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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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Jwachinaru Teo |
영어의미역 | Jwachi Ferry |
이칭/별칭 | 좌치진,좌치나루 |
분야 | 지리/인문 지리,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용기리|부안면 선운리 고룡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변남주 |
성격 | 나루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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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조선시대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용기리|부안면 선운리 고룡동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용기리와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고룡동을 연결하던 조선 시대 나루의 터.
[개설]
좌치나루터는 옛 무장현[현 무장면]과 흥덕현[현 흥덕면]의 해안을 연결하는 나루로, 외부 소금장수들이 질마재를 넘어 무장현의 해변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사러 다니거나 심원면 사람들이 부안면 난산장[알뫼장]을 오가는 데 이용되었다.
[변천]
풍수로 꿩이 앉은 형국이어서 좌치나루터라고 한다. 나루 양쪽에 주막이 있었는데, 심원면 용기리 쪽에는 나룻가 바로 위에, 부안면 선운리 구룡동 쪽에는 독바위에 사공이 거주하는 주막집이 있었다. 만조 때에는 구룡동마을 소나무 근처, 즉 가는쟁이 독바위까지 배로 건넜지만 간조 때에는 갯고랑만 건너고, 개펄 지역은 ‘노두’라고 하는 징검다리를 이용하였다.
일제 강점기 무렵에 근처 마을 사람들은 나루를 이용하는 대가로 봄가을에 보리와 나락을 한 말씩 지불하였다. 6·25전쟁 때에는 나루를 건너기 위하여 심원면 용기리 쪽 나루터에 있던 좌익 200여 명이 사살된 현장이기도 하다. 1970년대 초반 배삯은 1인당 30원이었다. 용선교가 건설되던 1995년 무렵까지 운영되었으며, 최후의 사공은 백정기였다.
[위치]
좌치나루터 용기리 쪽은 N35° 32′ 12.6″, E126° 35′ 36.6″이고, 구룡동 쪽은 N35° 32′ 06.8″, E126° 36′ 02.2″이다.
[현황]
현재는 좌치나루터 양쪽에 있는 주막도 철거되어 묵은 밭으로 변하였으며, 갯고랑에는 장어잡이 그물이 가로질러 있고, 구룡동 쪽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