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미군정의 실정을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하며 시작된 대규모 민중 항쟁. 10월항쟁은 미군정의 친일 관리 고용, 식량정책의 실패 등에 항의하며 대구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총격을 가하면서 발생하였다. 경찰의 발포로 대구 시민 수백 명이 희생되었고, 이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으로 확산되며 두 달 동안 계속되었다. 농민뿐만 아니라 노동자, 학생, 지식...
1947년 3월 1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민주주의민족전선 대구시위원회 주최로 열린 시민대회. 1947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대구시위원회는 광복 후 두 번째로 맞는 3·1절 기념식을 3·1운동 기념과 함께 모스크바삼상회의의 결정안을 지지하는 시민대회로 개최할 계획이었다. 시민대회는 대구의 경찰 당국이 ‘3·1일 폭동설’에 대비하여 무장 경관과 기관총 부대를 대회 장소에 출동시키고, 대...
1946년 9월 대구에서 조선노동조합대구평의회의 주도로 전개되어 10월항쟁으로 이어진 총파업. 대구 9월총파업(大邱九月總罷業)은 조선공산당이 1946년 7월 이후 미군정에 대하여 채택한 ‘신전술’의 발표를 계기로 적극적인 방식의 대중투쟁으로 미군정을 압박하는 정치투쟁을 벌이면서 현실적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주도한 9월총파업은 1946년 9월 23일 부...
1947년 7월 27일 대구의 달성공원에서 민주주의민족전선대구시위원회가 미소공동위원회 속개를 축하하고 임시정부 수립을 촉진하기 위하여 개최한 시민대회. 1946년 2월 서울의 덕수궁에서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안에 따른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으나 미소공동위원회 참가 자격 문제로 인하여 휴회하였다. 이후 1947년 5월 미소공동위원회가 속개되었다. 민주주의민족전선에서는 1946년 6월 1...
1946년 대구에서 결성된 민주주의민족전선대구시위원회 산하 청년 단체. 민주청년동맹 대구시위원회(民主靑年同盟大邱市委員會)는 민주주의 통일 정권 수립을 촉진시킬 목적으로 혈기 넘치는 청년의 단결과 규합을 도모하였다....
1946년 1월 대구에서 결성된 진보적 여성단체. 부녀동맹 대구지부는 1946년 1월 13일 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에 있던 대구공회당[현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결성된 진보적 여성단체이다. ‘대구시 부녀동맹’으로도 불린다. 부녀동맹 대구지부의 조직과 임원은 위장장 우신실(禹信實), 부위원장 정귀악(鄭貴岳), 총무부장 배영옥(培英玉), 조직부장 고윤녀(高胤女), 선전부장 박복조(朴福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