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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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武屹九曲 |
영어음역 | Muheulgugok |
영어의미역 | Poem of Nine Bends of Muheul Valley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승희 |
저자 생년 | 154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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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 1620년 |
배경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
성격 | 한시 |
작가 | 정구 |
[정의]
조선 시대 정구가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에서부터 김천시 증산면에 이르는 계곡의 뛰어난 경관에 감흥하여 지은 시.
[개설]
「무흘구곡(武屹九曲)」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의 성주댐 아래쪽의 대가천에 자리한 제1곡 봉비암(鳳飛巖)에서부터 성주댐을 거쳐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의 수도암 아래쪽 계곡에 자리한 제9곡 용소폭포까지 약 35㎞ 구간의 맑은 물과 기암괴석 등의 절경을 읊은 시이다. 성주군에 1~5곡이 있고, 김천시 증산면에 6~9곡이 있다.
정구가 대가천 계곡의 아름다움에 반해 중국 남송 때의 유학자인 주희(朱憙)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받아 대가천을 오르내리며 경관이 뛰어난 곳을 골라 이름 짓고 7언 절구의 시를 지어 그 절경을 노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흘구곡의 아홉 굽이는 제1곡이 봉비암, 제2곡이 한강대(寒岡臺), 제3곡이 무학정(舞鶴亭), 제4곡이 입암(立巖), 제5곡이 사인암(捨印巖), 제6곡이 옥류동(玉流洞), 제7곡이 만월담(萬月潭), 제8곡이 와룡암(臥龍巖), 제9곡이 용추(龍湫)이다.
[구성]
무흘구곡은 성주댐 아래쪽 수륜면의 봉비암, 한강대와 성주댐 상류의 무학정[배바위], 입암[선바위], 사인암 등과 김천시 증산면의 옥류동, 만월담, 와룡암, 용소폭포의 실제 경관을 배경으로 각각의 절경을 칠언 절구의 한시로 표현하여 총 9수로 구성되어 있다. 구곡의 경관을 노래한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용]
「제1곡 봉비암」
첫째 굽이라 여울가 낚시 배가 두둥실/ 석양빛 강물 위에 낚시줄이 얼기설기/ 자질구레 인간 잡념 까마득히 잊고서/ 내 안개 속에 노질함을 그 누가 안단 말고[一曲灘頭泛釣船 風絲繚繞夕陽川 誰知捐盡人間念 唯執檀槳拂晩煙].
「제2곡 한강대」
둘째 굽이라 미녀가 봉우리로 화하여/ 봄꽃으로 가을 단풍 단장을 고이 하니/ 저 옛날 초나라의 굴원이 알았다면/ 한 편의 이소경을 또 지어 보탰으리[二曲佳妹化作峰 春花秋葉靚粧容 當年若使靈均識 添却離騷說一重].
「제3곡 무학정」
삼곡이라 이 골짝 누가 배를 감췄던가/ 천년토록 야밤에 지고 간 이 없었거니/ 건너야 할 큰 강이 그 아니 많을까만/ 건너갈 방도 없이 가련할 뿐이어라[三曲誰藏此壑船 夜無人負已千年 大川病涉知何限 用濟無由只自憐].
「제4곡 입암」
넷째 굽이라 백 척 바위에 구름 걷히니/ 바위 위 화초 보소 바람결에 하늘하늘/ 이 가운데 싱그럽기 이 같음을 뉘 알꼬/ 저 하늘 달그림자 못 속에 떨어졌네[四曲雲收百尺巖 巖頭花草帶風髮 箇中誰會淸如許 霽月天心影落潭].
「제5곡 사인암」
다섯 굽이라 맑은 못 그 얼마나 깊은고/ 못가의 솔이며 대 절로 숲을 이루었네/ 복건 차림 은자가 높은 당에 앉아서/ 인심이요 도심을 도란도란 얘기하네[五曲淸潭幾許深 潭邊松竹自成林 幅巾人坐高堂上 講說人心與道心].
「제6곡 옥류동」
여섯 굽이라 초가집 여울 가에 놓였으니/ 어지러운 세상사 가리운게 몇 겹인고/ 여기 살던 은자여 그 어디로 떠나갔나/ 풍월만 남아 있어 만고토록 한가롭네[六曲茅茨枕短灣 世紛遮隔機重關 高人一去今何處 風月空餘萬古閑].
「제7곡 만월담」
일곱 굽이라 높은 봉 여울물 감아도니/ 이런 풍광 일찍이 구경을 못했어라/ 장난꾸러기 산신령 조는 학을 깨워볼까/ 솔 이슬 까닭 없이 학 뺨에 떨어지네[七曲層巒繞石灘 風光又是未曾看 山靈好事驚眠鶴 松露無端落面寒].
「제8곡 와룡암」
여덟 굽이라 오르니 시야 한층 트이는데/ 멀리 갈 듯 흐르는 물 다시금 돌아든다/ 안개구름 꽃과 새들 저마다 낙을 누려/ 노는 사람 오든 말든 나 몰라라 하누나[八曲披襟眼益開 川流如去復如廻 煙雲花鳥渾成趣 不管遊人來不來].
「제9곡 용추」
아홉 굽이라 고개를 돌리고서 한탄한다/ 이내 마음 산천을 좋아한 게 아니거니/ 샘물 근원 이곳에 형언 못할 묘리 있어/ 여기 이걸 놓아두고 다른 세계 찾을쏘냐[九曲回頭更喟然 我心非爲好山川 源頭自有難言妙 捨此何須問別天].
[특징]
정구는 수도산의 계류인 대가천 계곡에 주자의 구곡 경영을 차운하여 자신만의 구곡을 설정하였다. 주목할 것은 9수의 시를 통해 구곡의 각 굽이에 주제를 부여하고 관념적으로 상징화함으로써, 1곡에서 9곡에 이르는 과정이 단지 아름다운 경관을 쫓아온 것이 아니라 도학의 근원을 찾기 위한 일종의 실천 과정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산수에 은거하여 아담한 정원을 꾸미거나, 산과 바위 혹은 시내의 물굽이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자신의 사상과 연결된 주위의 생활 세계를 창조하였는데, 이러한 사상은 구곡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구곡은 단순한 물의 굽이침의 차원을 넘어서 주자의 도학적 이상을 배우고자 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유행된 바 있는데, 당시 주자는 조선 시대 선비들에게 절대적인 이상이었으며 흠모의 대상이었다.
특히 주자가 만년에 은거하며 강학하던 무이산의 절경은 아름다움을 넘어선 철학의 담론을 펼칠 수 있는 정신적인 이상향으로서의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 시대 선비들에게 산수를 경영하여 정사를 짓고, 무이 산지를 탐독하며, 구곡을 경영하는 것은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자연을 완상하는 도학적 이상향의 해법으로 이해되었다. 심지어 서실에 ‘구곡도’를 걸어 놓고, ‘구곡시’와 ‘구곡가’를 차운하여 읊는 것은 무이산에 실제 가보지 못한 한탄과 동경의 실천적 방도로써 널리 유행하였다.
또한 구곡의 경영에 있어서도 유교·불교·도교 등의 종교적 교리나 사상을 반영하여 관념적 실체로 명명(命名)하였는데, 각 곡을 도학적 이상을 실현시키는 수신의 과정으로 생각하였으며, 얻으면 경세제민(經世濟民)하겠다는 그 당시 사대부들의 정치·사회적인 맥락으로도 이해되었다.
이처럼 정구의 「무흘구곡」은 조선 시대 선비들의 구곡 경영과 그를 통한 철학적·종교적 사상 및 실천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적(史的)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