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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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盤龍寺 |
영어공식명칭 | Banyongsa Temple |
이칭/별칭 | 신흥사,신흥암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전1길 60[용전리 119]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박병선 |
건립 시기/일시 | 661년 - 반룡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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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중창 시기/일시 | 1641년 - 반룡사 중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49년 - 반룡사 대광전 및 가허루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52년 - 반룡사 관음전 및 원음전 등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53년 - 반룡사 해탈문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54년 - 반룡사 영우전 및 해운당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55년 - 반룡사 제월당 및 명월당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61년 - 반룡사 만월당 및 법성료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63년 - 반룡사 원융전 건립 및 내원암 창건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66년 - 반룡사 천왕문 및 명부전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70년 - 반룡사 팔상각 및 홍려전 등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74년 - 반룡사 극락전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88년 - 반룡사 내향각 및 외향각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700년 - 반룡사 봉황문 및 금강문 건립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20년 - 반룡사 중창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68년 - 반룡사 중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9년 - 반룡사 산신각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2년 - 반룡사 용왕각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8년 - 반룡사 대웅전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7년 - 반룡사 천불전 건립 및 아미타불상 봉안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8년 - 반룡사 요사 건립 |
최초 건립지 | 반룡사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전1길 60[용전리 119] |
현 소재지 | 반룡사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전1길 60[용전리 119] |
성격 | 사찰 |
창건자 | 원효 |
전화 | 053-852-1919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전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소속 사찰.
[개설]
반룡사(盤龍寺)는 삼국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고려 시대에 중창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이다. 반룡사에 있는 전각 대부분은 현대에 건립되었으며, 조선 후기 주불전의 기단면석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산 반룡사 화문면석 부재(慶山盤龍寺花紋面石部材)가 남아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반룡사는 661년(문무왕 1) 원효대사(元曉大師)[617~686]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전기에 원응국사(圓應國師)[1051~1144]가 ‘신흥암(新興庵)’이라는 이름으로 중창하였다고 전하나, 창건에 관한 자세한 자료가 없다. 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고, 조선 후기에 사찰의 면모를 회복하였다.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자인현(慈仁縣)편의 비판(碑板)조에 수록된 자인현감 정충언(鄭忠彦)이 쓴 「반룡사사적비문(盤龍寺事蹟碑文)」에 따르면, 1637년(인조 15) 자인현이 경주부에서 분리되어 현으로 승격되자, 초대 현감 임선백(任善伯)이 사지(寺址)를 일으키고, 1641년(인조 19)에 계운(戒云)과 명언(明彦)이 선당(禪堂)과 승당(僧堂)을 건립하여 중창하였으며, 이어 1649년(인조 27)에 신천(信天)이 대광전(大光殿)을, 혜령(惠岺)이 가허루(駕虛樓)를 각각 건립하였다. 1652년(효종 3)에 성홍(性弘)과 일순(一淳)이 관음전(觀音殿)·원음전(圓音殿)·향적전(香積殿)을 건립하였고, 1653년(효종 4)에 성행(性行)이 해탈문(解脫門)을 건립하였다. 1654년(효종 5)에 계택(戒澤)과 인한(印閑)이 영우전(影于殿)과 해운당(海雲堂)을 건립하였으며, 1655년(효종 6)에 각신(覺信)이 제월당(霽月堂)과 명월당(明月堂)을 건립하였다.
1661년(현종 2)에는 만월당(滿月堂)과 법성료(法性寮)을 건립하였다. 1663년(현종 4)에는 원륭전(圓融殿)을 건립하였고, 같은 해 행연(幸連)·탁일(卓日)·경훈(敬熏)·운심(雲心) 등이 반룡사 속암인 내원암(內院庵)을 창건하였다. 1666년(현종 7) 천왕문(天王門)과 명부전(冥府殿)을 건립하였고, 1670년(현종 11)에 팔상각(八相閣)·홍려전(鴻蘆殿)·무상원(無常院)을 건립하였으며, 1674년(현종 15)에는 극락전(極樂殿)을 건립하였다. 1688년(숙종 14)에 내향각(內香閣)과 외향각(外香閣)을 건립하였고, 1700년(숙종 26)에 봉황문(鳳凰門)과 금강문(金剛門)을 건립하였다.
반룡사는 인조 대부터 숙종 대까지 60여 년 동안 총 25개의 전각을 건립하여 대가람을 이루며 ‘신흥사(新興寺)’를 반룡사로 개칭하였다. 당시 반룡사 속암으로는 내원암(內院庵)·취운암(翠雲庵)·대적암(大寂庵)·은선암(隱仙庵)·안적암(安寂庵) 등 5개가 있어 반룡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1916년 화재로 많은 전각이 소실되었고 1920년에 운학(雲學)이 다시 중창하였다. 화재 당시 목조삼존불 가운데 협시불인 관세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은 경상북도 청도군 소재의 사찰로 옮겨지고 주존불인 아미타불좌상만 남아 있었는데, 1991년에 아미타불좌상을 도난당하고 사진 등을 고증자료로 하여 제작한 불상을 봉안하였다.
1968년에 중창하였고, 1989년에 산신각(山神閣), 1992년에 용왕각(龍王閣), 1998년에 대웅전(大雄殿)을 완공한 후 2001년에 단청하였다. 2007년 천불전(千佛殿)을 조성하고 주존불인 아미타불상과 관음보살 천불을 봉안하였으며, 2018년에 요사채를 허물고 공양간 겸 요사채를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활동 사항]
반룡사는 대웅전 뒤쪽 솔밭에 석조관음보살입상을 봉안하여 날마다 기도 정진하고, 매월 음력 24일에 관음재일 법회를 봉행하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반룡사의 전각으로는 대웅전, 천불전, 산령각, 누각, 승방, 종무소, 현대식 슬라브 건물인 공양간 겸 요사채 등이 있으며, 그 밖의 성보로는 관음보살입상, 삼층석탑, 석등, 소형 동종, 석조 부재 전시장 등이 있다.
반룡사의 출입문 격인 2층 누각을 통과하여 올라서면, 좌우에 공양간인 요사채와 종무소인 요사채가 있으며, 종무소 뒤쪽에 승방이 있다. 누각의 전면에 삼층석탑이 있고 석탑 뒤쪽으로 3단의 석축이 있는데, 1단은 낮으나 2단과 3단은 높다. 중심 불전인 대웅전은 높은 석축과 2단의 대리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기와지붕 구조로 되어 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상을 주존불로 좌우에 지장보살상과 관음보살상을 협시로 봉안하고 있으며, 좌측 벽면에는 170여 개의 작은 불상이 7단 혹은 4단의 나무곽 속에 배열되어 있다.
대웅전 우측 아래쪽에 아미타불좌상을 주존불로 천개의 관음보살상을 봉안하고 있는 천불전이 있다. 천불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지붕 구조이고, 후불탱화로 영산회상탱이 모셔졌으며 왼편에 칠성탱, 오른편에 신중탱이 각각 봉안되어 있다. 또 천불전에는 1968년에 지어진 ‘반룡사 중수기문’과 2001년에 지어진 ‘단청기문’이 유존하고 있다.
대웅전과 천불전 사이의 뒤쪽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인 산령각이 있다. 산령각에는 1989년에 조성된 산신탱과 그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바로 앞쪽에 석등 2개가 서 있고 그 앞 마당에 삼층석탑이 있다. 또 천불전 전면 오른편으로 우물인 용수(龍水)가 있고, 대웅전 왼편 뒤쪽에 관음보살입상이 봉안되어 있다.
[관련 문화재]
반룡사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57호로 지정된 경산 반룡사 화문면석 부재 1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주불전의 기단면석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면석 부재에는 꽃 모양이 새겨져 있다. 반룡사의 사격(寺格)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며 17세기 영남 지역 건축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전개된 화문(花紋)이 새겨진 가구식 기단의 계보를 파악할 수 있어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그 밖에도 반룡사에는 1741년(영조 17)에 조성된 종형 부도 1기가 유존하고 있으며, 석탑·석등·당간지주·부도·비 등의 일부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후기 석조부재(石造部材)가 화문면석과 더불어 야외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