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강릉(江陵). 최치운(崔致雲)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최주명(崔柱溟)이다. 최치운(崔致雲)의 후손으로 진사에 올라 일찍이 시문으로 명성이 높았다. 풍모가 준수하고 위엄이 있었으며 사림(士林)에서도 뛰어나 고을의 자랑으로 여겼다. 1661년(현종 2)에는 향인들과 함께 향교를 새롭게 중수하였다. 최재태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