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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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金里 |
영어음역 | Sanggeum-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상금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동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상리(上里)의 ‘상(上)’자와 금화(金華)의 ‘금(金)’자를 따서 상금(上金)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상리·중리·금화·사기점이 통합되어 경상북도 김천군 봉산면 상금동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봉산면 상금동이 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상금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봉산면 상금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난함산 자락에 자리 잡은 산촌으로 상금천이 남쪽으로 흐른다.
[현황]
상금리는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9.08㎢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159세대에 327명(남자 162명, 여자 16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서쪽으로 신암리, 남쪽으로 태화리, 북쪽으로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 작점리와 이웃하고 있다. 상금1리·상금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다. 의성 김씨가 집성을 이루고 있으며 전주 이씨와 광주 이씨가 세거해 오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 마을 입구 저수지 맞은편에 전주 이씨 양녕대군파 문중 재실인 광덕사(廣德祠)가 있다.
자연 마을로는 상리·중리·금화·사기점 등이 있다. 상리는 지매골 위쪽에 자리 잡고 있어 붙인 이름이다. 임진왜란 때 전란을 피해 낙향한 의성 김씨가 집성을 이루고 있다. 중리는 지매골 중간에 자리 잡고 있어 붙인 이름이다. 약 200년 전에 경주 이씨와 전주 이씨가 가장 먼저 마을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사기점은 임진왜란 때 이름난 도공(陶工)이 피난을 왔다가 좋은 흙이 나는 것을 보고 정착하여 도자기를 생산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이래 1800년경부터 사기점으로 불리었다. 훗날 도자기 생산이 침체되면서 사기점은 폐동되고 약 2㎞ 아래에 새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00년경 마을 앞산 남대골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더욱 발전해 마을의 이름을 금화라 하였다. 옛 사기점의 가마터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잡목으로 뒤덮여 흔적을 찾을 길이 없으나 지금도 인근에서는 사기 조각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