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민
-
개항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학수(學叟), 호는 옥촌(玉邨)·두산(斗山). 남명(南冥) 조식(曺植)에게 수학한 만송(晩松) 강렴(姜濂)[1544~1606)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중은(重隱) 강석좌(姜錫佐)[1777~1853]이며, 아버지는 죽헌(竹軒) 강지준(姜之濬)이다. 어머니는 하시원(河始元)의 딸 진양 하씨(晉陽河氏)이고, 부인은 정충환(鄭忠煥)의...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개항기 최숙민(崔琡民)을 기리는 재실. 계남정(溪南亭)은 계남(溪南) 최숙민[1837~1905]의 재실이다. 계남 최숙민은 절의를 숭상하던 영남 남인 가문 출신의 학자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晉州城)에서 순국한 모산(茅山) 최기필(崔琦弼)[?~1593]의 8세손으로, 용모가 비범하고 재주가 뛰어나 어려서부터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에 매진...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최숙민의 문집. 최숙민(崔琡民)[1837~1905]의 호는 계남(溪南)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사숙인(私宿人)[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본받아서 도나 학문을 닦는 사람]이면서, 노론 계열로서 주리론을 주창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6]의 문인이다. 이 두 가지가 문집에 절묘하게 융합되어 나...
-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확인된 전근대에 간행되거나 필사된 서책 유형의 사료. 고서의 개념은 그 분류 시점을 어디로 하는가에 따라 상당한 인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한국고서동우회에서는 고서의 기준 시점을 1959년 이전에 출판된 책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인쇄문화사에서는 1910년을 기준으로 직접 쓰고 베끼고 목판을 새기고 활자로 찍어낸 모든 책으로 보고 있다. 고서는 내용에...
-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최숙민이 하동 고소성에 올라 읊은 한시. 「고소성(姑蘇城)」은 최숙민(崔琡民)[1837~1905]의 문집 『계남집(溪南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최숙민이 해 질 녘 비오는 어느 봄날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하동 고소성(河東姑蘇城)에 올라, 고기잡이 나갔다가 떼 지어 돌아오는 섬진강의 배를 내려다보며 심회를 읊은 한시이다. 하동 고소성은 본래 전국...
-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최숙민이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동정호를 바라보며 지은 한시. 「과동정호(過洞庭湖)」는 최숙민(崔琡民)[1837~1905]의 문집 『계남집(溪南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최숙민이 하동 지역을 여행하면서 동정호 앞의 악양 들판, 그 곁의 하동 고소성(河東姑蘇城)을 보며 청운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여기저기 유람만 다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한시이다....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와 산청군 시천면에 걸쳐 있는 산. 두방산은 569.7m의 산이며, 비룡산[555m]·흰덤산[639m]·사림산[573.8m]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다. 산줄기 왼쪽으로 산청군 시천면의 깃대봉[일명 오대주산, 642.6m]이, 오른쪽으로 우방산[494m]·정개산[520m]이 이어진다. 두방산 아래 평야에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가 자리 잡...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최기필의 문집. 최기필(崔琦弼)[1562~1593]의 자는 규중(圭仲), 호는 모산(茅山)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순절하였으며, 조정에서 병조참의직을 추증하였다. 그의 사적(史蹟)은 국승(國乘)과 야사(野史)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를 제향하는 진주 창렬사(彰烈司)는 사액되었다. 최기필의 5세손 최주국(崔柱國)이 집안에 내려오는 유적(遺籍)...
-
개항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강성(江城). 초명은 문석호(文碩鎬), 자는 국원(國元), 호는 석전(石田). 의안공(毅安公) 문득준(文得俊)의 후손으로, 연강재(練江齋) 문후(文後)[1574~1644]의 8세손이다. 6대조 직하재(稷下齋) 문헌상(文憲商) 때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 이거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사암(思菴) 문기팔(文起八)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회당(晦堂) 문종익(...
-
개항기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 살던 최숙민이 하동 섬진강을 유람하면서 지은 한시. 「섬진강(蟾津江)」은 구한말 유학자 최숙민(崔琡民)[1837~1905]의 문집 『계남집(溪南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섬진강」은 최숙민이 노년에 강회에 초청되어 학문을 강론한 뒤, 섬진강을 유람할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동의 쌍계사(雙磎寺)와 화개동에 남아 있는 최치원(崔致遠)[857~9...
-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최경병의 문집. 최경병(崔瓊秉)[1865~1939]의 자는 영호(永好), 호는 수당(修堂)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에서 살았다. 『수당집(修堂集)』은 1939년에 간행되었으며,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이 없어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8권 4책의 목활자본(木活字本)이며, 표제(表題)와 판심제는 수당집(修堂集)으로 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가로 1...
-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 중촌마을에 있는 개항기 때 서당. 신천서당(新川書堂)은 수당(修堂) 최경병(崔瓊秉)[1865~1939]이 강학하던 곳이다. 최경병의 자는 영호(永好), 본관은 완산(完山)이며, 계남(溪南) 최숙민(崔琡民)[1837~1905]의 문인이다. 하동 서황리 경현당(河東西黃里景賢堂)의 옆에 위치한다. 주위에 대숲이 우거져 있어 그윽한 느낌을 준다. 하동 서황리...
-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 중촌마을에 있는 개항기 때 서당. 신천서당(新川書堂)은 수당(修堂) 최경병(崔瓊秉)[1865~1939]이 강학하던 곳이다. 최경병의 자는 영호(永好), 본관은 완산(完山)이며, 계남(溪南) 최숙민(崔琡民)[1837~1905]의 문인이다. 하동 서황리 경현당(河東西黃里景賢堂)의 옆에 위치한다. 주위에 대숲이 우거져 있어 그윽한 느낌을 준다. 하동 서황리...
-
1902년경 면암 최익현이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에 있는 여씨의 재실 양심재에서 읊은 한시. 「양심재염심자(養心齋拈心字)」는 최익현(崔益鉉)[1833~1906]의 문집 『면암집(勉庵集)』 권2에 수록되어 있다. 1989년 여강출판사에서 간행한 『면암최선생전서(勉菴崔先生全書)』 인책(人冊)의 문인 곽한소(郭漢紹)가 지은 「남유일기(南遊日記)」에 의하면, 최익현은 1902년(고...
-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이루어지는 언론 및 출판 활동의 총칭. 언론은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전반을 일컫는 말로써, 하동군의 정치·사회·문화·교육 등 전반에 관한 언론 활동은 주로 신문과 방송을 통해 이루어진다. 출판은 주로 문자에 의해 다양하고 정밀한 정보를 필요한 사람에게 판매하거나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하는 일련의 행위나...
-
경상남도 하동군 지역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1. 16세기 하동군의 유학자를 출생 시기별로 살펴보면 우선 가장 앞선 시기의 인물로 지족당(知足堂) 조지서(趙之瑞)[1454~1504]를 들 수 있다. 조지서는 연산군(燕山君)이 세자로 있을 때 스승의 직책을 맡아 엄격하게 지도하다가 미움을 사게 되어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조지서는 연산군이 즉위...
-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있는 각각의 종중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세운 건물. 재실(齋室)은 종중(宗中)에서 조상의 묘제(墓祭)나 망제(望祭)를 지내기 위해서 세운 건물이다. 이를 재각(齋閣), 재궁(齋宮)이라고도 한다. 재실은 종중, 또는 문중의 공유 재산이며, 선산(先山)·종산(宗山)·위토(位土)·사당 근처에 위치한다. 재실은 묘제에 참석하는 후손들의 숙식과 제례 음식 등을 준비...
-
근대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국장(國章), 호는 해사(海史). 고려조 통례문지후(通禮門祗侯) 정신(鄭侁)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정간(鄭幹)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의 문인인 허재(虛齋) 정지탁(鄭志倬)이고, 할아버지는 화헌(化軒) 정주윤(鄭周贇)이다. 친아버지는 반와(盤窩) 정택시(鄭宅蓍)이며, 친어머니는 성준(成準)의 딸인 창...
-
개항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초명은 정효기(鄭孝基), 자는 응선(應善). 호는 수재(守齋). 처음에는 호를 회계(晦溪)라 하였다가, 만년에 『논어(論語)』의 “목숨을 걸고 지키며 도를 선하게 한다[守死善道]”라는 구절에서 취하여 수재라 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송죽헌(松竹軒) 정도관(鄭道貫)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청계(淸溪) 정국제(鄭國濟)이며, 할아버지는 통덕랑...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아직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규모가 작은 속읍(屬邑)이 적지 않게 존재하였다. 태종 대에는 이런 고을들을 두세 개씩 통합하여 수령을 파견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동현과 남해현은 이미 수령이 파견되어 있는 고을이었지만, 1414년(태종 14) 8월 두 고을을 합쳐 하남현(河南縣)으로 개칭하였다가 이듬해 3월...
-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이루어지는 신앙 행위의 총칭. 종교는 신 또는 진리로 표현되는 절대적인 존재자를 숭배하며 근본적이라 믿는 것을 확고한 신념으로 받아들인다. 한국의 종교는 고대 무속 신앙으로부터 출발하여, 삼국 시대에는 유교, 불교, 도교가 수용되었으며 고려 시대에는 불교가 국교였을 정도로 크게 성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유교가 국교가 되었으며, 조선 후기에 서양의 천주교...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문재림의 문집. 문재림(文在琳)[1789~1848]의 자는 이서(而瑞), 호는 죽파(竹坡)이다. 문재림의 현손(玄孫) 문병숙(文炳淑)이, 실화(失火)로 인해 없어진 선조의 유고(遺稿)를 원근 각지의 문집에서 찾아내어 1974년에 『죽파유고(竹坡遺稿)』로 간행하였다. 서문은 최숙민(崔琡民)이 쓰고 발문은 종증손(從曾孫) 원근(愿根)과 문병숙이 썼...
-
근대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영호(永好), 호는 수당(修堂). 처음에는 호를 ‘신계(新溪)’라고 하였다가, 자신을 수양하는 데 더욱 힘쓰겠다는 뜻을 담아 수당이라 하였다. 태안군수(泰安郡守) 모산(茅山) 최기필(崔琦弼)[1562~1593]의 10세손이며, 익찬(翊贊) 죽당(竹塘) 최탁(崔濯)[1598~1645]의 9세손이다. 5대조는 경암(景菴) 최동욱(崔...
-
조선 후기와 개항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처음의 자는 원칙(元則)이었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면서 치장(穉章)이라 했으나 처음의 자가 널리 알려져 그대로 썼다. 호는 계남(溪南), 초명은 최유민(崔有民). 전주 최씨는 최아(崔阿)를 시조로 삼는데, 그의 아들 최용생(崔龍生)이 경상도안찰사로서 원나라 사신에게 미움을 받아 사천(泗川)에 거주하면서부터 경상도에...
-
옛날부터 진주에서 이름난 마을을 꼽을 때 “첫 번째가 안계(安溪)요, 두 번째가 원당(元堂)이요, 세 번째가 사월(沙月)이다.”라고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안계마을이 진주목(晉州牧)에 속했기 때문에 진주의 으뜸가는 명촌(名村)으로 일컬어졌던 것이다. 안계마을이 그런 명성을 얻은 것은 풍경이 수려하고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곳이기 때문이다. 『옥종면지...
-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와 학맥에 관해 서술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간적 범위를 어디까지로 제한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유학자의 정의를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므로 위의 두 가지 범위와 기준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하동의 유학자를 규정하였다. 첫째, 시간적 범위는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은 조선의 건국으로부터 그 운명이 다하는 시점인 개항기에...
-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이택환의 문집. 이택환(李宅煥)[1854~1924]의 자는 형낙(亨洛), 호는 회산(晦山)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에 살았다. 『회산집(晦山集)』은 1920년에 간행되었으나,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이 없어서 확실한 간행 경위를 알기 어렵다. 12권 6책의 목활자본(木活字本)이며, 표제(表題)는 회산집(晦山集), 판심제(版心題)는 회산선생문집(晦山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