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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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範善 |
영어공식명칭 | Lee Bumsun |
이칭/별칭 | 치원(穉元),수서(水西)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충희 |
출생 시기/일시 | 183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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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73년 - 이범선 진사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879년 - 이범선 정릉참봉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896년 - 이범선 대구군수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898년 - 이범선 대구군수 이임 |
몰년 시기/일시 | 1905년![]() |
출생지 | 광주 - 경기도 광주시 |
거주|이주지 | 광주 - 경기도 광주시 |
부임|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묘소|단소 | 군수 이후범선 영세불망비 -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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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문관 |
성별 | 남성 |
본관 | 전주(全州) |
대표 관직 | 대구군수 |
개항기 대구군수를 역임한 문관.
이범선(李範善)[1835~1905]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치원(穉元), 호는 수서(水西)이다.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이귀하(李龜夏)이다.
이범선은 1835년(헌종 1) 지금의 경기도 광주시에서 태어났다. 1873년(고종 10)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879년 정릉참봉에 임명되었다. 1896년에 대구군수로 부임하였다. 1898년에 큰 홍수가 나서 대구판관 이서(李漵)가 1778년에 쌓았던 신천(新川)의 제방 일부가 붕괴되었다. 이범선은 백성들의 재력을 빌리지 않고 며칠 동안 공사를 하여 무너진 제방을 보수하였다. 1898년 수원군수에 제수되어 대구군수에서 이임하였다. 1905년 사망하였다.
이범선이 신천의 제방을 수리한 공적을 기리는 비석인 군수 이후범선 영세불망비(郡守李侯範善永世不忘碑)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인 이공제비각(李公堤碑閣) 속에 있다. 이공제비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182-2 이서공원 안에 있는데, 비각 안에 이서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 2기와 이범선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