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영회원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영회원의 슬픈 이야기」는 봉림대군, 소현세자, 그리고 소현세자 비인 민회빈(愍懷嬪) 강씨(姜氏) 등의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개작된 인물담이다.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사적 제357호인 영회원(永懷園)은 소현세자의 부인 민회빈 강씨의 무덤이다.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던 소현세자는 1644년 귀국하였다...
-
광명문화원에서 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과 그 후손들이 남긴 고문서를 정리하고 해제를 덧붙인 책. 『경산 정원용 가승 고문서 해제』는 광명문화원에서 조선 후기 광명 지역 인물인 정원용[1783~1873]과 그의 후손 4대에 걸쳐 왕이 하사한 교지 등과 친지들이 보낸 시와 축하의 글을 모아 수록한 화보집 성격의 책이다. 정원용과 그의 아들 정기세(鄭基世)[181...
-
조선 후기 정원용이 태어날 때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생활을 기록한 일기. 『경산일록(經山日錄)』은 경기도 광명의 대표적 인물인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언어학자인 정원용(鄭元容)[1783~1873]이 과거에 급제한 1802년부터 1873년 운명하기 며칠 전까지 약 71년에 걸친 생활상을 기록한 일기이다. 『경산일록』에는 정조, 순조, 헌종, 철종, 고종 때의 정치 사회상이 고스란히...
-
1720년(경종 즉위년) 광명의 인물인 권유(權愈)가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시문을 묶고 발문을 쓴 책. 『열성어제(列聖御製)』는 1631년(인조 9)에 단종과 연산군을 제외한 태조부터 선조까지 조선의 12대 왕의 시문을 편집하여 최초로 간행되었다. 그 후 1679년(숙종7 2)에 이를 보완하여 간행되었으며, 그 뒤로도 철종 대까지 왕이 바뀔 때마다 선왕의 어제를 편집하여 앞 시기의...
-
조선 후기 예조(禮曹)에서 광명 출신의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에 대해 쓴 글.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산141-20번지에 있는 영회원(永懷園)은 광명 지역이 낳은 역사적 인물 민회빈 강씨[1611~1646]의 묘를 말한다. 민회빈 강씨는 우의정을 지낸 강석기(姜碩期)[1580~1643]의 딸로,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1612년~1645년]의 빈이 되었으나,...
-
1859년부터 1897년까지 광명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인 정범조(鄭範朝)가 작성한 일기. 『정범조일록(鄭範朝日錄)』은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鄭元容)의 손자 정범조[1833~1897]가 27세인 1859년(철종 10)부터 사망하기 전인 1897년(고종 34)까지 작성한 일기다. 국학자 정인보(鄭寅普)[1893~1950]가 증조할아버지 정원용(鄭元容)[1783~1873]과...
-
대한제국기에 부설된 경기도 광명 지역을 거쳐 서울과 부산을 연결한 철도. 경부철도는 서울과 부산을 이어주는 총길이 444.5㎞의 복선 철도이다. 이를 경부선이라고도 한다. 1880년 중반부터 경부철도 건설을 위한 지형 탐사를 시작한 일제는 1896년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고종은 1896년 두 차례나 경부철도부설 청원서를 거부했지만, 힘에 밀려 1898년 9월 8일 정부가 일...
-
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인물인 정원용의 의복·의대·장식품. 정원용(鄭元容)[1783~1873]은 1802년(순조 2) 정시문과 을과에 급제한 뒤 순조, 헌종, 철종, 고종에 이르기까지 72년간 조정의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쳐 영의정까지 역임하였다. 의정부와 중추원에서만 33년간 재직하였으며, 1862년(철종 13)에 궤장(机杖)을 하사받았다. 1874년(고종 11)에 문충이란 시...
-
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최기경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경주최씨(慶州崔氏)는 신라 6촌의 하나인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를 원조로 하고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한다. 최치원은 12세의 나이로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18세에 빈공과에 급제하여 승무랑 시어사 내공봉(承武郞侍御史內供奉)을 지냈고, 귀국하여 시독 겸 한림학사(侍讀兼翰林學士)에 제수되었...
-
신성용을 시조로 하고 신종흡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고령신씨(高靈申氏) 시조 신성용(申成用)은 신라 왕족의 후예로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역임했다. 선조들이 고령에 살면서 대대로 호장(戸長)을 지내 왔으므로 후손들이 고령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시조의 현손 신덕린은 고려 말 우왕 때 예조판서를 지냈고, 글씨에 뛰어...
-
경기도 광명시의 주산은 높이 237m의 구름산이다. 광명시의 중앙에 자리 잡고 광명시를 동서로 가르는 구름산은 아왕봉 또는 운봉(雲峰)으로도 불렸다. 바로 이 구름산의 서쪽에서부터 동쪽까지의 줄기를 타고 역사상 훌륭한 인물들이 터를 잡고 뜻을 펼쳤는데, 그들이 바로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과 소현세자의 빈인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1611~1646], 경...
-
경기도 광명시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조선의 유교 중심 교육은 1870년대 외국과 수교 관계를 맺고 문호를 개방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외국의 새로운 제도 및 기술을 도입하여 근대 문화를 이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근대식 학교 교육이 시작되었다. 외국인들은 통변학교·광혜원 등을 세워 외국어와 서양 의학을 가르쳤...
-
양탕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남원양씨(南原梁氏)는 제주양씨에서 분적한 성씨로, 제주양씨는 제주도 탐라국을 세웠다고 알려진 양을나(良乙那)의 후손인 양탕(梁宕)이 광순사(廣巡使)로 신라에 들어오자 559년(진흥왕 20) 진흥왕이 벼슬을 내리고 양(良)을 양(梁)으로 고치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 575년(경덕왕 16) 양우량(梁友諒)이 신라 왕실에 공을 세워 남원부백(...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공석골 뒤에 있는 마을이므로 뒷골이라 하였다. 달리 둔전현(屯田峴)이라고도 하였다. 뒷골은 공석골에 살던 창녕성씨가 번성하여 분가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조선시대에는 시흥군 서면 유등리에 속하였고, 1914년 시흥군 서면 가학리에 속하였다. 1964년 시흥군 서면 가학3리에 속하였고,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광명시 가학동에 속하였다. 행정상으...
-
유차달을 시조로 하고 유성귀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문화유씨(文化柳氏)의 시조 유차달(柳車達)은 후삼국 통일 전쟁 당시 유주(儒州)[문화의 옛 이름]의 호족이었다. 유차달의 5대조인 유색(柳穡)이 신라 헌덕왕 때 유주 구월산(九月山)에 은거한 이래 자손들이 대를 이어 살다가 고려 개국 이후 개성에서 세거해 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고...
-
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2차 시흥농민봉기와 관련하여 안핵사(按覈使) 안종덕(安鍾悳)이 1904년(고종 41) 9월 4일에서 10월 8일까지 주모자와 관련자들을 심문 조사하여 10월 11일 황제에게 보고한 61장의 공초(供招)는 『시흥직산안핵사주본(始興稷山按覈使奏本)』으로 정리되었다. 1905년 4월 17일 처리된 판결문은 『대명률(大明律)』과 『대전회통(大典會通)』의 법조...
-
설거백을 시조로 하고 설업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순창설씨 시조 설거백(薛居伯)은 진한(辰韓) 땅이었던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천북면] 촌장으로 다른 5부 촌장들과 함께 기원전 57년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여 신라를 세웠고, 서기 32년(유리왕 9) 고야촌이 습비부(習比部)로 개칭되면서 설씨 성을 하사받았다. 516년(법흥왕 3)...
-
민칭도를 시조로 하고 민해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여흥민씨(驪興閔氏)는 고려시대 상의봉어(尙衣奉御)를 지낸 민칭도(閔稱道)를 시조로 한다. 민칭도는 공자의 제자인 민손(閔損)의 후손으로 고려 중기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여흥에 정착하였다. 고려 말기부터 명문의 지위를 굳혀 온 여흥민씨는 크게 3차에 걸쳐 가문의 위세를 떨쳤다. 1차 시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
정습명을 시조로 하고 정익채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영일정씨(迎日鄭氏)는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 6촌 가운데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 촌장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한다. 서기 32년(유리왕 9) 6촌을 6부로 바꾸고 촌장들이 왕으로부터 성을 하사받을 때 본피부(本彼部)로 개칭하고 정씨(鄭氏) 성을 받은 것이 시초이다. 정씨는 후대에 여러 갈래로 갈라지면서 본관은 달...
-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원익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전주이씨 시조 이한(李翰)은 선원선계(璿源先系)에 따르면, 전주에 토착해 온 명문 태생으로 신라 태종 무열왕의 10세손인 군윤(軍尹)을 지낸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결혼하였고 문성왕 때 사공을 지냈다. 이한의 선대가 언제부터 전주에 세거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한 이후 전주에 세거하여 후손들이 전주를 관향으로 삼았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성구(聖九), 호는 주계(周溪). 증조할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정계순(鄭啓淳)이고, 할아버지는 돈녕부도정을 역임한 정동만(鄭東晩)이며, 아버지는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鄭元容)이다. 아들로 정범조(鄭範朝), 손자로 정인승(鄭寅昇)을 두었다. 정기세(鄭基世)[1814~1884]는 1837년(헌종 3) 정시(庭試)에 병과 제1...
-
조선 후기 광명 지역의 대표적인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선지(善之), 호는 경산(經山).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鄭太和)의 6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정계순(鄭啓淳)이고, 아버지는 돈녕부도정을 지낸 정동만(鄭東晩)이다. 어머니는 용인이씨이다. 외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이숭호이다. 부인은 예조판서 김계락의 딸이다. 아들로 이조판서를 지낸 정기세(鄭基世)와 목사를...
-
경기도 광명시 광명7동 광명시 향토행정사료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와 개항기 문신이자 학자인 정원용(鄭元容)에게 발급된 교지. 경산(經山) 정원용[1783~1873]은 1824년(순조 24) 아버지 정동만(鄭東晩)의 묘소를 현재의 광명시 학온동으로 이장하면서 이 일대에 세거지를 마련하였다. 그 뒤 정원용 자신은 물론이고, 1970년대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으로 이장하기 전까...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문신 정원용의 묘소. 정원용(鄭元容)[1783~1872]은 1802년(순조 2)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가주서를 거쳐 예문관검열, 홍문관부응교, 이조참의, 대사간, 강원도관찰사 등을 지내다가 1831년 동지사로 청나라 연경에 다녀왔다. 1837년(헌종 3) 예조판서에 오르고 이어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중추부판사가 되었다가 1848년 영...
-
1904년 제2차 시흥농민봉기의 간접적 원인이 된, 한일간 체결한 외교 문서. 한일의정서는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조선의 식민지 지배에 배타적 우위를 확보한 일제가 러일전쟁 중인 1904년 2월에 무력으로 조선에 강요한 협약서이다. 이를 ‘대조선대일본양국맹약’이라고도 한다. 한일의정서로 일제는 조선에 대한 정치적·군사적 간섭을 합법화하였으며, 그 결과 광명 지역의 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