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령면 동부리는 교통의 요지이자 개령들의 경제한 기반을 바탕으로 개항기부터 교회와 신식 학교가 건립되어 일찍부터 의식 있는 선각자와 민족 지도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교육과 선교의 힘은 민족의식으로 승화되어 김천 지역 독립운동의 시발지가 되기도 했는데, 이는 동부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4차에 걸친 만세운동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919년 3월 24일 동부리의 아침이 밝았...
“어쩐다냐?” 개령현 동부리 쌍샘 인근 비석거리에 사는 김규진은 애꿎은 담뱃대만 뻑뻑 빨아대며 한숨을 쉰다. 벌써 여러 날 전부터 개령관아에서 지난해 빌렸던 보리쌀을 갚으라고 아전들이 닦달을 하더니, 급기야 어제는 가마솥을 떼어 갔고 오늘은 또 동헌에 불려 나가 볼기까지 얻어맞았다. 설상가상으로 재작년 환곡을 갚지 못한 동생은 식솔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했다. “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