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
-
조선 시대 김산군, 지례현, 개령현에 설치한 객사의 터. 객사(客舍)는 조선 시대에 각 고을에 둔 관사(館舍)이다. 여기에 다른 지역에서 온 벼슬아치를 대접하고 묵게 하였다. 김천 지역에는 조선 시대 김산군을 비롯해 지례현과 개령현에 각각 객사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359번지에 설치하였던 김산군 객사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미상이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
경상북도 김천시를 거쳐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고속 국도. 경부고속국도는 부산광역시 금정구를 기점으로 하고 서울특별시 서초구를 종점으로 하여 한반도의 남북을 잇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 도로이다. 경부고속도로 또는 고속국도 1호선이라고도 한다. 1968년 2월 1일 기공하여 1970년 7월 7일 완공하였다. 사업비는 한일 기본 조약에서 얻은 차관과 미국으로부터...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광천리에서 아포읍 송천리를 거쳐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철도. 경부선철도(京釜線鐵道)는 우리나라 철도의 중추 간선 노선으로 길이는 전체 길이는 444.5㎞이며 대전광역시, 대구광역시 등을 지난다. 1905년 1월 1일 전 구간이 개통되었고, 2006년 12월 8일 전 구간이 전철화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 수탈 정책을...
-
경상북도 김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김산향교가 있어 향교골 또는 교리(校里)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마을 지형이 갓 모양과 같아 관동이라고도 하고, 달리 생깃골이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 김산군 군내면 교리와 향동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1914년 향동과 상리 일부가 병합되어 김천군 금릉면 교동으로 개편되었다. 1931년 김천읍 교동이 되었고, 1949년...
-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과 삼락동에서 출토된 토기와 자기 등 생활 유물. 교동 유적지 유물은 1996~1997년 계명대학교 박물관에서 시행한 교동 택지개발지구[교동·삼락동]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생활 유물들이다. 이곳은 조선 시대 관아와 객사, 군기 터 등이 있던 곳이다. 김천 지역에는 고려 후기인 1390년에 감무가 설치되었다. 이후 조선 시대부터 일제...
-
경상북도 김천시 부곡동과 교동을 잇는 다리. 교동교는 통행 하중 43.2톤, 길이 98.0m, 경간 수는 11개이다. 다리 폭은 28.5m로, 보도 폭 6.2m, 차도 폭 22.3m이다. 차로는 총 6개 차로로 상행, 하행 각 3개 차로이다. 상부 구조인 주경간 형식은 RC(Reinforced Concrete) 슬라브이며 받침의 종류는 탄성받침이다. 신축 이음...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 지례향교(知禮鄕校)가 세워지면서부터 교동(校洞), 교촌(校村), 향교마 등으로 불리었다. 조선 말 지례군 하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교리·범박골이 통합되어 김천군 지례면 교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지례면 교리로 개칭되었고, 1971년 교1리·교2리로 나누어졌다. 1995년 김천시 지례면 교리가 되었다...
-
경상북도 김천시의 교통망과 교통 현황. 김천시는 지리적으로 한반도 남부의 중앙 즉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의 접경에 위치하여 일찍이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로서 도로와 역이 발달하였다. 김천 지역에 역이 들어서고 역과 역을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 시대 말까지 교통의 중심지로 번성하였다. 또한 김천은 영남, 충청...
-
경상북도 김천시에 있는 개신교인들의 신앙 공동체. 4세기 초 로마의 국교로 채택된 기독교가 이후로 점차 세속화되어 16세기에 이르러 종교로서의 존엄성을 잃게 되었다. 이에 1517년 마틴 루터가 기독교의 개혁을 주장하고 나섰고 뒤를 이어 츠빙글리와 요한 캘빈이 일대 변혁을 일으켜 소위 프로테스탄트교회를 창설하였는데 이를 기존의 기독교인 천주교와 구별하여 개신교로 불리게...
-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 창건 연대와 창건자는 알 수 없다. 구화사는 본래 고산사(孤山寺)의 산내암자였다. 고산사는 조선 중기까지만 하여도 존립해 있었으나, 유교의 세력에 밀려 절이 강제 철거되고 그 자리에 향교가 건립되었다. 김산향교(金山鄕校)가 고산사의 자리를 강제로 점령함으로써 고산사는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이름을...
-
삼국 시대 이전에 성립되었던 대부분의 소국이 그러하듯 감문국(甘文國) 또한 1700여 년의 풍상 속에 대부분의 유적이 훼손되고 멸실되어 그 흔적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따라서 감문국의 실체에 접근하는 방법은 제한된 사료(史料)와 전설, 문학 작품 등에 나타난 한정된 관련 자료를 통해 유추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감문국이 성립될 수 있었던 데는 먼저 청동기 시대...
-
경상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시. 김천시는 경상북도 남서부 지역의 사회·문화·산업·행정·교통·관광의 중심지이며 동경 127°52′~128°18′, 북위 35°49′~36°15′에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 칠곡군·성주군, 서쪽으로 충청북도 영동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남쪽으로 경상남도 거창군, 북쪽으로 상주시·구미시와 접하고 있다. 김천시 동쪽에는 금오산(金...
-
경상북도 김천시 신음동에 있는 산. 옛날 큰 물난리가 났을 때 이 산의 꼭대기 일부만 잠기지 않았다 하여 꼭대기를 뜻하는 사투리인 따배이, 말랭이라 불리다가, 정월 대보름 이 산에 올라 달집태우기를 하며 달맞이를 한 것에서 ‘달봉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달리 부춘산(富春山)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산의 남쪽 자락에 큰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는 부거리(富巨里)가 있어 마을 주...
-
경상북도 김천시 다수동·백옥동·부곡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1914년 옥산동·본리·노증리가 백옥동으로, 새실·이로리가 다수동으로, 부곡동·모지동·신기동·원종동이 부곡동으로 개편되어 금릉면 관할이 되었고, 1931년 김천읍 관할, 1949년 김천시 관할이 되었다. 1962년 다수동이 다수1동·다수2동으로 분동되었다가 1975년 다수동으로 다시 통합되었다. 1983년 다수동과...
-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삼락동·문당동·대광동·응명동·신음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1914년 상리·중리·하리·금평이 삼락동으로 개편되었고, 교리·향동이 교동으로, 문산리·당동·배천리가 문당동으로, 금음리·금신리·부거리가 신음동으로, 매목·독정리·괴동이 응명동으로, 대보리·묘광리가 대광동으로 개편되었다. 1983년 삼락동·교동·문당동이 행정동인 금산동으로 통합되었고, 응명동·대...
-
경상북도 김천시 대신동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의 천주교회. 1866년 병인박해 때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의 신자들이 소백산맥을 넘어 김천의 산악 지대로 피난하면서 김천 지역으로 천주교가 전해지게 되었다. 김천시 증산면과 대항면 산간 지대를 중심으로 신자촌이 형성되고 신자가 급증하게 되자 1896년 칠곡 왜관 가실본당 2대 신부로 부임한 김성학 알렉시오 주임신부가 김...
-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차량이나 사람이 편리하게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길. 김천은 예부터 사통팔달의 교통 요지로서, 일찍이 역이 설치되고 인접 지역의 역과 연결되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이 같은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경부선, 경북선 철도 부설, 경부고속국도, 중부내륙고속도로, 4개 노선의 국도, 9개 노선의 지방도가 김천 지역을 촘촘히 관통하는 거미줄과 같은 방사형...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교동(校洞)·옥전동·정변동·구교동(舊校洞)을 통합하면서 개령면사무소 동쪽에 있으므로 동부동(東部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 개령군 부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교동·옥전동·정변동·구교동이 통합되어 김천시 개령면 동부동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개령면 동부동으로 개칭하였다. 1971년 교...
-
경상북도 김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 구역을 조정할 때 구읍의 상리·중리·하리를 통합하면서 세 마을 사람들이 화목하여 즐겁게 지낸다는 뜻을 담아 붙인 이름이다. 구읍은 삼락동과 교동으로 나누어 있는데 교동에 속한 구읍에 있는 향교에서 수학한 선비가 많고 『맹자』에 나오는 ‘군자삼락(君子三樂)’의 뜻을 빌려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1914년 김산군 군내면 상...
-
경상북도 김천시에 있는 천주교 신도들의 예배 및 집회 장소. 천주교 의례 공간으로서의 성당이 설립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천주교가 공인된 이후부터이다. 초기에는 일정한 형식과 시설을 갖춘 성당이 없이 감시와 박해를 피해 동굴이나 일반 주택에서 집회를 가졌고 공인 이후 당대의 문화적 사조와 지역적인 건축 기법이 반영된 독창적인 형태로 건축되기 시작했...
-
이순유(李純由)를 시조로 하고 이근동(李根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성주이씨는 신라 말 경상(卿相)으로 있다가 고려가 개국하자 성주로 은거한 이순유를 시조로 하고 고려 말 시중(侍中)에 오르고 경산부원군(京山府院君)에 봉군된 12세(世) 농서군(隴西君) 이장경(李長慶)을 중시조로 한다. 농서군의 아들 5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며 문벌...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성씨가 발생한 근원은 고대 중국의 성씨 제도의 영향을 받아 고조선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왕족을 중심으로 다른 씨족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인 호칭이 성(姓)으로 나타난 것인데, 처음에는 왕실 내지 귀족, 고급 관료층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개국과 국가 변란에 혁혁한 공을 세운...
-
백우경(白宇經)을 시조로 하고 백귀선(白貴璇)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수원백씨의 시조는 중국 소주(蘇州) 사람으로 당나라 때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올랐다가 간신의 모함으로 780년 신라로 망명해 고관을 지낸 백우경이다. 신라 말 중광장을 지낸 백창직(白昌稷)을 중시조로 한다. 수원백씨는 29개 파가 있는데 김천에는 그 가운데 1세(世)...
-
경상북도 김천시에 있는 공동 주택 양식의 하나.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는 국토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1977년 「주택건설촉진법」이 제정되고 이후 전국적으로 많은 아파트가 건립되었다. 「토지이용규제기본법」에 따르면 아파트는 공동 주택 중 주택으로 쓰이는 층수가 5개 층 이상, 20세대 이상인 주택을 말한다. 아파트와 유사한 주거 형태인 연립 주택은 1개동의 연면적...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김천시는 경상북도 남서부 지역의 사회·문화·산업·행정·교통·관광의 중심지이다. 1995년 생활권이 하나였던 김천시와 금릉군이 하나의 통합시를 이루어 김천시가 되었으며 2010년 현재 1개 읍[아포읍], 14개 면[농소면·남면·개령면·어모면·봉산면·대항면·감천면·감문면·조마면·구성면·지례면·부항면·대덕면·증산...
-
경상북도 김천시에 있는 개신교의 한 교파. 장로회 또는 장로교는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 기간 중에 존 녹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칼뱅주의 성격의 개신교 종파이다. 존 녹스는 칼뱅의 제자로 스코틀랜드로 건너와 칼뱅의 종교 개혁 사상을 전파하였다. 장로교는 칼뱅의 신학적 전통을 따른다는 점에서 다른 개혁 교회들과 같았으나 목사와 장로가 교회를 다스리고, 대의 정치의...
-
경상북도 김천시 신음동에 있는 근린공원. 조각공원은 2001년 10월 19일 「도시계획법」에 의거 경상북도 고시 제2001-325호로 공원 지정을 받은 근린공원이다. 직지천변 구 우시장 부지에 직지천과 연계한 공원을 조성함으로써 시민의 휴식 및 여가 공간을 제공할 목적으로 1999년 11월부터 2000년 5월까지 총 사업비 17억 5000만 원의 사업비를 투입...
-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주생활은 김천 지역에 전승되어 온 전통적인 양식과 구조를 가진 주거 건축 및 가옥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활 행위이다. 이를 주거 생활이라고도 한다. 김천은 한반도 남부의 중앙에 위치하여 예부터 교통의 요지로서 일찍이 마을이 성립하고 도시가 발전했다. 1991년 구성면 송죽리에서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 주거지 유적이 발견되었다....
-
경상북도 김천시 평화동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천주교회. 김천에 천주교가 전파된 것은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 일대의 신자들이 소백산맥을 넘어 김천의 산악 지대로 은거하여 신앙촌을 형성하면서부터이다. 칠곡 왜관 가실성당의 2대 신부로 부임한 김성학 알렉시오 신부가 교구장 뮈텔 주교에게 건의하여 김천성당 설립을 허락받고, 190...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대덕면·지례면·봉산면·어모면에 있는 효자 마을. 김천 지역은 예부터 충효의 고장으로 일컬어지며 많은 효자, 효녀, 효부를 배출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큰 효자를 배출한 마을을 효자동으로 부르며 효를 칭송해 왔다. 김천 지역의 큰 효자에 대한 기록은 『금릉승람(金陵勝覽)』,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교남지(嶠南誌)』, 『금릉군지(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