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강점기와 현대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강익형(姜益亨)은 1894년 12월 14일 평안남도 덕천군 덕천면 읍남리 109번지에서 태어났다. 13세까지 고향의 한문 사숙에서 한학을 배운 후 지방 명산물인 포목을 파는 소년 포목 행상을 하였다. 3·1운동 이후인 1920년 7월 강익형은 정진원(丁進源) 등을 중심으로 청년들을 규합하여 조직된 대한독립단...
-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김천 지역은 선교사들의 선교 지역 분할 협정인 교계예양(敎界禮讓)을 통해 미국 북장로교회의 주된 선교 지역이었다. 따라서 김천 지역의 개신교회도 장로교를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며 다른 교단의 교회는 상대적으로 미약한 형편이다. 김천 지역의 장로교회로서 처음 세워진 것은 1901년의 송천교회였다....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태석(權泰錫)은 1895년 8월 18일 경상북도 김천군 김천면 남산정 174-1번지[현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 174-1번지]에서 태어났다. 호는 몽우(夢牛)이다. 권태석은 충청도 홍성에서 중국과 중개 무역을 하던 최익환과 동업을 했는데, 3·1운동 직전 길림을 다녀 온 후 최익환의 권유로 대동단에 가입하였다. 1919년 5월 중순...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교훈(金敎勳)은 1896년 12월 2일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면 송천동 120번지에[현 아포면 송천리]서 김치주(金致珠)와 권송림(權松林)의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취헌(翠軒)이다. 김교훈은 대구 계성학교에서 수학하다가 중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있던 중 1917년 10월 1일 송천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1919년 3·1운...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남수(金南洙)는 1900년 5월 18일 경상북도 금릉군 아포면 제석리 274번지[현 김천시 아포면 제석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음력 8월 중순경 김남수는 김천군 아포면 인리(仁里)에 있는 음식점 백남태(白南台)의 방에서 같은 지역 민족 운동가였던 김교훈이 구미 선산 지역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를 계획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상준(金尙俊)은 1916년 12월 10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용암리에서 태어났다. 1937년 7월 7일 일제가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을 일으켜 중일전쟁이 확대되자, 1938년 조선혁명자연맹에서 한국의 열혈 청년들을 모두 규합한 뒤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를 편성하였다. 대장 나월환을 중심으로 한 한국청년전지...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수길(金壽吉)은 1902년 1월 26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금곡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대구 지역에서는 3월 8일 기독교계와 계성학교·신명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들에 의해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계성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수길은 만세 운동에 참가했다가 시위대...
-
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출판인. 김연만(金鏈萬)은 1904년경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감호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산 출신으로 김천에 정착 후 우피(牛皮) 무역을 통해 거부(巨富)가 된 김기진이다. 휘문고등보통학교[현 휘문고등학교]에 진학한 김연만은 1924년 동맹 휴학 주모자로 퇴학당한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이 일본으로 유학갈 수 있도록 도...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환(金容煥)은 1873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에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김기환이다. 자는 관옥, 호는 운강이다. 명릉참봉과 중추원의관을 지냈다. 경술국치 이후 귀향하여 유림 향약소로부터 충렬공 삼부자의 포창완의문(褒彰完議文)을 받았다. 김용환은 조선의 혼을 일깨우고자 선조 경무공의 묘비 용두에 태극을 새겨 넣었는데, 이...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원배(金元培)는 1897년 11월 17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감호동에서 태어났다. 김원득(金元得)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9일 김원배는 황금동교회의 조사 김충한과 장로 최용수 등이 주도한 만세 시위 계획에 참여한 후, 주남태와 함께 시위에 필요한 종이 태극기 제작을 담당하였다. 김원배는 거사 전날 종이로 태극기를 제작하...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일조(金壹兆)는 1912년 8월 24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제석리 834번지에서 태어났다. 김만돌(金萬乭)로도 불렸다. 1931년 12월 2일 김일조는 김천군 아포면 국사동[현 김천시 아포읍 국사리]에서 김봉화·박갑천·장삼조 등과 함께 김천 부근을 통과하는 군용 수송 열차를 전복시킬 목적으로, 김천역으로 통하는 전화선을...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재위(金在緯)는 1884년 2월 13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466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1일 김재위는 김천에서 최용수·김충한 등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된 만세 시위 계획에 가담하여 활동했는데, 금릉면 교동[현 김천시 교동]에 있는 예수교회당에서 허학선 등에게 당일의 만세 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는 등 시위 확...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정수(金正秀)는 1889년 8월 18일 경상북도 김천군 아포면 송천리 48번지[현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송천리 48번지]에서 태어났다. 1905년 지역 아동의 교육과 전도를 목적으로 송천교회에서 설립한 양성학교(養性學校)에 입학하여 1911년 졸업하였다. 이후 김정수는 기독교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미국 선교사 안의와 목사가...
-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충한(金忠漢)은 1883년 10월 24일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비봉동 707번지에서 태어났다. 미국인 선교사 어드만(W.C. Erdman)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다가 문중과 가정에서 쫓겨났던 김충한은 1906년 새로 건축한 비봉교회 초대 조사로 활동했으며, 이후 대구 계성학교를 다니던 중 목사가 되기 위해...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타관(金他官)은 1902년 6월 6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62번지에서 태어났다. 김타관은 농민으로서 개령면 동부리에서 전개된 네 차례의 만세 시위 가운데 1919년 4월 6일의 4차 시위에 가담하였다. 3월 24일 시작된 개령면 동부동의 만세 시위는 4차에 걸쳐 전개되었으며, 김타관이 가담한 4차 시위는 머슴[雇人...
-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나완기(羅浣基)는 1870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서 태어났다. 자는 공범, 호는 덕암이다. 1907년 동래에서 발의, 대구를 통해 전국적으로 확산된 국채보상운동이 개령군에서도 전개되자 모금에 동참하였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만주로 망명한 후 광복군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귀향한 후 학문에 매진하였다....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도말영(都末永)은 1891년 3월 2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도말용(都末用), 도동영(都東永), 이말용(李末用)이라 불리기도 했다. 도말영은 농민으로서 김천시 개령면 동부동에서 전개된 네 차례의 만세 시위 가운데 1919년 4월 6일에 일어난 4차 시위에 가담하였다. 개령면에서 전개된 1차 만...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출신이거나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강화도 조약 이후 일제의 침략이 미국 등 열강들의 후원 속에 본격화되는 가운데 이에 맞선 우리 민족의 독립 운동 또한 격렬하게 전개되어 갔다. 위정척사 계열의 유생들은 상소 운동과 의병 항쟁으로, 개화 지식인들은 실력 양성을 위한 계몽 운동을 전개하면서 일제 침략에 맞섰다. 이명균, 김상준...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학이(文學伊)는 1898년 6월 1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323번지에서 태어났다. 문응학(文應學)이라고도 불렸다. 문학이는 농민으로서 김천시 개령면 동부동에서 전개된 네 차례의 만세 시위 가운데 1919년 4월 3일에 일어난 2차 시위에 가담하였다. 개령면에서 전개된 1차 만세 시위는 서울에서 일어난 만...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갑천(朴甲天)은 1913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제석리 277번지에서 태어났다. 1931년 12월 2일 박갑천은 김천군 아포면 국사동[현 김천시 아포읍 국사리]에서 김일조(金壹兆)·장삼조 등과 함께 김천 부근을 통과하는 군용 수송 열차를 전복시킬 목적으로, 김천역으로 통하는 전화선을 절단하고 신호대를 철로 위로 올려놓았으나...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목회자. 박내영(朴來英)은 1873년 2월 25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351번지에서 태어났다. 박영조(朴永祚)로도 불렸다. 1915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김천 황금동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1918년 경주읍에 있는 도동리교회[현 경주제일교회] 목사로 부임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1일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 시...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만준(朴萬俊)은 1897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부상리 32번지에서 태어났다. 대구 성경학교를 다니던 1919년 3월 8일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함께 대구 남성정교회 목사 이만집이 주도한 대구 서문시장에서의 만세 시위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었다. 이후 같은 해년 6월 4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6개월을 선고 받고 복역하였다. 19...
-
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교육자·공무원. 박희범(朴喜範)은 1922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968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2년부터 1957년까지 경북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으며, 이후 1968년까지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68년 문교부차관으로 재직하며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 실시, 국민교육...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미술가. 백락종(白樂宗)은 1920년 10월 26일 대구시 중구 인교동에서 백기상의 6남 4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백종호(白宗鎬)라고도 불렀다. 대구 수창소학교와 서울 대동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혼자 유화를 익혔다고 한다. 이후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 중국 심양(瀋陽)을 방문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석기만(石基萬)은 1886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금송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석주(石柱)이다. 일제에 강점된 다음해인 1911년 만주로 망명하여 무장 투쟁에 가담하였다. 1921년 10월 장백현(長白縣) 16도구(道溝)를 중심으로 군비단(軍備團)·태극단·대진단지부(大震團支部) 등이 연합하여 조직한 대한국민단에 가담하여 서무부장...
-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독립운동가. 송준필(宋浚弼)의 본관은 야성(冶城), 자는 순좌(舜佐), 호는 공산(恭山)이다. 1869년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동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송홍익으로부터 한학의 기초를 익혔고, 17세에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강회에 참석하였다. 이후 30세까지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문하에...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한국에서 신흥 종교는 1970년대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이후로는 개신교·불교·천주교 등의 기성 종교에 비해 그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불교, 통일교 등 몇몇 신종교는 상당한 교세와 더불어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김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를 종파별로 교당 중심으...
-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의병·독립운동가 여영조(呂永祚)는 1862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다. 여영소(呂永昭)로도 불렸다. 호는 일재(一齋)이다. 일제의 을미사변과 을미개혁에 맞서 안동의진과 진주의진이 대일 항전을 전개하고 있을 때인 1895년 12월 통문을 돌리고 의병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1896년 여영조는 허위·조동호·여중룡 등과 재차...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교육가 여환옥(呂煥玉)은 1896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서 성산 여씨 여승동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1920년대 여환옥은 김천의 해산물 및 농산물 등의 위탁 판매를 하던 김천흥업사의 감사직을 맡고 있었는데, 지역의 교육열이 고조되자 자신의 본가에 광명강습소를 개설하여 지역 청소년들에게 신교육을 받게 하였다. 또한 상해임시정부의...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과 함께 활동한 독립운동가. 우용택(禹龍澤)은 1868년 9월 14일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교촌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재현(在見), 호는 육봉(六峰)이다. 개항기 참봉 벼슬에 있었다. 을미년 의병이 해산한 후 일부의 자정론자를 제외하고 의병에 참여했던 유생들은 각자의 학통과 의병 경험에 따라 현실에 참여하였다. 특히 많은 유생들이 상경하여 의병의...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목사. 유진성(兪鎭成)은 1879년 경상북도 금릉군 대덕면 관기리 701번지[현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관기리 701번지]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에 입교한 유진성은 1911년 김천군 지례면[현 김천시 지례면]에 있는 파천교회 조사(助事)로 활동하였다. 1916년경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던 중 성주군 대가면 옥화동 예수교회의...
-
개항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유철야(柳哲也)는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려고 했던 고종의 헤이그밀사 사건이 계기가 되어 한일신협약이 체결되면서 군대가 강제 해산 당하자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는 가운데 전국에서 의병 활동이 전개됐다. 1908년 유철야는 경상북도 경산군 옥산 등지에서 의병장으로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다...
-
개항기 김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한경(漢卿)[또는 漢京], 호는 성석(醒石). 족보의 이름은 이필화(李弼和)이다. 아버지는 이상영(李象榮)으로, 2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16세에 아버지의 막내 동생 이상일의 양자로 들어갔고, 22세가 되던 1873년 벽진 이씨 이승렬의 딸과 혼인하고 7년 만에 외아들 이응수(李應洙)를 낳았다. 이건석(李建奭)은 1...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명균(李明均)[또는 李銘均]은 1863년 1월 14일 경상북도 김천군 석현면 하원리[현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에서 조선 성종 대의 청백리로 유명한 충간공 이숭원의 14세손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일괴(一槐)이다. 가학(家學)으로 한학을 수학하였다. 일제 식민지 시기 절치부심하던 이명균은 대한광복회에 가입...
-
개항기 김천 출신의 의병·독립운동가. 이병구(李炳九)는 1862년 8월 1일 경상북도 금릉군 조마면 대방리[현 경상북도 김천리 조마면 대방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빈(河濱), 자는 치홍(致洪), 호는 초운(樵云)이다. 이병구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공포되자, 이듬해 3월 허위(許蔿)·강일선(姜馹善) 등과 함께 김산(金山)에서 거의했으나 관...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병일(李秉一)은 1912년 7월 5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다. 이진갑(李進甲) 또는 목촌청(木村淸)으로도 불렸다.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1928년 4월 서울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하여 재학하면서 서울의 조선철도주식회사에서 급사로 일했다. 1929년 7월 선린상업학교를 중퇴하고 조선철도주식회...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윤(公允), 호는 소암(小庵)·서주노인(西周老人)이다. 아버지는 이준성(李浚性)이며, 어머니는 하빈 이씨(河濱 李氏) 진사 이시근(李時根)의 딸이다. 이석균(李鉐均)은 1855년 1월 19일 연안 이씨 집성촌인 경상북도 김천군 석현면 하원리 167번지[현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167번지]에서 태...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승욱(李陞旭)은 1898년 1월 19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하대리에서 태어났다. 이운옥(李云玉)으로도 불렸다. 1919년 대구 계성학교 5학년에 재학 중 교사 백남채와 최상원 등으로부터 만세 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고 받고 이에 가담하였다. 당시 이승욱은 김수길·허성도 등과 함께 계성학교 아담스관 지하실에서 서울에서 도착한...
-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응수(李應洙)는 1879년 10월 7일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용암리 307번지에서 일제 침략에 상소 운동으로 맞서다 감옥에서 순국한 성석(醒石) 이건석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국권을 찾지 못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는 아버지의 유언을 실천하고자 이응수는 3·1운동 때는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다 체포되어 5개월간...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원성(林元星)은 1905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김천공립보통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임원성은 아버지 임경한이 대서(代書)하면서 남긴 용지에 한문과 한글로 「조선 독립 만세 일본 패망」이란 격문을 작성하여 박문학(朴文學)이란 이름으로 김천 지역에 있던 일본군 헌병대에 우편으로 보냈다. 그러나 대서 용지의 출처...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종업(林鍾業)은 1907년 9월 8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군 김천읍 황금정 7번지[현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 7번지]에서 태어났다. 임업이(林業伊), 임기업(林基業), 임송춘(林松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임종업은 김천공립보통학교[현 김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1923년 4월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24...
-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했던 교육자·국어학자. 정열모(鄭烈模)는 1895년 11월 1일 충청북도 회인군 향상사동[현 충청북도 보은군 회북면]에서 정해윤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장기(長鬐)이다. 정열모는 회인보통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상경하여 경성고등보통학교나 다른 학교에 적을 두면서 주시경이 주도한 조선어강습원에 참여하여 1912년 3월 중등과 제5회를,...
-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대학 교수. 심계(心溪) 정주영(鄭周永)은 영일 정씨의 집성촌인 김천시 봉산면 신리 봉계마을에서 홍문관교리와 사헌부장령을 지낸 정이교(鄭以僑)의 16세손으로 태어났다. 일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미국 애리조나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건국대학교를 거쳐 대전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정년 퇴임을 하였다. 한국종교연합협의회장,...
-
개항기 김천 출신의 천문 역학자. 정환덕(鄭煥悳)은 복술(卜術)에 능한 천문 역학자로 개항기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을 지냈는데,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 차장 정도에 해당하는 직책이었다. 정환덕은 1857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영일(迎日), 호는 퇴산이다. 1902년 1월 14일 현릉참봉[판임관 8등]에 임명되었으나 다음날 사임하였다. 같은...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환진(鄭晥鎭)은 1927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710번지에서 태어났다. 주민등록증에 수록된 이름은 정완진이다. 공훈전자사료관 포상자 공적조서에는 정환진으로 기록되어 있다. 1943년 5월 대구상업학교 4학년에 재학 중 같은 학교 학생이던 이상호·김상길·서상교 등이 조직한 항일 비밀 결사 태극단에 가입하여 정회원으로...
-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주남수(朱南守)는 1892년 9월 2일 경상남도 거창에서 한학자 주회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3월 20일 거창 지역에서는 거창읍교회를 설립한 주남고[일명 주남선, 주남수의 형] 등 거창읍교회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주남고는 당시 같은 교회 교인이던 오...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교. 김천 지역의 천주교 전래는 유배자 혹은 박해를 피해 피난 온 자들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김천 지역에 천주교가 전래된 시기는 1801년 신유박해 이후로 보여 진다. 천주교 박해에 관한 정부 측 기록으로 신유박해 직후에 쓰여 진 『사학징의』에는 충청도에 살던 천주교인 박춘산이 김천으로 귀양 온 사실과...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무길(崔武吉)은 1896년 12월 18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 562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1일 김천 장날의 만세 시위가 무산된 이후 김천 전역에서 시위가 확산되어 가던 4월 5일 저녁 8시 최무길은 김천시 대화정[현 평화동]에 있던 헌병분대에 잠입하여 ‘조선 독립 만세’를 삼창하다가 그 자리에서 검거...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상원(崔相元)은 1890년 3월 9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에서 공부하다 1906년 선교사 부해리(傅海利)[본명 Henry Munro Bruen]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1906년 개교한 대구 계성학교의 첫 번째 졸업생이 되었다. 1912년 최상원은 모교인 계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성경·...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용수(崔龍洙)는 1865년 10월 12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 174-15번지에서 태어났다. 김천 황금동교회 장로였던 최용수는 1919년 3월 9일 황금동교회에서 서울에서의 만세 시위를 경험하고 돌아온 같은 교회 조사(助師) 김충한과 대구 지역 만세 시위에 가담했다가 일본 경찰을 피해 김천으로 온 김수길 등과 만나 김천 지...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학길(崔鶴吉)은 1862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 639번지에서 한학자인 남애(南厓) 최창락(崔昌洛)[1832~1866]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최익길(崔益吉) 또는 최학광(崔鶴光)으로도 불렸다. 18세에 아버지 최창락을 따라 성재(性齋) 허전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이후 족형인 양오(陽梧) 최봉길(崔鳳吉)[1853...
-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독립운동가 편강렬(片康烈)의 선대는 대대로 경상북도 김천 지역을 본거지로 살아왔으나 할아버지 대에 황해도 연백으로 이주했다. 이런 연유로 편강렬은 1892년 2월 28일 황해도 연백군 봉서면 현죽리 목동에서 편상훈의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호는 애사(愛史)이다. 1905년 11월 일제가 을사늑약[을사조약]을 체결하자...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 독립운동가. 편덕렬(片德烈)의 집안은 원래 경상북도 김천을 본거지로 살아왔으나 할아버지 대에 황해도 연백으로 이주하였다. 1897년 황해도 연백군 봉서면 현죽리 목동에서 편상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편덕렬은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의병장이자 대한광복회와 의성단 등에서 독립 운동을 전개하던 편강렬의 아우이다. 경성에 있는 협성중학교를 졸업한...
-
개항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항일 의병장. 허위(許蔿)의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왕산(旺山)이다. 1855년(철종 6) 4월 2일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의 선비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맏형 허훈에게 학문을 배웠다. 허훈은 성호 이익의 학문을 이은 학자였다. 허위 형제는 1895년 민비의 시해와 단발령 소식을 듣고 각각 의병에 가담했다. 허위는 상주와 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