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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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8년 조선 후기 학자 박세당이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석천에 거처한 이후 도봉산의 정경을 노래한 칠언 절구의 한시. 1669년(현종 10) 조선 후기 학자 박세당(朴世堂)[1629~1703]은 연경에서 관등놀이를 구경하였다는 명목으로 대간의 탄핵을 받고 석천(石泉)으로 들어왔다. 박세당은 석천으로 들어오면서 세상과 완전하게 등을 돌린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명예와 이익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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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박세당이 도봉산에서 문신 남구만의 시에 차운한 칠언 율시의 한시. 박세당(朴世堂)[1629~1703]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1660년(현종 1) 문과에 장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예조 좌랑, 홍문관 교리, 홍문관 수찬 등을 역임하였으나 당시의 정치 현실에 실망하여 1668년(현종 9) 양주 석천동[현재의 도봉산 아래 다락원]에 은거하였다. 「도봉산 운로의 시에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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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박세당이 도봉산을 바라보며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박세당(朴世堂)[1629~1703]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1660년(현종 1) 문과에 장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예조 좌랑, 홍문관 교리, 홍문관 수찬 등을 역임하였으나 당시의 정치 현실에 실망하여 1668년(현종 9) 양주 석천동[현재의 도봉산 아래 다락원]에 은거하였다. 「도봉산을 바라보며 짓다」는 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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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박세당이 도봉산을 바라보며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망도봉작(望道峯作)」은 조선 후기의 문신 박세당(朴世堂)[1629~1703]이 도봉산의 경치를 바라보며 느낀 감흥을 적은 한시이다. 박세당은 그의 나이 19세 무렵 형 박세후(朴世垕)[1627~1651]와 자주 도봉 서원에 가서 독서하면서 도봉산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망도봉작」은 박세당의 시문집 『서계집(西溪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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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8년 박세당이 도봉서원을 찾아가 조여길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사예 조여길이 도봉서원에 있다는 소식을 도중에 듣고서 가서 유숙하고, 이어 그 시에 차운하다」는 박세당(朴世堂)[1629~1703]이 사예(司藝) 조여길(趙汝吉)이 도봉서원(道峯書院)에 있다는 소식을 도중에 듣고 가서 유숙하고, 이어 조여길의 시에 차운한 시이다. 도봉서원은 왜란으로 소실된 도봉산 영국사(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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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2년부터 1655년 사이에 박세당이 초봄의 도봉산을 바라보며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악록의 촌거에 가면서 초봄에 빗속에서 도봉산을 바라보다」는 1652년(효종 3)부터 1655년(효종 6) 사이에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1629~1703]이 악록(岳麓)의 촌거(村居)에 가면서 초봄에 빗속에서 도봉산(道峯山)을 바라보다가 문득 도봉산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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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신문인 표재두가 도봉산을 등산한 체험과 관련 정보, 지식들을 묶어 출간한 도봉산 관련 서적. 『도봉만필』은 ‘도봉산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으로, 『코리아 헤럴드』 학원 사업부장을 지낸바 있는 신문인 표재두가 2,200여 회에 걸쳐 도봉산을 등산한 체험과 관련 정보, 지식들을 묶어 펴낸 도봉산 관력 서적이다. 모두 7장에 걸쳐 필자가 가진 도봉산 등산 체험, 관련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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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표가 남아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중경(重卿). 증조할아버지는 인조의 어머니인 인헌 왕후(仁獻王后)를 낳은 구사맹(具思孟)이며, 할아버지는 정사공신(靖社功臣) 능성 부원군 겸 병조판서 구굉(具宏)이다. 아버지는 구인기(具仁墍)이다. 구인기는 정사공신으로 능풍군(綾豊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어머니 여흥 민씨(驪興閔氏)는 부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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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출신의 문신이자 시인.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지숙(志叔). 고조할아버지는 좌찬성 능안 부원군(綾安府院君) 구사맹(具思孟)으로, 딸이 인조의 어머니인 인헌 왕후(仁獻王后)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구굉(具宏)이고, 할아버지는 구인기(具仁墍)이다. 아버지는 숙종 대 한성부 판윤 겸 총융사·지돈령부사 등을 지낸 구일(具鎰)로, 구지정(具志禎)[1647~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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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서원에 시를 남긴 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 증조할아버지는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고, 할아버지는 김광찬(金光燦)이며, 아버지는 김수항(金壽恒)이다. 김창협(金昌協)[1651~1708]과 그 형제들인 김창집(金昌集), 김창흡(金昌翕), 김창업(金昌業), 김창집(金昌緝), 김창립(金昌立)은 ‘6창(六昌)’이라 불리며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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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道峰山)은 서울의 북동쪽 끝인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및 양주시에 걸쳐 있는 산이다. 우이령(牛耳嶺)을 경계로 북한산(北漢山)과 접하고 있어 북한산 국립 공원에 속한다. 산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것 같은 암산으로 주봉인 자운봉(紫雲峰)에서 남쪽으로 만장봉(萬丈峰)과 선인봉(仙人峰)이, 서쪽으로 오봉(五峰)이 있고 도봉 계곡, 송추 계곡, 망월사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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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세웠던 구일(具鎰) 묘표를 찬한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 박세당(朴世堂)[1629~1703]은 당쟁이 치열하던 당시 정치에 대해 문제의식을 표출하였으며 사회 개혁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당대 주류 학문이던 주자학(朱子學)이나 중국 중심의 학풍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는데, 이러한 경향 때문에 노론이 집권한 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공격받기도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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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만기(萬基). 도봉산 기슭에 세거한 명문 반남 박씨 집안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한성부 서윤을 지낸 박응천(朴應川)이고, 할아버지는 참봉 박동민(朴東民)이다. 아버지는 인조반정(仁祖反正)에 참여한 공으로 6품직인 장예원 사평에 특별히 제수된 박환(朴煥)이고, 어머니는 부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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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위치하거나 출토된 비. 비(碑)는 어떤 사적(事蹟)을 후세에 오래도록 전하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따위에 글을 새겨 세워 놓는 것을 가리킨다. 비에는 묘비[묘갈], 중수비, 신도비 등이 있다. 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장의(葬儀)에서 세우던 풍비(豐碑)에서 유래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풍비란 하관할 때 쓰는 장구(葬具)로 큰 나무를 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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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인 경기도 양주시 해등촌면에 있던 정자. 조선 후기의 문신인 어진익(魚震翼)[1625~1684]의 옛집이 해등촌면에 있었는데, 어진익의 아버지 어한명(魚漢明)이 양주(楊州) 해등촌면에 별장을 짓고 손수 향나무와 잣나무 각각 두 그루씩을 심어 놓았다. 그 나무가 자라서 모두 아름드리나무가 되었다. 어진익의 형제는 모두 4명이었는데, 1677년(숙종 3)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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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자연을 도(道)가 구현된 공간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혼탁한 속세를 벗어나 자연 안에 머물기를 추구했다. 더욱이 자신이 처한 사회의 현실이 자신이 생각한 도학적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때는 과감하게 벼슬을 그만두고 정치 현실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자연 안에 은거하는 삶을 택하기도 하였다. 자연 안에 은거하면서 자연이 담고 있는 도학적 진리를 되새기며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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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에 제수된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혜백(惠伯), 호는 수허재(守虛齋). 증조할아버지는 경기도 관찰사를 지낸 홍처후(洪處厚)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 장령을 지낸 홍수하(洪受河)이며, 양부는 증이조참판 홍우석(洪禹錫), 생부는 홍우규(洪禹圭)이다. 어머니는 박세구(朴世耉)의 딸이다. 홍계적(洪啓迪)은 문과에 급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