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2년~1933년경 강릉 출신 사회주의 민족 운동가들이 추진한 고려공산당 재건 활동. 강릉지역 공산당원들이 강릉 고려공산당[조선공산당] 재건을 목표로 강릉농업학교 학생들에게 사회주의 사상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고, 강릉적색농민조합원들은 고려공산당 재건을 주도하였다. 강릉청년회, 강릉농민동맹, 신간회 강릉공산청년동맹, 고려공산당 재건 동맹 참여 인물들이 1932~1933년 고려공산...
-
일제 강점기 강릉군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청년 단체. 강릉 청년 동맹은 1920년대 강릉 지역 청년 운동이 분산적·파벌적·분국적(分的局) 양상을 띠자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통일된 청년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강릉 청년 운동을 주도하였던 강릉 청년회의 조직과 활동이 유명무실해지자 1927년 11월 19일 강릉 청년회를 해체하고 김재진(金在軫)...
-
1946년 4월 남한의 공장 종업원들이 노동자의 해방과 복리를 위해 결성한 연맹. 1946년 당시 조선노동운동은 지도자의 비민족적 정신이 부식되어 갈 뿐 아니라 정치적 색채가 농후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진정한 국제노선에 입각하여 한국민족으로 독자적 입장에서 자본가의 착취를 배격하고 완전한 민주주의 원칙하에 노동자의 해방과 복리를 위해 결성되었다. 1946년 4월...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27년 12월 3일에 결성된 신간회 강릉지회의 부회장을 맡았고, 1930년 11월 9일 신간회 중앙집행위원회가 열렸을 때 중앙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강릉 지역 중등교육기관의 설립을 위해 노력하여 1928년 7월 1일 영동 지역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으로 강릉공립농업학교가 개교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27년에 신간회 강릉지회 상무간사를 맡았다. 1927년 8월 15일에 강릉유학생연합친목회에서 주최하여 강릉공회당(江陵公會堂)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학생운동의 사명’ 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고, 강원청년연맹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1927년 10월 5일 신간회 강릉지회 설치 추진위원으로 활동하여 같은 해 12월 3일 창립총회에서 상무간사를 맡았다....
-
1946년 7월 강릉시 초당동에서 발생한 좌우익 충돌 사건. 몽양 여운형이 주문진 교향리에서 동생 여운홍과 함께 학교를 세워 학생을 가르치고 있던 중, 취영정 계원인 초당 최용집이 여운형을 초당으로 모셔와 초당영어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2년 동안[1908~1910] 그의 민족의식 앙양, 영어, 창가, 체력 단련 등의 가르침은 초당리 주민들의 의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
-
1945년 해방 직후 발생한 강릉 지역에서의 좌, 우익 간의 이념 갈등. -사상이 낳은 정치적 혼란- 해방 직후 강릉 지역 좌우익의 갈등-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왔으나 강릉 지역의 일본군은 계속 무장한 채로 주둔하고 있었다. 2주일이 지나도록 미군은 오지 않았고, 하루 바삐 일본군을 몰아내려는 의지가 강했던 시민들은 38선 이북 양양에 이미 주둔해 있던 소련군에게 일본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