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명 지역이 나타나 있는 조선시대와 개항기에 제작된 지도. 광명 지역은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남정(南征)으로 고구려의 영토가 되어 잉벌노현(仍伐奴縣)으로 불리다가 신라 경덕왕 때 율진군(栗津郡)의 영현(領縣)이 되고, 고려 전기로 들어서며 금천현(衿州)에 소속되었다. 조선이 들어선 후인 1414년(태종 14)에는 과천(果川)과 합해져 금과현(衿果縣)이 되었다가 훗날 분리...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전기까지 광명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무열왕(武烈王)의 후손들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전제 왕권(專制王權)을 형성하여 진골(眞骨) 귀족들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경덕왕(景德王) 때부터 진골 귀족들의 세력이 다시 강화되자 경덕왕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한화(漢化) 정책을 실시하여, 757년(경덕왕 16) 전국...
고려시대 광명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고구려시대에는 잉벌노현(仍伐奴縣)이었고, 신라의 영토가 된 후 경덕왕(景德王)이 곡양현(穀壤縣)으로 고쳐 율진군(栗津郡) 관할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시대 940년(태조 23) 금주(衿州)로 고쳤다. 금주는 달리 금주(黔州)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원래 금천강씨(衿川姜氏) 시조(始祖)인 강궁진(姜弓珍)의 근거지였다. 강궁진은 고려 전기에...
고구려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광명 지역에 설치된 통치구역.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이 427년(장수왕 15) 수도를 국내성(國內城)에서 평양(平壤)으로 천도한 후 적극적인 남진(南進) 정책을 실시하여, 475년(장수왕 63) 백제의 수도인 한성(漢城)을 함락하고 개로왕(蓋鹵王)을 전사시키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였다. 이후에 한강 유역을 고구려 영토로 편입하기 위하여 종래 백제의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