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4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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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蘭圃故宅 |
영어공식명칭 | Nanpo House |
이칭/별칭 | 최해근 가옥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운용로 792[곡란리 52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소희 |
건립 시기/일시 | 1546년 - 난포고택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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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809년 - 난포고택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16년 - 난포고택 중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5년 8월 18일 - 난포고택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0호 지정 |
현 소재지 | 난포고택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운용로 792[곡란리 526] |
성격 | 고택 |
정면 칸수 | 안채 7칸|아래채 4칸|사당 2칸 |
측면 칸수 | 안채 1칸 반|아래채 1칸|사당 1칸 |
소유자 | 최해근 |
관리자 | 최해근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0호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에 있는 조선 시대 고택.
[개설]
난포고택은 임진왜란 때 전라도사를 지낸 최철견(崔鐵堅)의 고택이다. 최철견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중경(重卿), 호는 난포(蘭圃)이며, 영천에서 태어났다. 이후 자인현으로 이거하여 현재 위치에 난포고택을 건립하였다. 최철견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0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손자 최인수(崔仁壽), 증손 최준립(崔峻立)과 함께 창의하였다.
[위치]
당리교차로에서 남쪽으로 당리교를 건너 지방도 제919호선을 따라 약 2.8㎞ 이동하면 도로 좌측 편에 난포고택이 있다. 난포고택 동쪽으로는 영천 최씨 집성촌인 골안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서쪽에는 오목천으로 합류하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다.
[변천]
난포고택은 1546년(명종 1) 건립되었는데, 『난포공실기(蘭圃公實記)』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근래 ‘가경(嘉慶) 14년(1809년)’이 적혀 있는 막새기와와 1816년(순조 16) 작성된 중수 상량문이 발견되어, 최소 두 차례 중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04년 대문채와 큰사랑채를 복원하였다.
[형태]
난포고택의 원래 배치형태는 ㅁ자형의 사랑 공간과 ㅁ자형의 안채 공간이 종(縱)으로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일(日)자형을 이루고 있었다. 사랑 공간은 솟을 대문을 한 대문채를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 끝에 사랑채가 있었고 사랑채의 좌·우에는 작은 사랑채와 고방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랑채 뒤에는 안채 공간이 있는데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채가 중앙에 있고 좌·우에 아래채와 방아실채가 각각 배치되어 있었다.
현재의 배치는 대문채를 들어서면 바로 큰사랑채가 있다. 큰사랑채 우측에는 용산에서 옮겨온 수오당(守吾堂)이 있으며, 수오당 왼쪽 담장을 따라가면 왼쪽에 넓은 안마당이 나타난다. 안마당 끝 쪽에 안채가 서향하여 있고 안채의 왼쪽에는 아래채가 남향하여 있다. 안채의 오른쪽 뒤에는 사당이 있다. 큰사랑채는 9칸 규모의 ㄱ자 형태로 우측으로는 안채로 연결되는 중문이 1칸 있다. 1칸 사랑방과 2칸 사랑방, 2칸 사랑마루와 난간을 두른 4칸 누마루가 있어 일반고택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총 6칸의 마루를 가지고 있다.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전체구조는 ‘一’자 형으로 왼쪽에서부터 부엌 2칸, 안방 1칸, 대청 2칸, 작은방 1칸, 마루방 1칸 순이다. 부엌을 제외한 5칸의 전면에는 퇴칸을 두었다. 사당은 흙담을 둘러 별도의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평면 구성은 정면2칸, 측면 1칸이며 바닥은 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아래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一자형 건물이다. 평면은 왼쪽으로부터 2칸의 도장과 아랫방, 마루를 연접시켰으며 아랫방의 전면에는 쪽마루를 두었다. 아랫방 아궁이는 쪽마루 하부에 있으며 굴뚝은 후면의 기단에 설치하였다.
현재 없어진 건물을 요약하면, 대문채는 3칸 규모의 솟을 대문으로 대문 좌·우측에 행랑방과 마판이 있었다. 사랑채는 ㅁ자형의 평면인데 오른쪽 끝에는 안채로 통하는 중문이 1칸 있었다. 중문 왼쪽으로는 마구 2칸, 사랑방 2칸, 사랑마루 1칸 반, 여막방(廬幕房)이 연접되어 있으며 여막방에서 회첨하여 난간을 두른 4칸 규모의 누마루를 두었다. 중사랑채는 4칸 규모의 一자형 평면인데 사랑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칸씩 방을 두었다. 고방채는 8칸 규모의 日자형 평면으로 고방채 동쪽 끝은 사랑채의 중문과 담으로 연결되어 있다. 방아실채는 3칸 규모인데 중앙에는 디딜방아를 설치하였고 안채 쪽으로는 도장을, 서쪽 끝에는 구들을 놓았다.
[현황]
난포고택은 1975년 8월 18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0호로 지정되었다. 2010년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한옥 체험 숙박시설 지원 사업 대상으로 선정되어 2020년 현재까지 고택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농촌관광 활성화를 위해 난포고택에서 ‘농촌관광 팜파티(Farm-Party)’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현재 난포고택 앞 왼쪽에는 일석최공한근송덕비가 세워져 있다. 난포고택은 원래 안채·사랑채·아래채·중사랑채·방아실채·행랑채와 대문채·고방채·마판·사당 등을 모두 갖춘 조선 시대 전형적인 상류주택이었으나, 현재 대문채·큰사랑채·안채·아래채·사당이 남아있다.
[의의와 평가]
난포고택은 현재 경산에 남아있는 조선 시대 상류주택으로서 안채는 가운데 5칸의 지붕이 맞배지붕이면서 양쪽 끝 좌·우 1칸은 지붕을 덧달아낸 팔작지붕의 형태이다. 이러한 양식은 경상북도 영천, 경주, 경산 등 남부지방에서만 주로 나타나는 형태로 의미가 있다. 또 난포고택은 역사가 오래되고 풍수지리적으로 길지에 속해 있어 문화유산적 가치가 높다. 특히 1929년 일본인 민속학자인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은 난포고택을 풍수지리적으로 길지(吉地)라 소개하였으며, 1931년 발간된 『조선의 풍수』에서도 그 지형이 부용화(芙蓉花)와 같아 거주지로 가장 좋다고 소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