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9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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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山書院 |
영어공식명칭 | Yongsanseowon Confucian Academy |
이칭/별칭 | 영모재,용산서당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곡란1길 19-15[곡란리 44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국 |
건립 시기/일시 | 1635년 - 영모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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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03년 - 영모재를 용산서당으로 개칭 및 사절각 건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04년 - 용산서당 증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18년 - 용산서당 증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3년 - 용산서당 최팔개·최팔원 제향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64년 - 용산서당 증축 및 사절각을 경의사로 개칭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7년 - 용산서당에서 용산서원으로 승격 |
현 소재지 | 용산서원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곡란1길 19-15[곡란리 449] |
원소재지 | 영모재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곡란1길 19-15[곡란리 449] |
성격 | 서원 |
양식 | 팔작지붕[영모재]|맞배지붕[경의사] |
정면 칸수 | 4칸[영모재]|3칸[경의사] |
측면 칸수 | 1.5칸[영모재] |
소유자 | 흥해 최씨 봉사공파 문중 |
관리자 | 흥해 최씨 봉사공파 문중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개설]
용산서원(龍山書院)은 최팔개(崔八凱)[1560~?]와 최팔원(崔八元)[1562~1592] 형제를 제향하는 서원으로, 1635년(인조 13)에 영모재(永慕齋)로 건립되었다. 형 최팔개의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성거(聖擧), 호는 죽은(竹隱)이며, 동생 최팔원의 자는 군거(君擧), 호는 죽포(竹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제는 마을의 장정을 모아 동래성 전투에 참전하였다. 이 전투에서 최팔원은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과 함께 순절하였다.
[위치]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에 소재한 당리교차로에서 남쪽 도로를 따라 경상북도 청도군 방면으로 2.4㎞ 이동하면, 도로 우측 편에 작은 하천을 건너는 용산3교가 놓여 있다. 다리를 건너면 전방에 마을이 조성되어 있는데, 용산산성(龍山山城)이 설치된 용산 동쪽 기슭에 해당한다. 조곡서원은 마을 서편에 위치하며, 동남쪽으로 350m 떨어진 지점에 하천을 사이에 두고 난포고택(蘭圃故宅)이 위치해 있다.
[변천]
용산서원의 연혁은 1635년(인조 13)에 건립된 영모재에서 시작한다. 영모재는 인근에 있는 흥해 최씨 현조(顯祖)들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세운 분암(墳菴)이었다. 1903년(광무 7)에 후손 최석붕(崔碩鵬)과 최한곤(崔漢坤)이 종중 사람들과 합심하여 쇠락한 영모재를 용산서당(龍山書堂)으로 바꾸고, 남쪽에 최팔개·최팔원 형제를 기리는 사절각(四節閣)을 건립하였다. 1904년에 강당을 건립하여 강습 공간으로 사용하였으며, 1918년에는 3칸의 사당을 건립하였다. 1963년에 최팔개·최팔원 형제를 공식적으로 사당에 제향하였으며, 1964년에는 강당을 건립하고, 사절각을 경의사(景義祠)로 개칭하였다. 1987년에 용산서원으로 승격하였다.
[형태]
용산서원의 3칸 규모 산형대문을 지나면 정면에 강당인 영모재가 있고, 오른쪽에는 관리사가 있다. 영모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온돌방을 왼쪽에 1칸, 오른쪽에 2칸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 구조이다.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이 있다. 강당 뒤에는 사당인 경의사가 별도의 공간을 이룬다. 경의사는 정면 3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현황]
용산서원은 매년 3월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낸다. 내부에 편액을 비롯하여 1903년(광무 7)에 이만도(李晩燾)가 쓴 「용산서당기(龍山書堂記)」, 1965년에 이종기(李宗基)가 쓴 「용산강당기(龍山講堂記)」, 1966년에 후손 최호두(崔鎬斗)가 쓴 「용산서당경의사전말기(龍山書堂景義祠顚末記)」 등의 현판이 있다.
[의의와 평가]
용산서원은 경산 지역 흥해 최씨 가문의 문중 활동과 근대 이후 선현 우모소(寓慕所)의 변모 양상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내부에 관리사가 설치되어 있으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