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
-
광명 지역은 남북으로 가학산과 서독산, 구름산, 도덕산이 길게 시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형성된 지역이다. 이 산들을 중심으로 광명동과 철산동, 하안동, 소하동, 일직동, 가학동, 노온사동에 속한 자연마을에 깃들여 많은 사람들이 누대에 걸쳐 살아왔다. 그러나 도덕산 자락의 철산동과 하안동, 광명동 지역은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급격하게 진행된 도시화로 본 모습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조선 명종 대에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낸 성몽규(成夢奎)가 살면서 군자감에서 필요로 하는 공물과 세금을 받아들이고 출납하였던 곳이어서 공세동이라 하였다. 이후 발음이 변하여 공석이 되었다. 공석골은 조선 말기 시흥군 남면 유등리(柳等里)에 속하였고, 1914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 가학리에 속하였다. 1964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 가학3리에...
-
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순종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김녕김씨는 영돈녕공준파(領敦寧公遵派), 진주목사공형파(晉州牧使公炯派), 충정공준영파(忠貞公俊榮派), 충경공경세파(忠敬公景世派), 송암공질파(松菴公秩派), 만은공길상파(晩隱公吉祥派), 충의공문기파(忠毅公文起派), 대사성공지파(大司成公智派), 도순찰사공문제파(都巡察使公文齊派), 상서공문희파(尙書公文熙派)로 나누어져...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김녕(金寧). 시조는 고려 인종 때 평장사를 지내고 묘청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지고, 명종 때에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금주군(金州君)에 봉해진 김시흥(金時興)이다. 김응수(金應壽)[1567~?]는 사복시 잡직인 마의(馬醫)에서 조관(朝官)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선조실록(宣祖實錄)』에 따르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
유차달을 시조로 하고 유성귀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문화유씨(文化柳氏)의 시조 유차달(柳車達)은 후삼국 통일 전쟁 당시 유주(儒州)[문화의 옛 이름]의 호족이었다. 유차달의 5대조인 유색(柳穡)이 신라 헌덕왕 때 유주 구월산(九月山)에 은거한 이래 자손들이 대를 이어 살다가 고려 개국 이후 개성에서 세거해 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고...
-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土亭秘訣)』을 보는 풍속. 신년운세 보기는 새해를 맞아 1년 동안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 친지 등의 운수(運數)를 『토정비결』을 통해 보는 것을 일컫는다. 이를 ‘신수점 보기’라고도 한다. 『토정비결』은 조선시대 명종 때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이 지은 책으로 그 해의 신수를 보는데 쓰인다. 주로 정월 초에 보는데...
-
민칭도를 시조로 하고 민해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여흥민씨(驪興閔氏)는 고려시대 상의봉어(尙衣奉御)를 지낸 민칭도(閔稱道)를 시조로 한다. 민칭도는 공자의 제자인 민손(閔損)의 후손으로 고려 중기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여흥에 정착하였다. 고려 말기부터 명문의 지위를 굳혀 온 여흥민씨는 크게 3차에 걸쳐 가문의 위세를 떨쳤다. 1차 시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
최순작을 시조로 하고 최항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전주최씨는 최순작(崔純爵)을 시조로 하는 문열공파(文烈公派), 최균(崔均)을 시조로 하는 사도공파(司徒公派), 최아(崔阿)를 시조로 하는 문성공파(文成公派), 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는 문충공파(文忠公派) 등 4파가 있다. 문열공파 시조 최순작은 고려의 삼한벽상공신인 최언위의 후손으로 고려 정종 때 문과에 급제...
-
성인보를 시조로 하고 성춘영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창녕성씨는 창녕성씨 문중의 족보인 『계축보(癸丑譜)』에 따르면 성인보(成仁輔)를 시조로 하며, 묘소는 경상남도 창녕군 대지면 모산리 맥산 기슭에 있다. 성인보의 3세손 성공필(成公弼)·성한필(成漢弼) 대에 크게 두 계통으로 갈라졌고, 6세손에 이르러 성기(成紀)를 파조로 하는 판서공파(判書公派)를 포함하여 13개...
-
심홍부를 시조로 하고 심사현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청송심씨는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지낸 심홍부(沈洪孚)를 시조로 한다. 심홍부의 증손 심덕부가 우왕 때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 청성군충의백(靑城郡忠義伯)에 봉해진 뒤 후손들이 청송을 본관으로 삼았다. 조선시대 왕비 세 명을 비롯하여 재상과 청백리, 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