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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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春君李仁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대남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65년 - 영춘군 이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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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507년 - 영춘군 이인 사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509년 - 영춘군 이인 신도비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12월 31일 - 영춘군 이인 묘가 위치한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106호 지정 |
현 소재지 |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1 |
성격 | 묘 |
양식 | 쌍분 합장묘 |
관련 인물 |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1465~1507]|진주 유씨(晉州柳氏)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에 있는 조선 전기 종친 영춘군 이인의 묘.
[개설]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1465~1507]은 세종의 아홉째 아들[신빈 김씨(愼嬪金氏) 소생]인 영해군(寧海君) 이당(李塘)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신윤동(申允童)의 딸이다. 자는 자정(子靜)으로 10세 때인 1474년(성종 5) 영춘군에 봉해지고, 이후 정의대부(正義大夫)에 올랐다. 사옹원 제조(司饔院提調)를 지냈는데, 1506년(연산군 12) 큰아들 완천부 정 이기(李祺)의 내폐 사건에 연좌되어 부자·형제가 모두 남해 섬으로 귀향 갔다.
1507년(중종 2) 중종반정으로 유배가 풀리고, 정국 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이 되었으며 관작이 회복되었다. 부인은 영의정 유양(柳壤)[영의정 유순정의 아버지]의 딸인 광양현 진주 유씨(晉州柳氏)로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1507년 43세로 생을 마쳤으며, 시호는 목성(穆成)이다.
[위치]
영춘군 이인 묘(永春君李仁墓)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1번지에 위치한다. 지하철 1호선 도봉역 맞은편 무수골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따라 성신 여자 대학교 생활관 방향으로 약 1.5㎞ 가면 도봉동 느티나무가 서 있다.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은 이 보호수의 북쪽 능선부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영춘군 이인 묘는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고, 좌향은 동남향이다. 묘역은 산중턱에 넓게 조성되어 있는데, 상계에는 두 봉분 사이에 1기의 묘표를 세웠고, 봉분에는 뒤가 예각인 오각형의 호석(護石)을 둘렀다. 하계에는 석상, 동자석인, 장명등, 망주석, 신도비를 배치하였다. 묘표는 관석과 비신이 한 돌로 이루어졌으며, 비신은 마모가 심하여 판독이 어렵다.
묘표는 관석 61×21×41㎝, 비신 48×15×88㎝ 크기이다. 이인 신도비는 이수 방부형으로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1509년(중종 4)에 세운 것으로, 당시 영의정이던 남곤(南袞)이 비문을 짓고, 당대 최고의 명필가인 김희수(金希壽)가 글씨를 썼다. 신도비는 총 높이 273㎝, 개석 86.5×30.5×54.5㎝, 대석 111×72×61㎝ 규모이다.
[금석문]
이인 신도비의 전액은 ‘목성공 신도비명(穆成公神道碑銘)’이며, 비제는 ‘유명 조선국 숭헌대부 영춘군 신도비명 병서(有明朝鮮國崇憲大夫永春君神道碑銘幷書)’이다. 앞면 끝 부분에 ‘정덕 사 년 구월 일 립(正德四年九月日立)’이라고 제작 연대가 쓰여 있다.
[현황]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 내에 위치하여 후손들에 의해 잘 관리되고 있다. 서울 지역 조선 전기 묘역으로는 드물게 묘역과 석물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므로, 향후 묘제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1997년 12월 31일 영춘군 이인 묘가 위치한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이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