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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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任原鎬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류정선 |
[정의]
1898년 1월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 영국리에서 발생한 구 소사의 치사 사건을 1차 조사한 양주 군수.
[개설]
1898년 1월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 영국리에서 김복이(金福伊)가 구(具) 소사(召史)[소사는 양민의 아내나 과부를 이르는 말]를 구타하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조선 시대에 인명 사건이 발생할 경우 해당 지역의 수령이 1차로 조사하고, 이후 인근 지역 수령이 2차로 조사하게 되는데 당시 양주 군수였던 임원호(任原鎬)가 1차로 이 사건을 조사하였다. 임원호는 구 소사의 시신을 조사하고, 고소인인 구 소사의 아들 오성길(吳聖吉)과 구 소사가 거주하는 면·동리의 역원, 사건 관련자, 죄인 김복이를 차례로 심문·조사하였다. 이후 임원호가 작성한 보고서는 포천 군수 윤필영(尹弼榮)이 작성한 2차 보고서와 함께 『양주군 해등촌면 영국리 피타 치사 여인 구 소사 옥사 죄인 성명 수도 성책(楊州郡 海等村面 靈菊里 被打致死 女人 具召史 獄事 罪人 姓名 囚徒 成冊)』으로 작성되었고, 현재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보관되어 있다.
[활동 사항]
임원호의 생애를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대한 제국 관보』나 당시 정부 문서들을 통해서 그의 이력을 일부 확인할 수 있다. 1896년 3월 15일 양주 군수로 임명받았고, 3월 26일에는 명성 황후의 국장 때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도로와 교량의 관리를 담당하는 국장시도로교량위원(國葬時道路橋梁委員)에 임명되었다. 1899년까지 양주 군수를 역임하다가 같은 해 2월 궁내부(宮內府) 비서원승(秘書院丞)에 임명되었다. 1903년 9월에는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에 제수되었고, 1905년 7월 함경북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 1906년 12월 봉상사 제조(奉常司提調)에 임명되었다가 이듬해 1월 해임되었고, 1907년 5월에는 함경북도 관찰사에서도 면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