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
서울특별시 강남구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벌어진 민족 내부의 전쟁이자 국제전. 6.25전쟁 중 당시 수도 서울과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던 현재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는 공산군 및 국군과 유엔군 양측 간 서울 공방 작전의 주요 무대 중 하나이자 피난민 이동의 중심 경로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눈앞에 둔 1945년...
-
서울특별시 강남구의 옛 소속 지역인 경기도 과천에서 행하던 놀이. 무동답교(舞童踏橋)놀이는 무동놀이와 답교놀이를 함께 행하는 놀이이다. 현재의 강남구가 일부 속한 과천 지역에서 행해졌으며, 조선조 22대 임금인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로 화성 능행을 할 때 과천 사람들이 임금의 행차를 반기며 행했다는 데서 그 유래를 찾고 있다. 1980년대 초에 이르러 복원되면서 그 후 다른...
-
서울특별시 강남구를 지나는 역도(驛道)를 관리하던 고려 시대의 22개 도(道) 중의 하나. 고려 시대에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525개의 역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22개의 도(道)를 설치하였는데, 광주도(廣州道)는 그 중의 하나로 현재의 강남구청을 지나는 개경에서 광주 방면의 역들을 관리하였다. 역원(驛院)제도의 기원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삼국사기(三國...
-
서울특별시 강남구가 속했던 고려 시대의 행정구역. 고려가 지방관을 파견하여 지방에 대한 본격적인 통제를 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성종 2년(983)에 12목(牧)을 설치하면서부터였다. 목은 정치상의 중심지에 설치되었는데, 12목은 양주(楊州)·광주(廣州)·충주(忠州)·청주(淸州)·공주(公州)·진주(晋州)·상주(尙州)·전주(全州)·나주(羅州)·승주(昇州)·해주(海...
-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일원동에 위치한 산. 대모산(大母山)[293m]은 구룡산(九龍山)[306m]과 함께 동서 방향으로 산세가 발달하여 강남구와 서초구의 경계를 이룬다. 대모산 줄기는 내곡동 고개를 통하여 인릉산[326.5m]과 청계산[618m]으로 이어진다. 조선 시대 한양에서 삼남지방을 연결하는 삼남대로가 대모산 서쪽 기슭을 지나면서 역(驛)·원(院)이 형성되고 봉수대가 설...
-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백제 시대 토성. 대모산토성(大母山土城)은 한성 백제의 남서쪽 관방체제로 주목되고 있다. 백제문화연구회에서는 백제 초기 신라와 100년 이상 전투하였고, 근초고왕 이후 한성 백제 말기 약 100년간 신라와 치열한 전투를 하면서 하남위례성의 남서쪽 방어선으로 양재천 남북으로 대모산토성·구룡산성·옥녀봉토성[과천시 주암동]과 우면산성[우면산 동쪽 잿골]·...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판전(板殿) 현판. 봉은사 판전은 1856년 봉은사의 승려인 남호영기(南湖永奇)[1820~1872]가 『화엄경수소연의본(華嚴經隨疎演義本)』 80권을 손수 베껴 쓰고 이를 목판으로 만들어 인출하는 작업을 하면서 그 목판을 보관할 전각으로 지은 건물이다. 1992년 12월 28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었다. 조...
-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사평원과 역삼동을 거쳐 이괄의 난을 피했던 조선 시대 제16대 왕.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종(李倧), 자는 화백(和伯), 호는 송창(松窓)이다. 선조의 손자로 정원군(定遠君)[元宗]의 아들이며, 조선의 16대 왕이다. 어머니는 좌찬성 구사맹(具思孟)의 딸인 인헌왕후(仁獻王后)이다. 비(妃)는 한준겸(韓浚謙)의 딸 인열왕후(仁烈王后)이고, 계비(繼妃...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의 지방제도는 전국의 행정구역을 8도로 나누어 관찰사를 두고, 그 예하에 부(府)·대도호부(大都護府)·목(牧)·도호부(都護府)·군(郡)·현(縣) 등을 설치하여 운영되었다. 일반적으로 군현제를 실시하였다고 한다. 이들 지방장관인 각 수령(守令)들은 행정상 모두 병렬관계를 가지고 관찰사의 관할 아래 있었다. 단지 수...
-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2동 미도2차 아파트 일대에 있었던 양재천 변 나루터. 탄천과 양재천을 동쪽과 남쪽에 끼고 있는 대치동의 미도아파트 일대에는 1962년까지 소반같이 생긴 포구가 있어서 소반 ‘반(盤)’자를 쓴 반포리로 불렸다. 포구가 있던 양재천 맞은 편은 개포동인데, 예전에 개펄이어서 개패 또는 한자명으로 개포(開浦)라고 불렸던 마을로써 지금도 개패·개포라는 옛 지명이 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