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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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居正 楊稀枝 送詩序 |
영어공식명칭 | Seogeojeong Yanghiji Songsiseo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구본욱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420년 - 「서거정 양희지 송시서」 저자 서거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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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478년 - 「서거정 양희지 송시서」 창작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488년 - 「서거정 양희지 송시서」 저자 서거정 사망 |
성격 | 사문 |
작가 | 서거정 |
[정의]
조선 전기 대구 출신 관료 서거정이 1478년 고향 후배 양희지에게 써 준 격려의 글.
[개설]
「서거정 양희지 송시서(徐居正 楊稀枝 送詩序)」는 조선 전기 홍문관 수찬인 양희지(楊熙止)[1439~1504]가 연로한 어머니를 봉양하려고 지방 관직인 사천현감(泗川縣監)으로 내려갈 때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격려하고자 써 준 글이다.
[구성]
「서거정 양희지 송시서」는 시와 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대구 출신인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1444년(세종 26)에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이후 대구 사람들 중에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 적어 염려하던 중 1474년(성종 5)에 양희지가 과거에 합격하여 승문원 정자(正字)에 임명되어 크게 반겼다고 한다. 서거정은 양희지가 문장에 뛰어나고, 해서(楷書)를 잘 쓰고, 활쏘기에 능하였다고 하였다. 양희지는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고, 왕이 신하들에게 활쏘기를 시험할 때 매번 등수가 앞에 있었다. 이에 서거정은 양희지를 ‘문무를 겸비한 호걸지사’라고 하였다. 과거에 합격한 지 4년 후 1478년(성종 9)에 양희지가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하여 지방 관직으로 나갈 것을 왕에게 아뢰었으나 왕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재차 아뢰어 외직으로 나아가게 되었는데, 이때 서거정이 양희지에게 「서거정 양희지 송시서」를 써 주며 격려하였다. 서거정은 「양수찬 송양수선시서(楊修撰 送楊脩撰詩序)」[양 수찬을 보내는 시의 서문]에서 “지금 가행(可行)[양희지의 자(字)] 씨가 도군(都君)[都夏]의 뒤를 이었고, 나도 재주는 없지만 외람되이 문병(文柄)을 잡고 있으니, 이것은 우리 고을이 한번 변하여 노(魯)나라와 같은 학문의 고장이 될 기미이다. 가행(可行) 씨는 마땅히 스스로 힘쓰고, 또한 나의 이 말로써 고을의 자제들을 면려(勉勵)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당부하였다.
[특징]
「서거정 양희지 송시서」는 서거정의 문집인 『사가집(四佳集)』에 시와 서문이 별도로 수록되어 있다. 서문은 『사가집(四佳集)』 제5권 ‘서(序)’에, 시는 『사가시집보유 3(四佳詩集補遺 三)』 ‘시류(詩類)’에 수록되어 있다. 『사가집』에 수록된 시의 제목은 「사천(泗川)」으로 되어 있는데, 시만으로는 서문과 연관성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양희지의 『대봉집』에는 서문이 수록되어 있지 않고, 권1에 양희지의 차운(次韻) 「차서사상 거정 증별운(次徐使相 居正 贈別韻)」과 서거정의 시가 「원운(原韻)」으로 첨부되어 있다. 그래서 『대봉집』만으로는 시를 주고받은 사연을 알 수 없다. 따라서 서문 「양수찬 송양수선시서」는 『사가집』과 『대봉집』을 함께 고찰하여야 그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서거정 양희지 송시서」를 통하여 고향인 대구에 대한 서거정의 애정과 후배를 아끼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서거정은 「서거정 양희지 송시서」를 통하여 대구 지역에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노나라와 같은 학문의 고장이 될 수 있도록 양희지가 고을의 젊은이들을 격려하고 고무하여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