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에 있는 개항기 정기(鄭夔)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 귀후재(歸厚齋)는 이 고장에 처음으로 입향한 정기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었다. 정기의 자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율리(栗里)이다. 영일 정씨(迎日鄭氏)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예이며, 젊어서부터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문하에서 배웠다. 겸재가 왕에게 사은소(謝恩疏)를 올...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에 있는 개항기 정기(鄭夔)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 귀후재(歸厚齋)는 이 고장에 처음으로 입향한 정기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었다. 정기의 자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율리(栗里)이다. 영일 정씨(迎日鄭氏)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예이며, 젊어서부터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문하에서 배웠다. 겸재가 왕에게 사은소(謝恩疏)를 올...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김창휘(金昌輝)의 효행을 기리는 비. 조선 순조 때 효자 통정대부(通政大夫)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김창휘는 아버지의 변을 맛보며 병환을 8년 동안 살폈고, 아버지의 병세가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어 병중의 아버지가 1년을 더 살도록 했다. 그의 효행이 알려지자 조정에서 벼슬을 내렸다. 1941년 고을 사람들과 후손들이 뜻...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김창휘(金昌輝)의 효행을 기리는 비. 조선 순조 때 효자 통정대부(通政大夫)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김창휘는 아버지의 변을 맛보며 병환을 8년 동안 살폈고, 아버지의 병세가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어 병중의 아버지가 1년을 더 살도록 했다. 그의 효행이 알려지자 조정에서 벼슬을 내렸다. 1941년 고을 사람들과 후손들이 뜻...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영일 정씨(迎日鄭氏)가 하동에 들어온 것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둘째 아들인 11세손 정종본(鄭宗本)이 귀양 온 숙부를 따라 진주에 정착하고, 정종본의 후손인 18세손 정기(鄭山+夔)[1614~1672]가 하동에 입향(入鄕)하고 나서부터이다. 영일 정씨 종가인 양보면 장암리 정씨 고택(良甫面...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영일 정씨(迎日鄭氏)가 하동에 들어온 것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둘째 아들인 11세손 정종본(鄭宗本)이 귀양 온 숙부를 따라 진주에 정착하고, 정종본의 후손인 18세손 정기(鄭山+夔)[1614~1672]가 하동에 입향(入鄕)하고 나서부터이다. 영일 정씨 종가인 양보면 장암리 정씨 고택(良甫面...
-
1928년 고당 김규태가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와 불일폭포를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유불일폭기(遊佛日瀑記)」는 김규태(金奎泰)[1902~1966]의 『고당집(顧堂集)』 권11에 수록되어 있다. 김규태는 1928년 5월 10~5월 11일 양일간 쌍계사(雙磎寺)와 불일폭포 일대를 유람하고 그 감상을 「유불일폭기」로 기록하였다. 동행이었던 매봉(梅峰) 오정표(吳正杓)[1897~194...
-
1928년 매봉 오정표가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와 불일폭포를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유불일폭기(遊佛日瀑記)」는 『매봉유고(梅峯遺稿)』 권3에 수록되어 있다. 오정표(吳正杓)[1897~1946]는 1928년 6월 7~6월 8일 양일간 하동군의 불일폭포를 유람하였다. 동행한 고당(顧堂) 김규태(金奎泰)[1902~1966]도 「유불일폭기」라는 유람록을 남기고 있다. 오정표의 자는 화...
-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있는 각각의 종중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세운 건물. 재실(齋室)은 종중(宗中)에서 조상의 묘제(墓祭)나 망제(望祭)를 지내기 위해서 세운 건물이다. 이를 재각(齋閣), 재궁(齋宮)이라고도 한다. 재실은 종중, 또는 문중의 공유 재산이며, 선산(先山)·종산(宗山)·위토(位土)·사당 근처에 위치한다. 재실은 묘제에 참석하는 후손들의 숙식과 제례 음식 등을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