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219
한자 韓連順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8년 12월 26일연표보기 - 한연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31일 - 한연순 아산시 염치면 백암리 3.1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9일 - 한연순 대전지방법원 공주지청에서 징역 3월형 언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1월 - 한연순 도쿄에서 여자학흥회 결성 주도하고 간사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25년 - 한연순 대구제4청년회 기관지 『제4청년』 발행 책임위원 임명
추모 시기/일시 2019년연표보기 - 한연순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남산동 - 대구광역시 중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아산 - 충청남도 아산시
학교|수학지 신명여자고둥보통학교 - 대구광역시 지도보기
활동지 아산 - 충청남도 아산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여성
대표 경력 영신학교 교사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한연순(韓連順)[1898~?]은 1898년 12월 2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1일 충청남도 아산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을 조직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종근(李琮根)이 남편이다.

[활동 사항]

한연순은 대구 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영신학교(永信學交)의 교사로 근무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아산에서는 총 2,500여 명의 군민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한연순 역시 1919년 3월 31일 해가 지고 난 뒤 염치면 백암리 출신으로 이화학당 생도인 김복희(金福熙), 마을 주민 약 20명과 함께 마을 북쪽에 있는 산에 올라가 모닥불을 피우고 독립만세를 부르짖었다. 한연순은 김복희와 함께 체포되어 공주감옥소에 투옥되었고, 1919년 5월 9일 대전지방법원 공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3월형을 언도받았다. 출소 후에는 강경읍의 만동여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이후 한연순은 일본 도쿄[東京]로 유학하였고, 1920년 1월 도쿄의 여자 유학생 최진상(崔眞相)·박명련(朴命連)[박순천(朴順天)]·최영상 등과 함께 여자학흥회(女子學興會)를 조직하였다. 이때 한연순은 간사를 맡아 활동하였다. 1925년 청년의 단결과 교육 훈련을 목표로 대구에서 조직된 청년운동단체인 대구제4청년회가 주최한 창립기념회에서 ‘부인운동 양면’을 주제로 강연하였으며, 대구제4청년회 기관지 『제4청년』 발행 책임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한연순의 공적을 기려 201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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