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샘물. 김천 과하천은 김천이라는 지명이 유래된 유서깊은 샘이다. 1718년(숙종 44) 여이명(呂以鳴)이 저술한 『금릉지(金陵誌)』에 예부터 금이 나는 샘이 있어 금천(金泉)이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 초에 현재의 남산동 김천초등학교 일대에 역을 설치하고 이 샘 이름을 따서 역 이름을 금천역이라 했는데 역 주변에 역리(驛吏)가 거주...
-
김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일컫는 상징어가 삼산이수(三山二水)라면 찬란했던 김천의 문화 예술을 표현하는 상징어는 단연 영남 제일 문향(嶺南第一文鄕)이라 할 것이다. 김천 지방은 삼한 시대 감문국(甘文國)으로부터 신라,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편리한 교통을 배경으로 전략적 요충지로서 위상을 유지했는데 특히 고려 7대 목종은 군호(君號)를 김천의 옛 지명의 하나인 개령을 따...
-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에 전해 내려오는 놋쇠로 만드는 타악기 제작 기술. 김천징장은 황금동의 대표적인 무형 문화재로서 놋쇠를 이용하여 만드는 타악기 공예이다. 김천시 약물내기[황금동, 약수동]는 6·25전쟁 이전까지 경기도 안성과 함께 유기 생산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놋쇠 식기를 비롯한 대야·요강·징·꽹과리 등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생산되는 놋쇠 기구의 대부분을 이곳에...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감주골[甘州谷] 안쪽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내감(內甘)이라 하였다. 감주골은 원래 골이 깊은 계곡이어서 감계(嵌溪)라 하였고, 군진(軍陣)이 주둔했던 병영에서 계곡으로 쌀뜨물을 흘려보내 물맛이 달았으므로 감주(泔州)라고도 하였다. 조선 말 지례군 상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내감[일명 웃감주]·진터가...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 충청북도 황간군 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남전(藍田)·도산(道山)이 통합되어 김천군 봉산면 덕천동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봉산면 덕천동이 되었다. 1971년 용배(龍背)가 덕천1동, 남전·도산이 덕천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덕천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봉산면 덕천리...
-
“정월 대보름날 전후로 주조 공장 일꾼들이 물지게로 과하주 빚는다고 하루 종일 물을 길어다 나르는데 사람이 부족해서 그때 이 동네 사람들도 품 팔러 다니기도 했지.” 남산동 과하천 인근에 사는 이재탁[80세] 어르신에게 과하주와 과하천은 아직도 김천의 아련한 향수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과하천의 본디 이름은 김천(金泉)이라고 하는 이 고장의 지명이 유래된 남산동의 ‘김...
-
“정월 대보름날 전후로 주조 공장 일꾼들이 물지게로 과하주 빚는다고 하루 종일 물을 길어다 나르는데 사람이 부족해서 그때 이 동네 사람들도 품 팔러 다니기도 했지.” 남산동 과하천 인근에 사는 이재탁[80세] 어르신에게 과하주와 과하천은 아직도 김천의 아련한 향수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과하천의 본디 이름은 김천(金泉)이라고 하는 이 고장의 지명이 유래된 남산동의 ‘김...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공근(公瑾), 호는 만학당(晩學堂)·숭정처사(崇禎處士). 증조할아버지는 공조참판 배흥립(裵興立)이고, 아버지는 현감 배명전(裵命全)이다. 배태래와 배태휘(裵泰彙) 두 명의 아들을 두었다. 배태래[1651~1701]는 자는 내보이고, 호는 농수(農叟)이다. 경학에 밝아 숙종조에 관찰사의 천거로 사헌부감찰에 제수되었지만...
-
김천에서 수도하다 입적한 것으로 보이는 조선 후기의 고승이자 승병장. 자는 징원(澄圓), 호는 벽암(碧巖). 어머니는 조씨(曺氏)이다. 벽암대사(碧岩大師)[1575~1660]는 10세에 출가하여 설묵(雪默)의 제자가 되었으며, 14세에 보정(寶晶)에게서 구족계를 받은 후 불경을 공부하였다. 그 뒤 선수(善修)의 제자가 되어 스승을 따라 속리산, 덕유산, 가야산...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울곡리에 있는, 이숭인을 기리기 위한 조선 전기의 사당. 보본사(報本祠)는 고려 말기[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색(李穡), 야은(冶隱) 길재(吉再)를 삼은 (三隱)이라 하는데, 길재 대신 이숭인을 넣기도 한다]의 한 사람인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을 불천위로 제사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이숭인은 고려 말의...
-
조선 후기 김천 직지사로 출가한 고승(高僧)이자 의병장.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송운(松雲),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별호는 종봉(鍾峯). 아버지는 임수성(任守成)이다. 사명대사(泗溟大師)[1544~1610]는 직지사에 6년간 머물렀으며 주지를 지냈다. 1575년(선조 8) 왕의 중망(衆望)에 의하여 선종의 수사찰(首寺刹)인 봉은...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있던 관용 숙소인 상좌원(上佐院) 위에 있는 마을이므로 상원(上院)이라 하였다. 조선 말 지례군 하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원터[院基]·마드리·무티실이 통합되어 김천군 석현면 상원리로 개편되었다. 1934년 김천군 구성면 상원리가 되었고, 1949년 금릉군 구성면 상원리로 개칭되었다. 1995년 김천시 구성면...
-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독립운동가. 송준필(宋浚弼)의 본관은 야성(冶城), 자는 순좌(舜佐), 호는 공산(恭山)이다. 1869년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동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송홍익으로부터 한학의 기초를 익혔고, 17세에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강회에 참석하였다. 이후 30세까지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문하에...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산(金山). 자는 무수, 호는 학포(學圃)·해붕(海鵬). 유섭의 후손이다. 유익명(兪益明)[~1455]은 지금의 김천시 감천면 금송리에서 태어났다. 무예가 뛰어나 무과를 거쳐 사량만호(蛇梁萬戶)가 되었고, 1427년(세종 9) 세자가 조현(朝見)할 때 사직으로 참여하였다. 1440년(세종 22) 병조참판 황보인(皇甫仁) 등이 장수가...
-
고려 말기 김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호는 송월당(送月堂). 할아버지는 광정대부(匡靖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이언충(李彦冲)이며, 아버지는 밀직부사 이광익(李光翊)이고, 장인은 판서 백광비(白光庇)이다. 아들로 승려 상부(尙孚)와 이종(李悰)을 두었다. 이사경(李思敬)은 1356년(공민왕 5) 서북면병마부사(西北面兵馬副使)를 지내고, 뒤에 판사재감...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평(廣平). 자는 희성(希聖). 아버지는 직장 이춘란(李春蘭)이고, 어머니는 흥해 최씨이다. 이삼성[1564~1624]은 지금의 김천시 양천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향시에 수차례 합격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물고기를 잡아 모친을 봉양하였으며, 충의위(忠義衛)를 거쳐 찰방으로 향촌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였다. 36세가...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경덕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숭원(李崇元)의 초상화. 이숭원[1428~1491]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중인(仲仁),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중종 때 청백리에 뽑혔다. 「이숭원 초상화」는 이숭원[1428~1491]이 1471년(성종 2) 좌리공신3등(佐理功臣三等)으로 연원군(延原君)에...
-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에 있는 조선 초기의 문신 이약동의 유허비. 이약동(李約東)[1416~1493]은 본관이 벽진(碧珍)으로 자는 춘보(春甫), 호는 노촌(老村), 시호는 평정(平靖)이다. 김종직(金宗直), 조위(曺偉) 등과 교분이 깊었다. 1441년(태종 14) 진사시에 합격하고, 1451년(문종 1) 증광문과에 급제한 뒤 사섬시직장(司贍寺直長)을 거쳐 내...
-
편갈송(片碣頌)을 시조로 하고 편만천(片萬天)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절강편씨는 명나라 어양총절사(漁陽摠節使)로 있다가 정유재란 때 경략도독(經略都督)으로 조선에 출병하였으나, 간신의 무고로 귀국하지 못하고 귀화한 편갈송을 시조로 한다. 아버지의 귀화 소식을 들은 아들 3형제가 조선으로 찾아왔다가 귀국하지 않고, 전라도 나주와 김제에 정...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승려. 호는 벽계(碧溪), 법호는 동계대사. 정심(淨心)이라고도 한다. 성은 최씨이다. 정심(正心)은 김산군[현 김천시] 출신이다. 각운(覺雲)의 법을 잇고, 명나라에 가서 임제종(臨濟宗) 총통화상(摠統和尙)의 법인(法印)을 받아 귀국하였다. 그 뒤 직지사에 머물렀다. 연산군이 불교를 억압하여 절을 헐고 불상을 없애고 승려를 강제로 환속시켜 불교의...
-
조선 전기 김천 지역의 열녀. 본관은 영일(迎日). 아버지는 찰방 이대유(李大有)이다. 정유한(鄭維翰) 처 이씨(李氏)[1570~1597]는 14세에 영일 정씨 집안의 정유한과 혼인하였다. 정숙하고 예모 있는 행동거지로 집안사람들이 귀하게 여겼다.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선조 30) 음력 9월 18일, 왜적이 명나라 군사에게 쫓겨 충청북도 괴산에서 흑운산(黑雲山)[...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교리의 지례향교에 있는 조선 전기의 전각. 지례향교는 김천 시내에서 경상남도 거창군 방향으로 국도 3호선을 따라가면 김천시 구성면에 있는 구성지방산업단지를 지나 고개 너머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례향교는 1426년(세종 8)에 지례현감 정옹이 객사 동쪽에 창건하고, 1485년(성종 16)에 지례현감 김수문(金秀文)이 인재 양...
-
연안이씨 집성촌인 원터마을은 조선 성종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일등공신 정양공(靖襄公) 이숙기(李淑琦)[1429~1489] 선생을 입향조로 모시고 있다. 이숙기 선생은 연성부원군 이말정의 아들로, 구성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용맹하며 큰 뜻을 품었던 이숙기 선생은 1453년(단종 1) 25세의 나이로 무과에 일등 급제하여 훈련원주부가 되었다. 1456년(세조 2)인...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화순(和順). 호는 원로(元老). 증조할아버지는 최원지(崔元之)이고, 할아버지는 제용감정(濟用監正) 최자하(崔自河)이며, 아버지는 생원(生員) 최안선(崔安善)이다. 어머니는 나상지(羅尙之)의 딸이고, 부인은 권순(權循)의 딸이다. 최사로(崔士老)[1406~1469]는 1406년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에서 태어났다. 1434년(세종 1...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최중홍의 본관은 화순(和順)이고 자는 자부(子溥)이다. 최안선(崔安善)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대사성 최사로(崔士老)이고, 아버지는 예조참의 최한정(崔漢禎), 어머니는 병조참의 이익(李翊)의 딸이다. 최중홍(崔重洪)[1466~1533]은 1483년(성종 14) 계묘 식년시에 입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어 1496년(연산군 2) 병진 식년시 문과 합격하여...
-
개항기 김천 출신의 동학 농민군. 편보언(片甫彦)은 1866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다남리 참나무골에서 무관 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절강(浙江)이다. 절강 편씨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들어온 명나라 유격장 편갈송(片碣頌)의 후손으로 대대로 무과 벼슬을 했다. 편보언의 할아버지는 1854년(철종 5) 무과에 급제했으며, 50마지기의 토지를 소유했다....
-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에 있는 조선 시대 관료 이약동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 평정공 이약동(李約東)은 1451년(문종 1)에 증광 문과에 급제하고 사섬시직장(司贍寺直長)을 거쳐 1454년(단종 2) 감찰(監察)·황간현감, 1458년 지평(持平)을 거쳐 선전관(宣傳官), 종부시정(宗簿寺正), 귀성부사, 제주목사 등을 지내고 1474년(성종 5) 경상좌도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