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령
-
경상북도 김천 출신인 최송설당이 지은 한글 애향 가사. 「금릉풍경」은 조선 후기에 태어나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 하의 불운한 시기를 살다 간 김천의 여류 교육자요 작가였던 최송설당(崔松雪堂)[1855~1939]이 지은 애향·축원 가사이다. 금릉(金陵)이란 김산(金山)[현 김천]의 고호(古號)이다. 예전부터 고향 산천의 풍경을 읊은 시가(詩歌)는 전국적으로 많았고...
-
1509년 봄 강혼이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부상역에서 기생에게 정표로 준 시. 목계(木溪) 강혼(姜渾)[1464~1519]은 경상감사가 되어 지방을 순행하며 성주에 왔다가 기생 은대선(銀坮仙)과 정이 들어 떠나면서도 부상역(扶桑驛)까지 동행한다. 그런데 이불은 벌써 개령으로 보낸 뒤라 서로 떨어지지 못한 둘이 이불 없이 부상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서 그 감회를 읊어 기생...
-
1738년 발간한 경상도 김천 지역 일대에 설치되었던 역의 호구 대장. 『건륭삼년김천도형지안(乾隆三年金泉道形止案)』은 저지(楮紙)에 필사하였고 크기는 가로 80㎝, 세로 56.5㎝이다. 광곽은 사주 단변(四周單邊), 행수는 32행으로 상(上)은 대 1행(行), 하(下)는 소 2행으로 모두 40장이다[이하는 결락으로 알 수 없음]. 김천도찰방이 관할하는 19개의 속역(屬驛...
-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국내외적 정세는 민족의...
-
757년부터 1413년까지와 1895년부터 1914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4 신라본기 제4 진흥왕에 “18년에 국원(國原)[충주(忠州)]을 소경(小京)으로 삼고, 사벌주(沙伐州)[주치(州治)는 상주(尙州)]를 폐하고, 감문주(甘文州)[주치는 김천군(金泉郡) 개령(開寧)]를 두어 사찬 기종(起宗)으로 그곳의 군주(...
-
김현선(金玄繕)을 시조로 하고 개령(開寧)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신라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전해지는 고려 시대에 장군을 지낸 김현선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개령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개령김씨의 시조 김현선은 『조선명신록(朝鮮名臣錄)』에 개성 김씨(開城金氏) 시조로 기록되어 있고, 『개성김씨세계보(開城金氏世系譜)』에 고려의 인...
-
문세욱(文世郁)을 시조로 하고 개령(開寧)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개령문씨의 시조인 문세욱은 원래 신라 삼중대광벽상공신(三重大匡壁上功臣)에 오르고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진 문다성(文多省)을 시조로 하는 남평 문씨(南平文氏)였는데, 문세욱의 후손들이 개령문씨로 창관(創貫)하였다. 조선 전기에 문과 급제자 4명, 무과 급제자 1명과 사마시(司馬試) 급제자 5명을...
-
조선 후기 경상도 개령 지방[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 전국적으로 발생했던 농민 항쟁의 하나인 개령민란은 삼정의 문란이 가장 심했던 때에 일어났다.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의 문란, 즉 삼정의 문란이 계속 되자 동학이 일어나고, 1862년 2월에는 진주에서 민란이 발발하였다. 이러한 불길이 거창·선산·상주·성주를 비롯한 인근 고을에까지 번지더니 삼...
-
“털털털…….” 개령면 동부리 배현[1962년생] 씨에게 전화를 하면 항상 요란한 기계음이 먼저 들린다. 배현 씨는 김천 지역에서 가장 많은 벼농사를 짓는데, 그래서인지 처음 만났을 때도 트랙터를 타고 나왔다. 주민들 사이에서 쌀박사로 통하는 배현 씨가 동생 배언[1965년생] 씨와 함께 경작하는 논은 26만 4464㎡로 400마지기[8만 평]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면적이다. 우리나...
-
드넓게 펼쳐진 개령들의 중앙에 봉긋 솟아 있는 감문산(甘文山)은 동부리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명의 산이다. 오랜 옛날부터 감문산은 추풍령에서 불어오는 북풍한설을 묵묵히 막아 내고 땔감을 제공해 동부리 주민들에게 매운 겨울을 나게 했으며, 험한 비바람을 가로 막아 개령들의 대풍을 담보해 주는 보루(堡壘)이기도 했다. 또 역사적으로 삼한 시대 소국 감문국이 동부리를 도읍지로 정...
-
2010년 5월 1일, 개령면 동부리에 있는 개령초등학교 운동장에 아침 일찍부터 형형색색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2009년 예정됐던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가 신종 인플루엔자로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개교 101주년이 되는 2010년에서야 지각 기념행사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개령초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빗내풍물단의 축하 공연을 시작으로 막이 오른...
-
“일본은 이미 우리의 수륙 요충 지대를 점거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만약 그들이 우리의 허술함을 알고 충돌을 자행할 경우 이를 제지할 길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은 우리가 본래 모르던 나라입니다. 갑자기 황준헌의 종용을 받고 우리 스스로가 끌어들인다면 그들이 풍랑을 헤치고 험한 바닷길을 건너와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의 재산을 약탈하거나 저들이 우리의 약점을 잡아 어려운 청을 강요한...
-
홍성원(洪成遠)을 시조로 하고 개령(開寧)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개령홍씨의 시조는 고려 시대 예빈성주부(禮賓省主簿) 동정(同正)을 지냈다. 1637년(인조 15) 홍씨 문중에 홍계상(洪繼祥)이 무과에 급제한 것 외에는 문헌이 없어 알려진 것이 없다. 1908년 성씨가 없는 노예 천민의 창관 창씨할 때 개령홍씨로 호적에 신고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 계림사에는 창건 설화가 전해온다. 계림사가 들어앉은 산이 와호산인데, 풍수지리설로 산세가 드세어 맞은편 마을[김천시 아포읍 대신리]에는 흉악한 사건이 잦아 이를 막기 위해 절을 지어 닭을 천 마리 길렀다고 한다. 그런데 기르던 닭이 자주 폐사하자 절 이름을 계림사라 고쳐 닭 기...
-
경상북도 김천시에 산재하고 있는 신라 시대의 무덤. 김천 지역은 대체로 감천 수계의 범위에 속하는데, 최하류는 구미시 선산읍에 해당한다. 그 외 서부 지역인 증산면 일대가 성주·고령 방면으로 흐르는 대가천 상류 지대에 속하나 이 지역은 후대의 행정적 균형을 위해 인위적으로 편입한 지역이므로 원래의 김천 권역은 최하류를 일부 제외한 감천 유역권으로 볼 수 있다....
-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국가의 감독 아래 법령에 정해진 업무를 처리하는 기관. 공공기관은 국가에서 설립하고 운영하는 기관과 지방 자치 단체에서 설립하고 운영하는 기관, 기타 공공 단체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김천의 공공기관은 김천의 지방 자치 행정을 실현하기 위하여 설립·운영되는 기관을 말한다. 김천은 1914년 김산군과 지례군[증산면과 길방리는 제외], 개령군...
-
임진왜란 당시 공자동에서 일어난 김천의 대표적 전투. 왜장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가 이끄는 왜군이 개령현에 왜군 후방 사령부를 구축하자 그 소속 부대가 대항면 공자동에 포진하고 있었다. 1592년 7월 봉계 출신의 좌수 정유한(鄭維翰)이 피란 갔다가 잠시 봉계마을에 들러 창의 격문을 보고 봉계에서 의병군 150명, 대항면에서 100명을 모아 김산군수 이우빈에게 인계하였다. 당시...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관광 자원. 김천시는 예로부터 그 자연환경이 수려하여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으로 불렸다. 경상북도 서남부의 관문으로 소백산맥 서남쪽으로 뻗어 충청북도, 전라북도, 경상남도와 접경을 이루고 시의 중심부를 감천과 직지천이 관통하고 있다. 황악산, 대덕산, 삼도봉, 수도산 등 고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산세가 수려하고 자...
-
개항기에서부터 광복 이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역사. 김천은 1895년(고종 32) 지방 제도 개혁에서 김산군·개령현·지례현은 모두 군으로 되었고, 1905년 증산면이 성주군에서 지례군으로, 다음 해에 성주군 신곡면(薪谷面)과 황간군(黃澗郡) 남면이 김산군으로 각각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개령군·김산군·지례군이 김천군으로 통폐합되었다. 1917년...
-
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이루어진 근대식 교육. 김천 지역에서 근대 교육이 확산되는 시기는 대한 제국 시기 이후부터이다. 을사조약 이후 ‘근대 교육=국권 회복’이라는 인식이 지방으로 확산되면서 군수, 계몽 단체 회원, 상인 세력, 교회, 사찰 등 다수 세력에 의해 학교가 설립되었다. 김천 지역에서는 김천상업회의소·김천민의소·대한협회 김천지회·교남교...
-
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9권 경상도(慶尙道) 개령현(開寧縣)에 “하활곡부곡(下活谷部曲)·상오지부곡(上烏知部曲)·금물도부곡(今勿刀部曲)은 지금은 모두 폐지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제49권 제계고 10 부록 씨족 4조에는 “금물도 홍씨(今勿刀洪氏...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오봉리에 위치한 고려 후기의 산성. 금오산은 동남쪽으로 팔공산[1,193m]과 마주보고 있고, 남쪽으로는 수도산[1,327m]과 가야산[1,430m], 북쪽으로는 황학산[1,111m], 서북쪽으로 삼도봉[1,172m], 민주지산[1,241.7m]과 맥을 같이 한다. 행정 구역 상으로 보면, 금오산은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구미시, 칠곡군...
-
동부리는 삼한 시대 김천 지역에 자리 잡은 소국인 감문국의 도읍지가 된 이래 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 말까지 개령군과 현의 읍치로서 김천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큰 마을 중 하나이다. 그런데 동부리가 그러한 영광 못지않게 역대 중앙 정부로부터 곱지 않은 시각과 경계, 나아가 멸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드물다. 신라의 정복 전쟁에 대한 감문...
-
1601년 김천 출신의 길운절(吉云節)이 일으킨 반역 사건. 길운절[?~1601]은 개령현 아포 제석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다가 패륜아로서 횡포가 심하여 유생들에 의해 쫓겨나 선산으로 이주하였다. 1601년(선조 34) 정여립(鄭汝立)의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된 소덕유(蘇德兪)[정여립의 척분]를 찾아가 함께 모반을 도모하였다. 임진왜란 직전인 1589년(선조...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독립운동가. 김단야(金丹冶)는 1901년 1월 16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69번지에서 김종원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태연이다. 추성(秋星), 달연(達淵), 주(柱)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1908년 4월 개진학교에 입학했다가 1909년 4월 진명학교(進明學敎)로 옮겼고, 1910년 4월에는 영진학교...
-
1399년부터 1914년까지 경상북도 김천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제도. 1399년(정종 1) 김산현(金山縣) 관내 황악산에 제2대 정종(定宗)의 태를 안치한 후, 이웃의 어모현(禦侮縣)을 폐합하여 김산군(金山郡)으로 승격시켰다. 김산군에는 지군사(知郡事)가 파견되었다. 1. 『고려사(高麗史)』 『고려사』 제82권 지 제36 병 2 참역조에는 “경산부도(京山府道)...
-
구한말 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있었던 국권 회복을 위한 의병 운동. 1894년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으로 인해 청일 전쟁과 갑오개혁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조선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1895년 8월 일본에 의해 을미 명성왕후 시해 사건이 있었고, 11월에는 단발령이 내려졌다. 이에 각지의 유림들이 일본을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려는 의병 운동을 일으켰다....
-
남북국 시대부터 1499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757년(경덕왕 16) 지방 행정 제도의 개편에 따라 개령군(開寧郡)의 영현(領縣)이 되었고, 1018년(현종 9) 지방 제도 정비의 일환으로 개령군에서 경산부(京山府)[현 성주군 일대]로 이속되었다. 『삼국사기』 권 제34 잡지 제3 지리 1 신라에는 “김산현(金山縣)은 경덕왕이 주현의 이름을...
-
지난 1월, 상주목 관할의 개령현감으로 부임한 김숙자(金叔滋)는 동헌 마루 끝에 올라서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근심어린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님, 소자 종직이옵니다.” “그래, 어디 다녀오는 게냐?” “예, 소자 향교에 다녀오는 길이옵니다. 그런데 아버님, 어찌 그리 낯빛이 어두우시옵니까?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신지요?” 김숙자의 아들 김종직은 19세의 나이...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 있던 고택. 김천 지역에는 조선시대 집성촌을 중심으로 많은 고택이 형성되었다. 김산군에 영일정씨, 청녕조씨, 벽진이씨, 화순최씨, 지례현에 남평문씨, 김녕김씨, 성산여씨, 연안이씨, 개령현에는 성산배씨, 단양우씨, 남양홍씨, 해주정씨 등의 고택이 있었는데 이중 단양우씨의 종가는 ‘우상학 종택’으로 불리며 개령 일대 최대 규모를 자랑하였다. 단양우씨...
-
요즘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녹색 성장이다. 현재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과 홍수 예방,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 등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4대 강 정비 사업과 함께 하천 유역의 문화와 관광 자원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 또한 주목할 말한 일이다. 이것은 대표적인 자연 환경인 하천이 가진 친환경적이면서 녹색 자원으로의 활용 가능성을 확인해 준 것이라고 하...
-
요즘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녹색 성장이다. 현재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과 홍수 예방,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 등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4대 강 정비 사업과 함께 하천 유역의 문화와 관광 자원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 또한 주목할 말한 일이다. 이것은 대표적인 자연 환경인 하천이 가진 친환경적이면서 녹색 자원으로의 활용 가능성을 확인해 준 것이라고 하...
-
삼국 시대 이전에 성립되었던 대부분의 소국이 그러하듯 감문국(甘文國) 또한 1700여 년의 풍상 속에 대부분의 유적이 훼손되고 멸실되어 그 흔적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따라서 감문국의 실체에 접근하는 방법은 제한된 사료(史料)와 전설, 문학 작품 등에 나타난 한정된 관련 자료를 통해 유추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감문국이 성립될 수 있었던 데는 먼저 청동기 시대...
-
경상북도 김천시 율곡동에 있는 김천시 관할 치안 행정 기관. 김천경찰서는 김천시민들의 생명과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치안 유지 활동과 교통 단속 및 교통사고 처리, 자동차 단속 등 공공의 안녕과 질서의 유지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09년 김천 지역에 헌병분대가 설치되어 경찰 행정을 담당하다가 1919년 8월 경찰 제도의 개정에 의해 김천헌...
-
경상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시. 김천시는 경상북도 남서부 지역의 사회·문화·산업·행정·교통·관광의 중심지이며 동경 127°52′~128°18′, 북위 35°49′~36°15′에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 칠곡군·성주군, 서쪽으로 충청북도 영동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남쪽으로 경상남도 거창군, 북쪽으로 상주시·구미시와 접하고 있다. 김천시 동쪽에는 금오산(金...
-
경상북도 김천시 신음동에 있는 공공 의료 기관. 김천시 보건소는 김천 지역 시민의 건강한 삶을 위하여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을 도모하는 보건 의료의 중추 기관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 김천시 보건소 1962년 6월 19일 김천시 모암동 143-66번지에 건물 면적 115.70㎡규모의 단층 건물로 김천시 보건소가 설치되었으며 1968년 10월 20일...
-
경상북도 김천시 부곡동에 있는 축구 단체. 김천시 축구협회는 축구 인구의 저변 확대와 축구 진흥 및 지역에 거주하는 축구 동호인들 간의 친선 도모를 위해 설립되었다. 김천 지역에서는 1920년 대 초반 최송설당의 재정적 뒷받침으로 축구팀이 조직되었으며 개령, 지례 축구팀들과 시합을 갖기도 하였다. 192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금릉청년회가 중심이 되어...
-
김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일컫는 상징어가 삼산이수(三山二水)라면 찬란했던 김천의 문화 예술을 표현하는 상징어는 단연 영남 제일 문향(嶺南第一文鄕)이라 할 것이다. 김천 지방은 삼한 시대 감문국(甘文國)으로부터 신라,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편리한 교통을 배경으로 전략적 요충지로서 위상을 유지했는데 특히 고려 7대 목종은 군호(君號)를 김천의 옛 지명의 하나인 개령을 따...
-
아버지 김숙자(金叔滋)로부터 학맥을 이어받은 김종직(金宗直)은 58세 때인 1489년(성종 20)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아내의 고향이자 아버지의 임지[개령현감] 따라 면학하던 곳이요, 아내와 아들 김목아(金木兒)가 묻혀 있어 가장 애착이 가는 김천의 백천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 서당인 경렴당(景濂堂)을 짓고 평소 공부하던 경서(經書) 등 천 권의 서책을 옮겨 학문 강론의...
-
낙동대감으로 불리며 흥선대원군과 함께 세도 정치를 몰아내고 정계를 혁신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조선 후기와 개항기 청백리의 대명사인 낙파(洛坡) 유후조(柳厚祚). 개령면 동부리 관학산에는 바로 그 유후조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관학산의 주산인 감문산은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와 동부리, 양천리를 품고 있는 삼한 시대의 소국인 감문국의 진산이자, 감문산성으로 인해 위난...
-
개령초등학교 를 끼고 돌아 계림사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동부리에서 양천리로 넘어가는 뒷고개[일명 말랑고개] 아래에 고풍스런 기와집 한 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오랜 세월 대나무 밭에 들어앉아 음침스럽기 짝이 없던 이 집은 2008년 말 비로소 주변에 있던 대나무들을 걷어내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나무 숲을 따라 난 마당을 가로지르면...
-
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에 있는 대구지방검찰청의 지청. 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청은 경상북도 김천시와 구미시[구 금릉군, 선산군 포함]를 관할 지역으로 하고 김천경찰서와 구미경찰서를 관할 경찰서로 하여 두 지역의 검찰 사무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07년 법률 제8호로 재판소 구성법이 제정·공포되면서 김천에 대구지방재판소 소속으로 1909년...
-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대증(大增)의 ‘대(大)’자와 회성(會聖)의 ‘성(聖)’자를 따서 대성동(大聖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 개령군 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회성·신기(新基)[일명 새터]·대증·온수(溫水)가 통합되어 김천군 아포면 대성동이 되었고, 1949년 금릉군 아포면 대성동이 되었다. 1971년 회성이 대성...
-
일제 강점기 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전개된 민족 독립 운동. 일제 강점기 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도 일제의 침탈에 맞서 민족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다. 개항 이후부터 한일 병합 조약에 이르는 시기에는 국권 수호와 회복을 위한 운동으로 의병 전쟁과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1910년 국권 피탈 이후로 이러한 국권 회복 운동은 조국 광복을 위한 민족 독립 운동으로 이어지면서...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출신이거나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강화도 조약 이후 일제의 침략이 미국 등 열강들의 후원 속에 본격화되는 가운데 이에 맞선 우리 민족의 독립 운동 또한 격렬하게 전개되어 갔다. 위정척사 계열의 유생들은 상소 운동과 의병 항쟁으로, 개화 지식인들은 실력 양성을 위한 계몽 운동을 전개하면서 일제 침략에 맞섰다. 이명균, 김상준...
-
개령면 동부리는 김천 시내에서 감천을 따라 동북 방향으로 8㎞ 거리에 위치한 개령면의 소재지 마을이다. 삼한 시대 소국 감문국으로부터 고려와 조선 시대 군현(郡縣)의 읍치로서 개령 지역을 대표하는 마을이었던 까닭에 많은 유적지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감문산과 감천에 인접한 자연 경관이 수려하여 볼거리가 많다. 감문국의 궁궐 연못 동부연당에서 시작해 정원댁과...
-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이다. 지금으로부터 1700여 년 전 신라에 의해 멸망한 작은 나라 감문국은 개령 지역을 지배했고, 당연히 임금과 왕비가 살았다. 그렇다면 개령면 동부리에 도읍을 정하고 불꽃처럼 일어섰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잊혀진 왕국 감문국은 왜 개령 동부리에 도읍을 정했을까? 김천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감천을 따라 8㎞ 거리의 감천 변에 개령면 동부리가 자리를...
-
동부2리로 들어서면 동부연당의 맑은 물이 거울처럼 빛나고, 고개를 들면 나지막한 관학산이 마을을 고즈넉이 품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을을 지나 관학산 아래로 다가서면 웅장한 기와집 일부와 드넓은 대지가 펼쳐져 있다. 동부리 60번지로 통칭되는 단양우씨 집안의 고택들이 밀집되어 있던 곳인데, 그 면적이 1000여 평[약 3305.79㎡]에 달할 만큼 넓다...
-
1894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동학 농민군이 봉건 정부의 수탈과 탐학에 반대하고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며 일으킨 운동. 김천 지방에 동학이 전파된 때는 제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 시기였다. 1890년 11월 최시형은 경상북도 김천군 구성면 용호동 김창섭의 집에 머물면서 내수통문을 각 읍에 포고하였다. 김천에서 농민군이 조직된 시기는 대체로 동학 농민군이 전주성을 장악...
-
“이기[이것이] 우짠기요?” 2009년 5월 8일 어버이날, 개령면 동부리 주민 김기환[1922년생] 씨는 난데없이 지팡이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허참, 누군지 몰라도 잘 갔다가 놓았네.” 그리고 그즈음 감문산 등산로 입구에 누군가 지팡이를 갖다 놓기 시작하였다. 2008년 8월 개령면장으로 부임한 김병조[1959년생] 씨는 희망근로자들과 함께 명아주를 가꾸어 만든 청려장 지팡이...
-
경상북도 김천시 모암동에 있는 삼한 시대에서 삼국 시대의 주거지 유적. 모암동 주거지 유적은 1996년부터 2010년에 걸쳐 시굴 및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1996년에는 김천시 문화유적 지표 조사가 김천시 전역에서 이루어지면서 모암동 주거지 유적도 조사되었다. 1997년 12월에는 경북대학교 박물관이 경부고속철도 대구·경북권 발굴 예비 조사의 일환으로...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문학이란 상상의 힘을 빌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또는 작품을 일컫는다. 김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학은 크게 고전 문학과 현대 문학의 범주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고전 문학의 경우 고려 시대 개령현의 임춘(林椿)을 필두로, 조선 초기에 활동한 반곡(盤谷) 장지도(張志道)를...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시윤(施允), 호는 학촌(鶴村). 증조할아버지는 박원직(朴原直)이고, 할아버지는 박지(朴址)이며, 아버지는 영천부사를 역임한 박성건(朴成楗)이다. 어머니는 흥덕 장씨이고, 7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장인은 박윤종(朴胤宗)이다. 박이룡(朴以龍)[1533~1593]은 어려서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
개령면 동부리는 교통의 요지이자 개령들의 경제한 기반을 바탕으로 개항기부터 교회와 신식 학교가 건립되어 일찍부터 의식 있는 선각자와 민족 지도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교육과 선교의 힘은 민족의식으로 승화되어 김천 지역 독립운동의 시발지가 되기도 했는데, 이는 동부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4차에 걸친 만세운동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919년 3월 24일 동부리의 아침이 밝았...
-
삼한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던 소국(小國). 변진감로국(弁辰甘路國)은 현재 김천시 개령면과 감문면 일대에 있던 소국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231년(조분이사금 2) 신라의 대장군 석우로에게 토벌되었다. 그리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조선 전기까지 이 지역에는 감문국 때의 궁궐터와 감문국 왕의 무덤인 김효왕릉(金孝王陵) 및 장부인(獐夫人)의...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복산(福山)의 ‘복(福)’자와 마전(馬田)의 ‘전(田)’자를 따서 복전(福田)이라 하였다. 조선 말 충청북도 황간군 황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상마전·하마전·복산이 통합되어 경상북도 김천군 봉산면 복전동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봉산면 복전동이 되었다. 1971년 복전1동·복전2동으...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부터 마을에 뽕나무가 많아 잠업이 성하였는데, 가야금을 만든 우륵(于勒)이 이 마을에서 생산된 명주실로만 가야금 줄을 매었다고 하여 ‘뽕나무 상(桑)’자를 써서 부상이라 하였다. 1970년 고령에서 발견된 『산천유집(山泉遺集)』에 우륵이 작곡했다는 12곡의 가야금부(伽倻琴賦), 즉 가야금 노래에 부상의 명주실로 우륵의 가야금을 만...
-
개령면 동부리에 들어서면 십중팔구 “케갱, 케갱” 하는 금속성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개령초등학교 학생들의 농악 수업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빗내농악은 개령들을 중심으로 한 대부분의 마을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 손자로 전해져 왔기에 꽹과리 소리는 어디서도 예사로 들을 수 있었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마을 입구 쌍샘에서 동제를 올릴 때 농악대가 개령...
-
김천 지역을 흔히 사통팔달의 교통 도시라고 한다. 김천 지역이 교통의 요지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삼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한 시대 김천 지역에 자리 잡은 감문국은 개령면 일대를 중심으로 성주 일대의 가야, 상주의 사벌국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하지만 경주 지역을 근거로 하여 주변 소국을 차례로 정복하며 성장한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에 의해 서기 231년...
-
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9권 경상도(慶尙道) 개령현(開寧縣)에 “하활곡부곡(下活谷部曲)·상오지부곡(上烏知部曲)·금물도부곡(今勿刀部曲)은 지금은 모두 폐지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제49권 제계고 10 부록 씨족 4조에는 “상오지 홍씨(上烏知洪氏...
-
임진왜란 때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돌고개[석현]에서 벌어진 김천의 대표적 전투. 이 석현전투로 인해 고개는 돌모리로 불리게 되었으며 면 이름도 석현면으로 불리게 되었다. 석현[돌고개]은 조선 시대에는 김산군, 지례현의 접경을 이루었다. 조선 시대에는 지례현 하북면에 속한 상좌원리는 1914년 석현면에 편입되어 상좌원과 도동, 원앞을 통합하여 하원리가 되었다. 구미의 석현면 면청사...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정서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작품. 김천을 소재로 사용한 시는 고려 중·후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임춘의 「장검행」, 「미수방여어개령 이아리지주위향 작시사지」, 이첨의 「고관의산록」 등의 한시에 추풍령, 개령, 김천역이 소재로 등장한다. 이후 이밖에도 감문, 지례, 부상, 직지사, 추풍령, 황악산, 감천, 직지천, 아포...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김천 지역에서 식품 재료를 조리하여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 생활과 풍습을 말한다. 지역적으로 김천 지역은 경상북도 서북부에 위치하여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인 김천분지(金泉盆地)를 이루고 있다. 남에서 북으로 관류하는 감천(甘泉)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감천의 지류인 직지천으로 인하여 연변에 평야지가...
-
조선 시대 김천 지역의 효부. 심기(沈箕) 처 정씨(鄭氏)는 지금의 김천시 개령면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정손(鄭遜)이고 처녀 시절부터 후덕한 덕을 갖추어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으며, 개령에 살던 선비 심기와 혼인하였다. 정씨는 시부모를 친부모 섬기듯이 하였는데, 시어머니가 부창(浮脹)으로 수년간 몸져눕자, 하루도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병간호를 하였다. 어느 날 밤 정씨를...
-
개령면 동부리 마을 입구, 현재의 개령파출소 앞에는 두 개의 우물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양쪽의 우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탓에 예부터 쌍샘이라 불렸는데, 1년 365일 맑은 물이 넘쳐흘러 동부리 주민 전체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우물이자 빨래터였던 곳으로 지금은 동부리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마을 안에 함부로 우물을 파면 용왕신이 노한다 하여 우물을 뚫을 수 없었던 탓에...
-
김천에서 선산 방면으로 지방도 59호선을 따라가다 개령면 동부리로 접어들어 개령초등학교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돌아들면, 개령향교 뒤편 감문산 자락에 규모는 작지만 직지사와 함께 김천 제일의 역사를 자랑하는 천년 고찰 계림사(鷄林寺)가 나타난다. 김천 지역에서는 옛날부터 계림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전설이 전하는데, 동부1리 주민 강상철(1927년생) 씨의...
-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이나 주장을 알려 여론을 형성하거나 인쇄물을 제작·복제하여 판매 또는 배포하는 일의 총칭. 김천 지역의 언론은 신문이 주로 맡고 있는데 신문은 지면 신문과 인터넷 신문으로 세분할 수 있다. 신문이 언론으로서 대중화된 것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이다. 일제 치하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언론인으로 활약한 인물로 이정득...
-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의병·독립운동가 여영조(呂永祚)는 1862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다. 여영소(呂永昭)로도 불렸다. 호는 일재(一齋)이다. 일제의 을미사변과 을미개혁에 맞서 안동의진과 진주의진이 대일 항전을 전개하고 있을 때인 1895년 12월 통문을 돌리고 의병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1896년 여영조는 허위·조동호·여중룡 등과 재차...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김천시의 역사. 김천 지역은 삼한 시대에 감문국(甘文國)과 주조마국(走漕馬國)이 있었고 삼국 시대에는 신라가 감문국과 주조마국을 병합하여 감문주(甘文州)를 설치하였던 곳이다. 신라 때는 김산군에 속하는 산간 촌락에 지나지 않았으나, 조선 초기에 역마제도가 생긴 이후 인근 주민들의 물물 교환 및 주변 지역과의 교역 중심지로서의 역할...
-
동부리를 감싸고 있는 감문산에 오르면 멀리 마을을 회오리쳐 흐르는 감천과 드넓게 펼쳐진 개령들, 감문산으로부터 뻗어 내린 관학산과 유동산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이곳이 지금으로부터 418년 전 동부리를 비롯한 개령 읍민 절반이 희생된 비극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개령 동부리 일대는 수로와...
-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정치가. 할아버지는 유성남[요셉, 1858~1936]이고, 할머니는 서분준[아나다시아, 1861~1942]이며, 아버지는 유병직[바오로, 1884~1922]이고, 어머니는 김주익[마리아, 1883~1916]이다. 부인은 문정숙[도미딜라, 1922~ ]이다. 유창국(劉昌國)[1917~2009]은 호는 백파(白波)이며, 세례명은 야곱이다....
-
임진왜란 당시 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왜적을 몰아내기 위해 일어난 의병들의 항쟁. 임진왜란은 일본이 오랜 기간 전국 시대를 통하여 전쟁 경험을 쌓고 신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하여 일으킨 전쟁이었다. 이에 비해 조선은 당쟁에만 몰두하여 군비가 전무한 상태였다.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하여 서울까지 오는데 20일이 채 걸리지 않았을 정도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왜군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도...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 있는 개항기의 문신 이경재의 불망비. 이경재(李景在)[1800~1873]는 본관이 한산(韓山)으로 자는 계행(季行), 호는 송서(松西)·소은(紹隱),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이태중(李台重)의 증손이며, 현감을 지낸 이희선(李羲先)의 아들이다. 1822년(순조 2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규장각직각·이조참의·이조참판·평...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합천(陜川). 자는 경망, 호는 눌재(訥齋). 강양군 이요의 후예이다. 이여림(李汝霖)은 명종 때 김천 개령에서 태어났다. 선조조에 생원이 되었다. 학문이 심오하였지만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학덕을 숨기고 임천에 은거하였으나 절속하지 않았다. 지봉 이수광(李睟光)·벽오 이시발(李時發) 등과 끝까지 도의로 사귀었고, 사림의 중망을...
-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김천지부에서 2009년 7월 3일부터 9월 25일까지 개최한 공연. 2009 찾아가는 문화예술활동은 문화·예술 체험이 부족한 농촌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직접 방문하여 공연, 전시 등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처음에는 총 8개 권역으로 나누어 8회 공연을 계획하였으나, 행사가 열리는 기간에 신종 인플루엔자의 영향으로 6개 권역에서...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직여, 호는 해재(海齋). 아버지는 이유(李遊)이다. 집안이 대를 이어 주자학을 연구하고 실천하여 ‘사세 학행, 사세 유일’로 명성을 얻었다. 아버지 이유도 형 이혼과 함께 고향에 은거하면서 성리학에 잠심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중종 대에 학행으로 안음현 훈도에 제수되었고,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아들 이지남[자 성지, 호...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면여(勉餘), 호는 양계(陽溪). 아버지는 개령(開寧)에 세거지를 둔 이상규(李尙規)이고, 장인은 황준경(黃浚瓊)이다.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으로 이함(李馠)과 이암(李馣)이 있고, 아우로 이필(李馝)과 이발(李馞)·이의(李薿)가 있다. 이하(李馥)[1626~1688]는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 삼봉에서 태어나,...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면여(勉餘), 호는 양계(陽溪). 아버지는 병자호란 이후 절의를 지켜 개령 삼봉에서 두문불출한 숭정처사 이상규(李相規)[1596~1645]이다. 이하(李𩡘)는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에서 태어났다. 1651년(효종 2)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654년(효종 5) 문과에 급제하였다. 1660년(현종 1) 사헌부...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교육가이자 사업가. 이한기(李漢驥)[1894~1955]는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 덕포동[현 감문면 곡송리]에서 태어났다. 1899년 1월 덕남서당(德南書堂)에서 수학한 뒤 1910년 3월 개령 개진학교를 졸업하였다. 1911년 3월 취성의숙 중학부 제2년을 수료하였다. 1912년 12월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기술원양성소, 1913년 12월 구국기술...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김천시는 경상북도 남서부 지역의 사회·문화·산업·행정·교통·관광의 중심지이다. 1995년 생활권이 하나였던 김천시와 금릉군이 하나의 통합시를 이루어 김천시가 되었으며 2010년 현재 1개 읍[아포읍], 14개 면[농소면·남면·개령면·어모면·봉산면·대항면·감천면·감문면·조마면·구성면·지례면·부항면·대덕면·증산...
-
“어쩐다냐?” 개령현 동부리 쌍샘 인근 비석거리에 사는 김규진은 애꿎은 담뱃대만 뻑뻑 빨아대며 한숨을 쉰다. 벌써 여러 날 전부터 개령관아에서 지난해 빌렸던 보리쌀을 갚으라고 아전들이 닦달을 하더니, 급기야 어제는 가마솥을 떼어 갔고 오늘은 또 동헌에 불려 나가 볼기까지 얻어맞았다. 설상가상으로 재작년 환곡을 갚지 못한 동생은 식솔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했다. “아이고,...
-
조선 전기 김천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개령(開寧). 자는 우춘(遇春), 호는 수호자(垂胡子).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임재광이며, 서자로 태어났다. 임기(林芑)는 학문에 특출한 자질을 보였다. 영민하고 지인지감(知人之鑑)이 있었으며 관상도 잘 보았다. 부모상을 마치고 한양으로 올라와 남학(南學)과 동학(東學)에서 역관의 공부를 하였다. 한리학관(漢吏學官)으로 있으면...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개령(開寧).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에 증직된 임기(林芑)이다 임우춘(林遇春)은 부친 임기가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피살된 후 원수를 갚기 위해 경상북도 상주군 갑장산에서 의병을 모아 기습을 준비하던 중 정유재란 때 적에게 발각되어 사로잡히고 말았다. 임우춘은 끌려가다가 부친의 산소가 가까워 오자, “나는 임기의 아들이다. 죽음은 두렵지...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4월 13일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은 한양을 함락하기 위해 교통로를 따라 빠르게 진격하였다. 구로다 나가사마[黑田長政]가 이끄는 우로의 왜군은 무계~성주~개령을 거쳐 4월 25일 교통의 요지인 김천역에 도착하였다. 김천역을 지키던 우방어사 조경(趙儆)과 조방장 양사준이 적을 맞아 싸웠으나 패배하여 조...
-
고려 전기 김천 지역에 기거한 문인. 본관은 예천(醴泉). 자는 기지(耆之), 호는 서하(西河). 고려 건국 공신의 자손으로 할아버지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충경(忠敬)이라는 시호를 받은 임중간(任仲幹)이고, 아버지는 한림원학사를 지내 귀족 사회에서 정치적·경제적 기반을 지닌 임광비(任光庇)이다. 역시 한림원학사를 지낸 큰아버지 임종비(任宗庇)에게 학문을 배웠다. 임...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순거. 할아버지는 죽정 장잠이고, 아버지는 참의 장곤이다. 장홍한(張鴻翰)[1571~1594]은 의기가 초인하고 지략이 절륜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승 찬희와 그 상좌승 수정을 사로잡는 공을 세웠다. 1593년(선조 26) 10월에는 황간의 의병장 박이룡과 더불어 김산, 지례, 개령, 선산 네 개 읍의...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재우(載羽), 호는 운재(雲齋). 아버지는 생원(生員) 정은견(鄭銀堅)이다. 아들로 정수(鄭遂), 정연(鄭延), 정준(鄭遵), 정손(鄭遜), 정지(鄭遲), 정탁이 있으며, 정탁은 1564년 식년시에 생원으로 급제하였다. 정란(鄭鸞)은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 광덕리 탄동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뜻이 곧고 호학하...
-
2010년 여름날에 찾은 정원댁(庭園宅)에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백일홍이 잔치라도 벌인 듯 활짝 피어 있었다. 감문산 의 정기가 갈마골과 뒷고개를 타고 내려와 머문 곳. 그 형세가 학이 갓을 쓰고 있는 것과 같다 하여 이름조차 신비로운 산이 바로 관학산(冠鶴山)이다. 관학산은 예부터 큰 부자가 나올 명당 터로 알려져 왔는데, 산 아래인 동부리 80...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정서룡(鄭瑞龍), 자는 인보(仁輔).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정내신(鄭乃臣)이다. 정유한(鄭維翰)[1568~1640]은 어릴 때부터 영민하고 효성 우애가 돈독하였다. 13세에 시구(詩句)를 맺을 줄 알았다.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다리에 갑자기 종기가 나서 일어서지를 못할 때 삼촌과 함께 병간호에 치성을...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김천 지역의 역사. 고려 시대의 경우 지방에는 대체로 520여 개의 군현이 존재하였다. 그렇지만 고려 시대의 경우 수령이 파견된 주읍은 130여 개에 불과하고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군현은 속읍이라 하여 주읍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군현에 소속된 향·소·부곡·처·장이라고 부르는 부곡제 영역이 현재 확인된 것만도 900여 개 이상이었다. 고려 시대 주-속...
-
개항기 김천 출신의 동학 농민군. 1894년 5월 초 동학 농민군은 전주성에서 철수했으나 무장을 풀지 않고 각기 자신들의 근거지로 돌아가 세력을 유지했다. 이후 일본군과 청군의 철수를 재촉하기 위해 정부 측에서 동학교도들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전라감사 김학진도 역시 같은 태도를 보이게 되자 각 지역의 동학 세력은 급격히 팽창했다. 특히 7월 초 전라감사 김학진과 전봉준...
-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주생활은 김천 지역에 전승되어 온 전통적인 양식과 구조를 가진 주거 건축 및 가옥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활 행위이다. 이를 주거 생활이라고도 한다. 김천은 한반도 남부의 중앙에 위치하여 예부터 교통의 요지로서 일찍이 마을이 성립하고 도시가 발전했다. 1991년 구성면 송죽리에서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 주거지 유적이 발견되었다....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덕면의 중심이 되는 마을이어서 중산(中山)이라 하였다. 마을 뒷산인 중산이 마을 이름으로 굳어졌다고도 한다. 조선 말 지례군 하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중산·다화(多花)가 통합되어 김천군 대덕면 중산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대덕면 중산리로 개칭되었고, 1960년 중산이 중산1리, 다화가 중산2리로...
-
임진왜란 때 지례현[지금의 김천시]에서 의병 연합군이 왜군을 섬멸한 전투.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들은 교통로를 따라 한양으로 직행하였으나 후방에서 의병들이 일어나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공격을 가하자 1592년 5월 초 한양 함락 후 각 도를 분담하여 공격하는 전술을 택하였다. 이때 고바야가와 부대는 전라도를 맡아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처음 창원에서 남원으로 직행하려다가...
-
757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제도. 신라 시대에는 지품천현(知品川縣)이라 불렸으며, 757년(경덕왕 16)에 지례현(知禮縣)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어모현, 무풍현, 김산현과 함께 개령군(開寧郡)의 영현이 되었다. 1.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사기』 권 제34 잡지 제3 지리 1 신라 상주 개령군에 “개령군(開寧郡)의...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철을 사용하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우리나라 철기 문화의 시작은 중국 연나라로부터 철기를 도입한 기원전 3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의 경우 석기와 더불어 청동기 중심의 유물에서 철기 유물이 유입되는 단계로, 검의 경우 철검과 칼 손잡이의 동제품의 결합으로 이어졌다. 기원전 2세기경 제출(製出)[만들어 냄] 기술이 빠르게 전파되었으며, 주조(鑄造...
-
임진왜란 당시 추풍령에서 일어난 김천의 대표적 전투. 1592년 3월 14일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이 파죽지세로 각 읍을 함락하고 북진하자 조정에서는 17일 강계부사 조경(趙儆)을 우방어사로 임명하여 즉시 추풍령으로 떠나게 하였다. 조경은 이수광(李睟光)을 종사관으로, 양사준을 조방장으로 삼아 100여 명의 관군을 이끌고 김산 김천역에 당도하였다. 때마침 진주성 훈령봉사인 30세 청...
-
전통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신하. 김천 지역의 충신을 기록한 자료로는 『품천지(品川誌)』, 『금릉승람(金陵勝覽)』,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교남지(嶠南誌)』, 『금릉군지(金陵郡誌)』 등이 있다. 김천 지역의 충신을 유형별로 나누면 조선 개국에 항거하거나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충신은 두 임...
-
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9권 경상도(慶尙道) 개령현(開寧縣)에 “ 하활곡부곡(下活谷部曲)·상오지부곡(上烏知部曲)·금물도부곡(今勿刀部曲)은 지금은 모두 폐지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제49권 제계고 10 부록 씨족 4조에는 “하활 홍씨(下活洪氏)[...
-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역사, 지리, 풍속, 산업 등을 조사 연구하여 기록한 책. 향토지는 크게 정부 기관과 지방 자치 기관, 민간단체, 향토지 간행을 위한 임시 조직체 또는 개인이 간행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김천 지역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가장 오래된 책은 1454년에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인데, ‘김산군 편·지례현 편·개령현 편’에 김천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