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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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陽釜湖里琴湖書院 |
영어공식명칭 | Geumhoseowon Confucian Academy in Buhori, Hayang-eup |
이칭/별칭 | 금호서원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가마실길2길 32-1[부호리 11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국 |
건립 시기/일시 | 1684년 - 하양부호리금호서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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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724년 - 금호서원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금락리에서 서사리로 이건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790년 - 금호서원 사액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71년 - 금호서원 훼철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01년 - 금호서원 유허비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13년 - 하양부호리금호서원 복원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3년 10월 27일 - 하양부호리금호서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49호 지정 |
현 소재지 | 하양부호리금호서원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가마실길2길 32-1[부호리 114] |
원소재지 | 금호서원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금락리 73 |
성격 | 서원 |
양식 | 홑처마 솟을대문[외삼문]|겹처마 팔작지붕[수교당]|홑처마 박공지붕[내삼문]|겹처마 맞배지붕[경덕사] |
정면 칸수 | 3칸[외삼문]|4칸[수교당]|3칸[내삼문]|3칸[경덕사] |
측면 칸수 | 3칸[외삼문]|4칸[수교당]|3칸[내삼문]|2칸[경덕사] |
소유자 | 하양 허씨 주부공파 문중 |
관리자 | 하양 허씨 주부공파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49호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개설]
하양부호리금호서원(河陽釜湖里琴湖書院)은 조선 전기 문신 허조(許稠)[1369~1439]를 제향하는 서원으로, 1684년(숙종 10)에 건립되었다. 허조의 본관은 하양(河陽), 자는 중통(仲通), 호는 경암(敬庵),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권근(權近)의 문인으로 1390년(공양왕 2)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조선 건국 후 여러 요직을 역임하며 나라의 기틀을 확립하는 데 공을 세웠다. 1439년(세종 21)에 좌의정을 지냈다.
[위치]
하양읍행정복지센터에서 남쪽 경산시 하양읍 문화로를 따라 약 300m 직진한 뒤 우회전하여, 다시 대경로를 따라 약 1.4㎞ 직진하면 오른쪽에 ‘금호서원’ 안내판이 나온다. 안내판에서 우회전하여 오른쪽 경산시 하양읍 가마실길2길을 따라 약 330m 이동하면 오른쪽에 하양부호리금호서원이 있다. 남쪽으로 약 350m 지점에 허후·허조부자정충각(許詡許慥父子旌忠閣)이 있으며, 그 남쪽으로는 금호강이 흐른다. 하양부호리금호서원의 서쪽과 북쪽에는 각각 호산대학교와 경일대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변천]
하양부호리금호서원은 허조를 제향하기 위해 1684년(숙종 10) 하양현 금락리[현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금락리]에 건립되었다. 1724년(경종 4)에 서사리(西沙里)[현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서사리]로 이건하였다. 1790년(정조 14)에 채사현(蔡思玄) 등이 상소를 올려 사액을 받으면서 하양현의 유일한 사액서원이 되었으나, 1871년(고종 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이후 1901년 옛 금호서원 터에 유허비와 비각을 건립하였다. 1913년에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에 경덕사(景德祠)와 수교당(修敎堂)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하양부호리금호서원은 외삼문을 중심으로 볼 때 강당이 왼쪽, 사당이 오른쪽에 위치한 좌학우묘(左學右廟) 배치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사당과 강당의 축이 동일선상에 있지 않고, 방향도 서로 달리하여 직교하고 있다. 대지가 사당에서 강당 방향으로 경사를 이루어 사당 부분이 높은 위치에 있는데, 사당을 중심으로 두 공간이 구획되어 상·하위 공간 틀을 유지하고 있다.
외삼문(外三門)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솟을지붕 건물로, ‘준도문(遵道門)’이라 편액하였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강당인 수교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자연석 기단 위에 운두가 낮은 평편한 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다. 가운데 2칸은 대청을 깔고, 좌우에 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이다. 전면에 반 칸 규모의 툇간이 있다. 대청과 왼쪽 온돌방 사이에 쌍여닫이문을 설치하고, 오른쪽 온돌방에는 4분합 들문을 설치하여 대청과 하나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개방성을 높였다. 기둥은 모두 둥근기둥이고 기둥 상부는 익공 없이 소로수장(小櫨修粧)[도리나 장여의 밑에 소로를 받쳐서 장식한 구조]으로 처리하였다. 수교당 앞 오른쪽에는 성경재(誠敬齋)가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박공지붕 건물로, 양쪽에 2칸씩 온돌방을 두어 왼쪽은 ‘구인헌(求仁軒)’, 오른쪽은 ‘성경재(誠敬齋)’라 편액하였다. 뒷쪽으로는 문을 두어 관리사와 통한다.
강학 공간의 오른쪽 경사진 대지 위에는 제향 공간이 있다. 제향 공간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담이 둘러져 있어 별도의 공간을 이룬다. 제향 공간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박공지붕 건물이다. 사당인 경덕사(景德祠)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는 통칸으로 처리되었고, 어칸의 배면 벽에 위패가 배설되어 있다. 기둥은 모두 둥근기둥이며, 기둥 상부의 양식은 초익공이다. 양 측면에 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그 밖에 3칸의 고사(庫舍)·정침(正寢)·하당(下堂)·양몽재(養蒙齋) 등이 있다.
[현황]
하양부호리금호서원은 2003년 10월 27일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0호로 지정되었다. 매년 2월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낸다. 하양부호리금호서원에서 동북쪽으로 1.6㎞ 떨어진 지점에는 1922년에 복원된 금락리금호서원이 있다. 금락리금호서원은 금호서원이 중건되는 과정에서 같은 가문의 다른 후손들에 의해 별도로 건립된 것이다.
한편, 철폐되기 전 금호서원이 위치하였던 곳에는 1901년에 건립된 금호서원 유허비(琴湖書院遺墟碑)[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환성로 71]가 있다.
[의의와 평가]
하양부호리금호서원은 조선 시대 하양현의 유일한 사액서원으로, 조선 후기 하양 지역 향론의 중심지였기에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