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855
한자 古地圖
영어공식명칭 Old Map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바른

[정의]

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지역을 그린 옛 지도.

[개설]

현재 남아 있는 전라도 광주 지역의 고지도는 대부분 조선시대에 제작되었다. 조선 전기 그려진 지도는 모두 소축척 지도로, 국토 전체를 대상으로 제작하였기 때문에 광주는 전라도 지역에 지역명이나 작은 원 정도로만 표현되었다. 그러다가 18세기 이후에는 대축척으로 지방 행정단위인 군현을 그린 지도가 제작되면서 광주 지역의 모습이 더욱 회화적으로 자세하게 묘사되기 시작하였으나 편집을 주도한 방식에 따라 표현 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편집한 『해동지도』, 『비변사인 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 『호남지도』, 『해동여지도』 등은 유사하고, 지방에서 고을을 그린 『여지도』 「전라도 광주목」, 『1872년 군현지도』 「전라도지도」 광주, 『호남읍지』, 『광주읍지』[1899] 등에 수록된 광주 지도 등은 더욱 회화적인 특징이 있다.

[중앙 정부 주도 편집 지도]

1. 『비변사인 방안지도』 「호남지도 광주」

『비변사인 방안지도』는 비변사에서 1740년대 편찬한 지도와 이를 모사하여 부분 수정한 지도들이다. 『비변사인 방안지도』에 수록된 전라도 광주 지역 지도는 네모난 읍성을 중심으로 산맥, 물줄기가 표현되어 있으며, 도로와 봉수망이 붉은 선으로 중요하게 나타나 있는데 이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지리 정보가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2. 『해동지도』 「전라도 광주목」

『해동지도』는 1750년대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회화식 지도로, 세계지도, 외국 지도 등이 망라된 관찬(官撰) 군현 지도집이다. 『해동지도』에 수록된 전라도 광주 지역 지도는 광산구황룡강 서쪽 부분을 제외한 광주광역시 전역과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을 담고 있다. 각 면(面)의 위치에 명칭이 기재되어 있으며, 지도를 둘러싸고 오른쪽과 아래에 각 면의 명칭과 경계로부터의 거리가 기재되어 있다. 지도는 네모난 읍성을 중심으로 포충사, 의열사, 월봉서원 등 주요 사우(祠宇)가 그려져 있고 창고가 표시되어 있다.

3. 『호남지도』 광주목

『호남지도』는 1739년(영조 15)부터 1750년(영조 26)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로, 전라도 각 군현의 지도들을 모은 지도첩이다. 『호남지도』에 수록된 전라도 광주 지역 지도는 전체적으로 단일한 시점으로 지역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특히, 광주의 명산인 무등산의 기암괴석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 수려한 경치의 사인암과 지평암도 강조되어 있다. 읍치(邑治)에는 정방형의 읍성이 있고, 여러 관아 건물이 그려져 있다. 포충사 등의 사우 및 환벽당 등의 정자와 주인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

4. 『해동여지도』 「광주지도」

『해동여지도』는 18세기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로, 전국 336개 고을을 그린 군현 지도책이다. 『해동여지도』에 수록된 광주부 지도는 다른 지도와는 달리 20리[약 8㎞] 방안(方眼) 위에 그려졌기 때문에 고을의 형태와 지명의 위치가 이전의 회화식 지도와는 달리 실제와 거의 유사하다. 광주목 읍치가 붉은색으로 묘사되어 있고, 영산강 지류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해동여지도』 광주부 지도에는 68곳의 지명이 기재되어 있으며, 이웃 군현과의 경계가 표시되어 있다. 다른 지도에 비해 35곳의 면(面) 지명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5. 『지승』 「전라도 광주목」

『지승』은 1776년 이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로, 주요 군사 요지와 전국 군현을 그린 회화식 지도책이다. 광주목이라고 명시된 지도는 북쪽을 위쪽으로 하여 그렸다. 세로로 면 이름이 씌어 있는데, 읍성 내에 성내면(城內面)이 있다. 읍성 내 관아 건물의 위치는 『여지도』, 『비변사인 방안지도』, 『해동지도』와 매우 유사하다. 읍성 밖으로는 북문 바로 위에 공북루(拱北樓), 읍성 동쪽으로 태봉(胎峯)과 경양역(景陽驛), 읍성 서쪽으로는 향교(鄕校), 남쪽에는 경열사(景烈祠)가 표시되어 있다.

[지방에서 그린 지도]

1. 『여지도』 「전라도 광주목」

『여지도서』는 1757년(영조 33)에서 1765년(영조 41)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엮은 전국 읍지이다. 『여지도서』에 수록된 광주목 지도는 위쪽이 북쪽, 아래쪽이 남쪽으로, 노란색 직사각형 안에 각 면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성 안은 성내면, 성 밖 동쪽은 편방면, 서쪽은 공수 방면, 남쪽은 부동 방면, 북쪽은 기례 방면으로 표기되어 있다. 읍성은 거의 정사각형 형태로 그려졌고, 4개의 성문이 그려져 있다. 공북루 오른쪽에는 태봉, 남문 밖 오른쪽에는 정지 장군을 모신 사당 경열사가 표시되어 있다.

2. 『호남읍지』 「광주지도」

『호남읍지』는 1871년(고종 8)에 편찬된 전라도 읍지이다. 『호남읍지』는 다소 거친 필치로 그려졌는데, 지도는 2쪽에 걸쳐져 있으며 남쪽을 위로 하여 무등산을 강조하였다. 성 안에는 서쪽으로 객사, 북쪽으로 사창(司倉), 남쪽으로 관사(官舍) 건물군이 묘사되어 있다. 성 밖에는 향교, 증심사, 공북루, 유림(柳林), 태봉 등이 그려져 있다. 주황색 네모 안에 광주 지역 각 면의 이름을 적었으며, 노란색 네모 안에는 무등산, 원효암과 같은 산이나 사찰 이름을 적었다.

3. 『1872년 군현지도』 「전라도지도」 광주

『1872년 군현지도』는 1872년(고종 9) 3월부터 6월에 걸쳐 전국 지방의 지도를 회화식 필사본으로 제작한 지방 지도이다. 광주 지역 지도는 하나의 산봉우리를 마치 한 조각처럼 표현하고 있어 조선시대 제작된 광주 지역 지도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72년 군현지도』 「전라도지도」 광주 지도는 고을의 진산인 무등산을 강조하기 위하여 남쪽을 위쪽에 배치하였으며, 지도 중앙에는 광주읍성이 있고, 성 안의 성내면을 포함한 41개의 면마다 사창(社倉)이 있다. 읍치 동편에 있는 경양역은 6개의 속역을 거느린 찰방역이었는데, 지도에도 여러 관아 건물이 그려져 있다.

4. 『광주읍지』[1899]

『광주읍지』[1899]에 수록된 광주 지역 지도는 남쪽을 위쪽으로 한 회화식 지도이다. 지도에 등장하는 경무청, 지방대 등의 건물 명칭 등을 통해 1899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본 크기는 세로 110㎝, 가로 59.5㎝이며, 남북으로 길게 그렸다. 크기에 비해 간략한 편이지만 1872년 지방 지도 다음으로 관아 내 건물이 많이 그려진 지도이다.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이 남동쪽에 있고, 그 기슭에 천제단과 약사, 증심사, 원효암, 풍암정 등이 그려져 있다. 가운데 정사각형 모양의 읍성이 있고, 그 안에 관아 건물이 빽빽이 그려져 있다. 사직, 향교 및 광주에 속한 41개 면의 명칭이 네모 안에 표시되어 있다.

[의의]

조선시대에 제작된 전라도 광주 지역을 그린 지도는 조선 후기 광주의 자연경관은 물론 읍치와 촌락, 교육기관, 도로, 시장 등 지역의 인문 지리적 내용 및 지명도 자세하게 기재되어 있어 광주 지역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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