정기적으로 납입한 사람에게 1계좌마다 추첨이나 입찰 등의 방법으로 금액을 내주는 일종의 계와 비슷한 형태의 제도이다. 1910년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후 개인이 하던 무진업을 1922년 5월 11일 조선총독부가 회사 조직...
일제강점기 조선인 자본가들이 대구에 설립한 회사. 1936년 대구 지역 조선인 자본가들은 대구의 주택난이 점점 심화되자 경북상공주식회사(慶北商工株式會社)의 설립을 준비하였다. 1937년 6월 28일 10여 명의 자본가들이 중구 대신동에 마련한 임시 사무소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경북상공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일제 강점기 대구 달성 지역에서 최초로 설립된 사립 유치원. 달성유치원은 1921년 1월 15일[음력] 홍주일(洪宙一)의 주도로 대구 남산 2동 630번지에서 개원하였다. 당시 대구 지역에 유치원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지역 유지들이 유아 시기 교육의 중요성과 부강 문명국에는 유치원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하여 설립하였다. 발기인은 서상일(徐相日)·한익동(韓翼東)·정운기(鄭雲騏)...
일제강점기 대구의 명망가들이 결성한 문화운동 단체. 대구구락부(大邱俱樂部)는 ‘대구청년회를 계승한 문화운동의 중추 실행 기관’을 전망하며 대구의 명망가들이 중심이 되어 출범한 문화운동 단체였다. 대구구락부는 1923년 무렵 대구의 대중운동에서 문화운동의 중심체였던 대구청년회가 침체되고 노농(勞農) 운동을 앞세운 대구노동공제회가 발흥하는 상황에서 실력 양성 노선을 견지하며 문화운동을...
개항기 일제가 한국의 농업과 공업을 금융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대구에 설립한 은행. 대구농공은행(大邱農工銀行)은 1906년 일제가 금융 경색 해결과 재정 기초 확립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대한제국의 농업과 공업의 개량 및 발달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워 설립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의 양조 산업.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 조선인의 양조에는 주정 5% 정도의 술인 막걸리가 주류를 이루었다. 일제는 1916년 주세를 늘리기 위하여 「주세령」을 발포하였다. 「주세령」의 제23조에 ‘연간 2석 미만의 자가용주를 허가하되 탁주 1석당 1원 50전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라고 규정하였다. 1916년 당시 농민의 10%가 자가용주 제조 허가를 얻어 「주세...
일제강점기 대구에 있던 대구 주조업자들의 이익단체. 대구주조조합(大邱酒造組合)은 1916년 무렵 결성된 것으로 보이며, 조합원 자격의 변화로 1928년 8월 다시 결성된 것으로 보인다. 1916년 대구주조조합이 처음 결성되었을 때는 소량의 술을 제조하여 파는 음식점들도 회원 자격이 주어졌으나 1928년 다시 결성된 대구주조조합의 회원 자격은 대량생산을 하는 양조업자에게만 주어졌다....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난 시인 이상화 집안의 활약상.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민족시인 이상화는 독립운동가인 형 이상정과 우국지사인 큰아버지 이일우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경주이씨 집안의 풍조를 내면화하고 있는 이상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훌륭한 인재를 키운 가풍을 들여다보면 관련성을 찾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최종한이 『성남세고』에 부친 서문. 「성남세고 서문(城南世稿 序文)」을 쓴 최종한(崔宗澣)[?~?]은 일제강점기에 대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유학자이다. 경상북도 영천 출신이다. 『성남세고(城南世稿)』를 1차 편집하고 서문을 지었다. 이칭으로 「성남세고서(城南世稿序)」라고도 한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자본가. 이상악(李相岳)[1886~1941]은 1886년 9월 20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의 여러 기업에 자본을 투자하고 경제인으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