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9년 3월 1일부터 약 2개월 동안 전라북도 군산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 운동. 3·1운동 당시 군산에서는 영명 학교 학생들의 교사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에 이어서 시내 각지에서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이 발생하였다. 특히 1919년 3월 30일 제1차 만세 운동 관련자들의 공판을 앞두고 군산과 옥구 군중의 야간 시위는 상당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불법 남침으로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있었던 전쟁의 양상.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남침으로 장장 3년 1개월의 동족 상잔 비극이 벌어졌던 6·25전쟁, 해방 후 5년 만에 일어난 참변은 민족 통일을 표방한 전쟁이었다. 60년이 넘도록 휴전이 지속하고 있으며 민족의 분열과 대립을 심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6·25전쟁 당시...
-
개항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의 역사. 1876년(고종 13) 조선과 일본 사이에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뒤 일본은 자신들의 자본주의 발전에 필요한 값싼 식량과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국내 최대 미곡 생산지를 배후로 한 서해안 지역의 개방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런 가운데 군산이 유력한 개항장으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정작 군산의 개항은 대한 제국 정부의 독자적 결정으로 이루어...
-
전라북도 군산에서 행해진 기수와 말이 일정한 구간을 달려 순위를 겨루는 스포츠. 일제는 1927년 가을 군산 경마 구락부 소속 미야자키[宮崎] 농지 2만 1천 평[지금의 팔마 광장 부근]에 경마장을 조성한다. 전국 최초 공식 규격 경마장으로 주로(走路)는 1.2㎞. 1932년에는 주로를 1.6㎞로 늘리고, 부지도 2597.4㎡으로 확장한다. 당시 국내에는 공인된 경마장이...
-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에 속해있는 고군산군도는 야미도, 신시도, 선유도, 방축도, 무녀도, 장자도, 명도, 말도 등의 16개의 유인도와 52개의 무인도로 구성된 도서지역이다. 고군산군도에 안개 낀 아침에 배를 타고 도착하면 여기저기 이곳저곳 기암괴석의 산봉오리가 불끈불끈 솟아있어 마치 열기구를 타고 산맥을 통과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데 그제서야 군산(群山...
-
해방 후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주둔한 부대. 대한민국 국방경비대는 미군정(美軍政) 시절인 1946년 1월 15일 1개 연대 병력으로 경기도 태릉에서 창설되었다. 국방경비대 제12연대는 1947년 5월 백인기(白仁基) 부령을 연대장으로 군산 비행장에서 창설된다. 당시 백인기 연대장은 시내 학생은 물론 청년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입지적인 인물이었던 것으로 알려...
-
1945년 11월 30일 군산경마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건. 일제는 1927년 가을 군산 경마 구락부 소속 미와사키[宮崎] 농지 2만 1천 평[지금의 팔마광장 부근]에 전국 최초 공식 규격 경마장을 조성하였다. 1927년 당시 국내에는 공인된 경마장이 경성[서울], 평양, 대구, 부산, 군산, 신의주 등 여섯 곳뿐이었다. 경마 대회는 1년 중 벚꽃 개화 시기와 단풍철 두 차례 전국...
-
전라북도 군산시에 있는 군산상업고등학교의 야구부. 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는 1972년 황금 사자기 역전 우승을 통해 역전의 명수라는 애칭과 명성을 얻게 되었다. 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는 경성 고무 이용일 사장의 지원으로 1968년 창설됐다. 초대 감독은 군산 출신 최동현, 2대 감독 서창활에 이어 1970년 7월 인천 동산 고등학교 시절 국가 대표로...
-
군산선 철도 개통과 군산 지역의 경제·사회적 변화 인류 역사와 함께해온 ‘길[道]’은 황토 냄새 그윽한 황톳길을 비롯해 강가나 숲 속의 오솔길, 돌담을 따라 이어진 마을의 고샅길, 강변의 자갈 길, 호젓한 산 길, 들 길, 지름 길, 자동차 길, 바닷길, 기찻길,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정치·경제·문화·종교]를 연결하여 ‘문명의 길’로 불리는 실크로드[비단 길] 등 그...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시에 있었던 기생들의 조합. 권번은 일제 강점기 기생들의 조합이다. 군산에는 두 곳이 있었는데, 하나는 군산 권번이고, 또 하나는 군산소화권번이다. 군산소화권번의 경우, 입교하면 4년 과정으로 시조·가곡·판소리·춤 등을 체계적으로 가르쳤다. 권번은 기생을 교육할 뿐만 아니라 관리하는 업무 대행업체로서, 등록된 기생을 요청에 따라 요릿집에 보내고 화대를 수금...
-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채취하여 먹던 벚굴. 금강굴은 서해 바다와 금강이 만나는 기수 구역의 수심 3~4m의 물속에 서식하는 어패류이다. 강물 속에서 먹이를 먹기 위해 입을 벌린 모습이 벚나무에 벚꽃이 핀 것처럼 하얗고 아름답다고 해서 벚굴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강에서 수확된다고 해서 강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금강굴은 크기가 작게는 20~30㎝에서...
-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군산이 포함된 삼팔선 이남 지역에 미군이 진주하여 9월 8일부터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되기까지 3년 동안 실시한 군사 통치 시기. 해방 정국에서 혼란이 진정될 때까지는 일본 관료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미군 사령부 하지 중장은 일본인 관리들을 행정 요직에 남아 있게 했다. 군산도 미군이 들어와 행정 기관을 접수하여 기구를 개편할...
-
전라북도 군산 지역의 민간에서 오래 전부터 내려온 여러 가지 신앙.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였던 성읍 국가 시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연구된 민간신앙(民間信仰)은 신화(神話)를 비롯해 의례(儀禮)·주술(呪術)·제사(祭祀)·행사(行祀)·마을 신앙·가정 신앙·세시 풍속(歲時風俗)·통과 의례·장제(葬祭)·점복(占卜)·금기(禁忌)·풍수(風水)·무속(巫俗)·조상 숭...
-
근대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불이 흥업 주식 회사의 간척 사업으로 생성된 간척지 마을. 불이 흥업 주식 회사는 1904년(광무 8) 조선에 들어와 1919년 전라북도 옥구군에 농장을 설립하고 간척 사업을 벌었다. 이들이 간척 사업을 한 곳은 전라북도 옥구군 해변에서 당시 섬이었던 무의인도(無衣人島)까지의 6㎞와 알산도(卵山島)에서 어은리까지 8㎞ 등 총 14㎞ 구간이었다....
-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 있는, 승려가 불상을 모시고 불도(佛道)를 닦으며 교법을 펴는 곳. 군산시는 1995년 1월 1일 행정 개편에 따라 옥구군과 통합, 도농 복합도시가 되었다. 따라서 통합 이전 옥구군에 속했던 고찰(古刹)들도 군산시에 포함되었다. 군산 원도심권에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에 건립한 사찰밖에 없었다. 대한 제국 이전에 창건된 사찰이 모두 옥구군...
-
우리나라는 바다로 갇혀있지 않고 바다로 열려있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은 바닷길로 해양 문물 교류가 활발했다. 옛날 고속 도로인 강과 바다는 일찍부터 문물 교류의 큰 통로였다. 우리나라에서 강과 바다를 하나로 묶어주는 천혜의 교역망이 구축된 곳이 군산이다. 그리하여 선사 시대 이래로 줄곧 군산이 해양 문화의 메카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금강(錦江)의 관문이자...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에 있던 수심사(修心寺)가 조선 시대 폐사된 사건 조선 시대 1535년(중종 33) 양반과의 묘지 조성 문제로 시작된 사건이 크게 번져 조정(朝廷)에 의해 수심사(修心寺)가 폐사(廢寺)되었다.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고려와 달리 조선은 숭유 억불(崇儒抑佛) 정책을 표방하며 양반 관료의 나라를 만들고자 하였고 이에 고려 왕조 500여 년 동안 자리 잡아...
-
전라북도 군산시 산북동 열대자 마을의 생성 유래와 변화 및 현재 모습 열대자 마을의 유래는 1920년에서 1923년까지 일본의 불이흥업 주식 회사가 오늘날의 군산시 미성읍과 옥서면 일대 간석지를 간척하여 만든 간척 농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사가 간척한 토지 24,793,388㎡ 중 북쪽의 9,917,355㎡에 일본 농민을 이주 정착케 한 마을을 불이농촌이...
-
전라북도 군산시 오식도에서 발견된, 개항기 제작된 대포. 발견될 당시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대포의 모습과는 다른 모양 때문에 중국 제품으로 오인되었던 오식도 화포는 서울 국립 박물관에서 보존 처리를 마친 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현재 밝혀진 내용에 의하면 오식도 화포는 조선 시대 말 쇄국 정책을 단행한 흥선 대원군에 의하여 만들어진, 당시로서는 조선의 최신형 대포이다...
-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는 옛 이야기. 설화는 보통 신화와 전설, 민담 등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으나 이 셋 사이에 확연한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군산·옥구 지역에서 전해 오는 설화를 살펴보면 신화는 거의 없고 대부분 전설과 민담 등이 전승되고 있는데, 이는 백제사와 관련이 깊다. 지리적으로는 옥구와 김제의 서부 평야 지역과 금강 이북의 충청도와 인접해 있...
-
삼국 시대 때 군산은 백제(百済)의 영역으로 시산군(屎山郡)[현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의 백제 시대 이름]과 마서량현(馬西良県)[현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의 백제 시대 이름], 부부리현(夫夫里県)[현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의 백제 시대 이름]의 행정 치소가 있었다. 삼국 시대 때 마한(馬韓)의 영토에서 백제의 영역으로 편입됐으며, 그 시기는 온조왕(温祚王) 대라는 기록과 달리 4세...
-
6·25 전쟁 중 전라북도 군산 지역으로 피난민이 이주한 사건.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조인으로 전선에서 포성은 멎었지만, 부모·형제가 헤어져 평생을 이산 가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분단의 아픔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군산도 북한과 뱃길이 가까운 항구 도시로 이산 가족[피난민]이 어느 도시보다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군산은 해방 후 북...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 있었던 일본인 유흥업소. 최초의 유곽은 부산에 1902년 만들어졌으며 대규모의 공식적 유곽인 공창은 서울의 신정 유곽[1904년]이 시초였다. 군산은 청·일 전쟁 후 일본에서 일확천금을 쫓아 불나방처럼 모여든 일본의 모리배들로 뒤덮였다. 이들의 초창기 사업이라는 것이 고리대금업과 토지 브로커 등이었음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일본인들은 돈...
-
해방 이후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한 사건. 일본이 만주 사변을 일으킨 1931년 이후 병참기지화 했던 군산은 다른 도시에 비해 해방을 조용히 맞았다. 일본 군대[수호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일본인 거주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1944년 5월 현재 군산[옥구군 포함]에는 1만 1095명의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군산을 피해...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시 경장동에 있었던 공설 운동장. 일제 강점기 군산에는 공공 운동장이 두 개 있었다. 첫 번째 운동장은 지금의 서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신사 광장’ 또는 ‘공중 운동장’으로 불리었다. 이곳은 체육 시설이 전무해서 각종 집회와 일본 씨름[쓰모] 등이 열리는 광장 수준이었다. 따라서 종합 운동장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축구 경기도 시내 대형 정미소 쌀 건조장이나...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에 설치한 고군산진의 역사 고군산 군도(古群山群島)는 군산 남쪽 약 50㎞ 해상에 위치한 여러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 행정 구역상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에 속하는 고군산 군도는 선유도(仙遊島), 무녀도(巫女島), 장자도(壮子島), 야미도(夜味島), 신시도(新侍島), 관리도(串里島), 대장도(大長島), 횡경도(横境島), 방축도...
-
전라북도 군산시 중동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군산 지역은 역사 이래로 서해안의 물류 유통과 어로 중심의 생활을 하던 곳으로, 이러한 생활환경 때문에 수많은 토속 신앙이 이루어져 왔다. 조선 시대 군산 지역을 크게 나누면 군산진과 군산창을 중심으로 주변 마을들을 포함한 서부 지역[현재 영화동, 중앙로1가, 신흥동 지역]과 동부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일정한 운동을 통하여 신체를 단련시키는 일. 우리나라에 서양식 체육, 즉 근대 운동 경기[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는 ‘신교육령’(新敎育令)이 공포되는 1895년(고종 32) 2월 이후 전국으로 알려지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개화된 일부 지도층에 의해 화류회[운동회]가 열렸으며, 서양 선교사들과 일본인들이 경성[서울]과 지방 도시에 설립한 근대식...
-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일대에서 행해지던 전통 장례 풍습.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무녀도리에는 서해안의 전통 장례 풍습인 초분이 전래되고 있다. 초분이란 섬이나 해안 지방에서 내려오는 전통의 장례 풍속이다. 섬 주민들은 상이 났을 경우 조상이 묻혀 있는 땅에 생[날]송장을 뭍을 수 없다는 믿음과 함께 정월에는 사람이 죽어도 땅을 파지 않는다는 전래의...
-
전라북도 군산 지역의 대표적인 친환경 쌀 생산지 나포 십자뜰. 전라북도 군산 지역은 예로부터 기름진 들이 한 없이 이어지는 이랑의 장관에서 ‘옥야구혁(沃野溝洫)’이라 불리어진 곡창 지역이다. 남쪽으로는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위복 폭포에서 발원한 만경강이 흐르고 북쪽으로는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에서 발원하여 400㎞를 굽이굽이 흘러 돌아 비단강이라는 별...
-
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에서 구성된 축구단. 평화축구단은 1920년 5월 조선인 선수로 구성된 군산 지역 최초의 체육 단체이다. 창단 구성원은 채금석, 현경남, 이서구, 김서봉, 안수정, 이순길 등이며 그해 8월 15일 이리[현 익산] 청년 구락부 주최로 이리[현 익산] 공립 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연합 축구 대전에 참가하였다. 1921년 3월에는 팀을 확대하여 청년단과...
-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전해져 오는 고장 음식. 고군산 군도를 바라보며 서해로 유입되는 금강, 만경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는 군산은 예로부터 어족 자원이 풍부했다. 이는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패총]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밀집된 지역인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조개더미란 해안이나 강변에 촌락을 이루고 살았던 선사 시대 사람들이 굴이나 조개를 까먹고 버린 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