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구
-
1615년 무렵 이정구가 도봉 서원을 방문하고 감회를 읊은 칠언 율시의 한시. 「과도봉서원유감(過道峯書院有感)」은 1615년(광해군 7) 무렵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가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 등과 함께 도봉 서원을 방문하고 나서 느낀 감흥을 적은 한시이다. 「과도봉서원유감」은 이정구의 시문집 『월사집(月沙集)』 권 17에 수록되어...
-
1615년 이정구가 이항복 등과 함께 도봉 서원을 방문하고 나서 쓴 기문. 「유도봉서원기(遊道峯書院記)」는 1582년(선조 15)에 수몽(守夢) 정엽(鄭曄)[1563~1625]과 함께 도봉 서원에 머물면서 독서한 적이 있었던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가 1615년(광해군 7)에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 등과 함께 다시 도봉 서원을 유람하...
-
1603년 9월 15일부터 이틀간 이정구가 신응구·박호 등과 삼각산을 노닐고 와서 쓴 기문. 「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는 1603년 8월 금강산에 다녀온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가 산수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있다가 문득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의 승려 성민(性敏)의 편지를 받고 삼각산 유람을 기획하여 1603년 9월 15일부터 16일까지 신응구(申應榘)[155...
-
1616년 중구일 무렵에 이항복이 도봉 서원에 갔다가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중구우유영국서원 무주무붕 행낭유건률건다 작률자다이위기 심시요락(重九偶遊寧國書院無酒無朋行囊唯乾栗建茶嚼栗煑茶以慰飢甚是寥落)[중구일에 우연히 영국 서원에서 노니는데, 술도 없고 친구도 없고 행낭 속에 오직 말린 밤과 건다(建茶)만이 있으므로, 밤을 씹어 먹고 차를 달여 마시어 주림을 달래노라니 매우 쓸쓸하였...
-
1615년 무렵 이항복이 도봉산의 가을 경치를 소재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추일유도봉산(秋日遊道峯山)」은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이 도봉산에 들렀다가 가을날 도봉산의 그윽한 경개와 자신의 맑은 심회를 읊은 한시이다. 「추일유도봉산」은 이항복이 60세 무렵에 동교(東郊), 즉 노원(蘆原)에 기거할 즈음인 1615년(광해군 7)에 지은 것이다. 「추일유도봉...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관료.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중옥(仲玉), 호는 은재(隱齋).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의금부 도사를 지낸 이징신(李徵臣)이다. 이규보(李珪輔)[1708~1783]는 4남 2녀 중 둘째 아들이다. 부인은 청주 한씨(淸州韓氏)로, 슬하에 2남 5녀를 두었다. 이규보의 생애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그와 같은...
-
조선 후기 도봉 서원과 관련한 글을 쓴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남궁외사(南宮外史)·택구거사(澤癯居士). 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이안성(李安性)이다. 부인은 대사헌 청양군(靑陽君) 심의겸(沈義謙)의 손녀인 청송 심씨(靑松沈氏)로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이식(李植)[1584~1647]은 한성(漢城) 남수문(南水門) 조암동(槽巖洞)에서...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관인이자 화가.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경립(敬立). 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이희량(李希良)이다. 부인은 김포 김씨(金浦金氏)로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이신흠(李信欽)[1570~1631]은 탁월한 그림 실력으로 도화서 화원(畵員)이 되었으며 관직은 부사직(副司直)에 이르렀다. 1604년(선조 37) 세자 책봉 주청사로...
-
조선 전기 도봉 서원에서 수학하고 도봉산을 유람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月沙)·보만당(保晩堂)·치암(癡庵)·추애(秋崖)·습정(習靜). 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이계(李啓)이고, 어머니는 현감을 지낸 김표(金彪)의 딸인 광주 김씨(光州金氏)이다. 이정구(李廷龜)[1564~1635]는 19세가 되던 1582년(선조 15) 정엽(鄭曄)과 함께 도봉 서원...
-
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동보(同甫), 호는 지촌(芝村)·간암(艮庵)·지사재(志事齋). 증조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낸 이정구(李廷龜)이고, 할아버지는 대제학·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이명한(李明漢)이다. 이명한은 병자호란 후 척화파로 지목되어 심양에 억류된 바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아버지는 부제...
-
조선 후기 도봉 서원에서 수학한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시회(時晦), 호는 수몽(守夢)·설촌(雪村). 증조할아버지는 찰방을 역임하고 좌승지에 추증된 정희년(鄭熙年)이고, 할아버지는 대사헌에 추증된 정선(鄭璇)이다. 아버지는 사후 영의정에 추증된 정유성(鄭惟誠)이고, 어머니는 윤언태(尹彥台)의 딸인 파평 윤씨(坡平尹氏)로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부인은 판서 이산보(李...
-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자연을 도(道)가 구현된 공간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혼탁한 속세를 벗어나 자연 안에 머물기를 추구했다. 더욱이 자신이 처한 사회의 현실이 자신이 생각한 도학적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때는 과감하게 벼슬을 그만두고 정치 현실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자연 안에 은거하는 삶을 택하기도 하였다. 자연 안에 은거하면서 자연이 담고 있는 도학적 진리를 되새기며 진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