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보도연맹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824
한자 國民保導聯盟事件
이칭/별칭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연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0년 6월 25일연표보기 - 국민보도연맹사건 발생
종결 시기/일시 1950년 9월연표보기 - 국민보도연맹사건 종결

[정의]

1950년 7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 등 예비 검속자들이 경찰, 헌병대 등에 의해 집단 학살된 사건.

[역사적 배경]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은 1949년 4월 좌익 전향자를 계몽·교화·지도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조직된 관변 단체였다. 국민보도연맹은 조직의 성격과 명칭, 운영 방침 등 일제가 '불량학생'을 교화하기 위해 만들었던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時局對應全鮮思想報國聯盟)· 대화숙(大和塾)을 그대로 이어받았던 것으로, 일제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주도적으로 사상범·전향자 등을 교화시키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국민보도연맹에는 사상범, 좌익 전향자들만 가입하지는 않았다. 국민보도연맹의 가입 규정은 좌익계열 단체에 한 번이라도 이름이 등록된 자, 등록된 자를 알고서도 방조한 자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으로 좌익과 무관한 사람들도 포함시킬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였다. 이에 국민보도연맹원의 모집은 시·군 지부에 할당제로 이루어지기도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가입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혹은 본인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름이 올라가는 경우까지 발생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발생하자 이승만 정부는 국민보도연맹원의 이적(移籍) 가능성을 염려하여 국민보도연맹원에 대한 법적 절차 없이 연행, 집단 학살하였다.

[경과]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국민보도연맹 결성일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전라남도 국민보도연맹이 1949년 12월경 결성되었고 이후 1950년 1~2월에 걸쳐 다른 전라남도 지역의 국민보도연맹들이 조직된 것으로 보아, 그즈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6.25전쟁 발발 직후, 전라남도 광주시의 국민보도연맹원들은 광주경찰서 소속의 경찰에 의해 소집 혹은 연행되어 광주형무소에 구금되어 있다가 1950년 7월 중순 불갱이 고개, 지산동 골짜기 등지에서 총살되었다. 당시 전라남도 광산군[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국민보도연맹원들도 광산경찰서 소속 경찰들에게 소집 혹은 연행되어 구금되었다가 7월 중순경 암탉굴, 불갱이 고개 등지에서 사살되었다.

증언에 따르면 구금된 국민보도연맹원들은 노끈 꼬는 일을 했는데, 그 노끈으로 묶인 채로 군용차에 실려 암탉굴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엮여 있는 이들은 암탉굴 앞에 세워져 총을 맞으면, 쓰러지면서 구덩이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면 그 위에 흙을 덮고 그 다음 차례가 서는 것인데, 초기에는 밤에만 통행 금지였던 것이 얼마 후엔 낮에도 주변을 통행 금지시켰다고 한다. 전라남도 광산군에서 희생된 이들의 규모는 약 5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국민보도연맹은 설립 목적과 달리 연맹원을 '교화'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내부 동조자'로 규정하여 연맹원들을 집단 학살하였다. 그 과정에서 공식적인 재판과정은 진행되지 않았으며, 관련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최근의 증언에 따르면 국민보도연맹으로 인해 학살당한 이들의 상당수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등록된 민간인이었다. 국민보도연맹은 한국전쟁기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이루어진 국가 폭력 사건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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