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5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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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盡忠廟 |
영어공식명칭 | Jinchungmyo shrine |
이칭/별칭 | 진충사,한묘,일한묘,한당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 69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국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65년 - 진충묘 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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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진충묘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 69전 |
원소재지 | 진충묘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
성격 | 사당 |
양식 | 홑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관리자 | 경산시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 경산자인의계정숲 내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개설]
진충묘(盡忠廟)는 한장군(韓將軍)을 모신 사당으로, 진충사(盡忠祠)·한묘(韓廟)·일한묘(一韓廟)·한당(韓堂)이라고도 한다. 한장군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 경산자인단오제의 주요 의식인 여원무(女圓舞)의 주인공이다. 한장군은 누이동생과 함께 여원무를 추어 자인(慈仁) 지역으로 쳐들어온 왜군을 물리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장군의 실체와 활동 시기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차이를 보이며 신라인 설, 고려 후기 한종유(韓宗愈) 설, 임진왜란 설 등 다양한 견해가 있어 명확하게 규명할 수 없다. 다만, 자인 지역에서 오랜 기간 수호신으로 추앙받아오고 있다.
[위치]
자인면행정복지센터 입구에서 남쪽 경산시 자인면 일연로를 따라 약 600m 이동하면, 우측에 ‘경산자인의계정숲’ 표지판이 나타나고 우측 정면에 그 입구가 있다. 진충묘는 경산자인의계정숲 동쪽 끝 부분에 위치해 있다.
[변천]
진충묘는 옛 자인현 백성들이 고을을 수호한 한장군을 기리기 위해 현의 서쪽 기슭에 신당을 세운 것에서 유래한다. 사당의 유래는 오래되었지만, 건립 시기는 알 수 없다. 『자인총쇄록(慈仁叢鎖錄)』에 따르면, 한장군 사당의 향사 때 수천 명이 몰려들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1765년(영조 41)에 자인현감 정충언(鄭忠彦)이 신당을 중수하였다. 1800년(정조 24)에 성주목사(星州牧使) 장석윤(張錫胤) 쓴 「한묘기(韓廟記)」에 따르면, 이 시기 사당 이름은 ‘일한묘(一韓廟)’였다고 한다. 이후 개칭되었고, 19세기 후반 엮여진 『자인총쇄록』에는 ‘진충묘’라 전하게 되었다.
한편,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마곡리, 자인면 원당리·북사리, 용성면 대종리·송림리에도 한장군을 추숭하는 사당이 건립되었으나, 북사리와 송림리의 사당은 일제 강점기에 강제 철거되었다.
[형태]
진충묘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는 통칸으로 되어 있다.
『자인총쇄록』에 따르면, 조선 시대 사당의 규모는 1칸 반이었다고 한다. 서쪽 벽면에는 감실(龕室)이 있었고, 제상에는 지화(紙花) 등을 비롯하여 ‘증병조판서한장군 신위(贈兵曹判書韓將軍 神位)’와 ‘한씨낭자 신위(韓氏娘子 神位)’라고 적힌 위패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으며, 좌우로 각각 대궤자(大樻子)가 1좌씩 있고 제기·배석(拜席)·향로·합촉대(盒燭臺)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고 한다.
[현황]
진충묘는 매년 음력 5월 5일에 향사를 지낸다. 바로 옆에 조선 시대 자인현의 정청(政廳)인 사중당(使衆堂)이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한장군은 예로부터 자인 지역 사람들에게 고을의 수호신으로 추앙 받던 인물이다. 고을 수호신에 대한 추숭이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로, 진충묘는 지역 정체성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