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0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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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權鎭 |
영어공식명칭 | Jeong Gwonjin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석배 |
[정의]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판소리 국악인.
[개설]
정권진(鄭權鎭)[1927~1986]은 1927년 10월 15일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세습 예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정권진은 판소리 명창 정재근(鄭在根)의 종손이자, 판소리 명창 정응민(鄭應珉)[1896~1963]의 아들이다. 1970년 7월 22일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활동 사항]
정권진은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아버지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아버지의 제자 박기채에게도 배웠으며, 전라남도 강진의 고성사(高聲寺)에서 5년 정도 피나는 독공을 하였다. 30세가 될 무렵에는 군산 국악원, 대구 국악원, 대전 국악원 등 지방의 국악원에서 판소리 강사를 하였다. 1961년에 서울로 가서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있다가, 1964년부터 국악예술학교에서 판소리를 가르쳤다. 그 후 56세부터 전남대학교에서 제자를 육성하였다.
정권진은 타고난 성음이 탁하고, 성량이 다소 부족하며, 상청도 약하였다. 그러나 창법상의 변화를 적절히 구사하는 방식으로 구성 있는 성음을 내어, 애절한 대목을 탁월하게 소화하였다. 강산제 보성 소리의 정통 계승자이며, 보성 소리의 전승과 보급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정권진은 1986년 2월 6일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정권진은 1982년 한국브리태니커회사에서 판소리 「적벽가」[북 김명환] 1-4를, 1992년 신나라레코드에서 「심청가」[북 이정업] 1-3를 취입하였다.
[묘소]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 도강마을에 정재근, 정응민, 정권진으로 이어지는 소리 가계 3대의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 도강마을에 보성 소리 명가를 이루어 낸 송계 정응민의 생가 터와 예적비가 있다. 1987년 12월 11일 국립중앙극장 소극장에서 정권진 추모 공연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