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경찰서
-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국가의 감독 아래 법령에 정해진 업무를 처리하는 기관. 공공 기관은 기관 및 단체 중 공공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공조직을 말하며 사행정 또는 사조직과 구분된다. 또한 시민 사회단체, 민간단체, 사설 기관과도 구분되며 공공 서비스와 공공 재화를 생산하는 국가 행정 기관 및 지방 자치 단체와 각 급 학교, 정부 투자 기관, 특수 법인이 이에 속한다. 헌법상 입법...
-
1949년 6월 좌익 인물들을 전향시켜 별도로 관리하기 위해 경상남도 하동군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국민보도연맹을 조직한 사건. 국민보도연맹[약칭 보도연맹 혹은 보련]은 이승만(李承晩) 정권이 정권 유지를 위해 고안해낸 좌익 포섭 단체였다. 조직 결성의 대외적 명목은 “개선의 여지가 있는 좌익 세력에게 전향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지만 이승만 정권이 보련을 만든 진정한 목적은 좌익...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성(江城). 호는 은파(隱坡). 할아버지는 문영국(文永國)이고, 아버지는 문욱동(文勗東)이며, 어머니는 강청등(姜淸登)이다. 부인은 벽진 이씨(碧珍李氏)이며, 자녀로 5남 1녀가 있다. 문공학(文孔學)은 1897년 9월 27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1212번지에서 문욱동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학의 기본서를...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하동군 등에서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을 위해 전개되었던 민족 운동. 사회주의 운동은 노동자 중심의 사회 건설을 위한 계급 운동으로 출발하였지만, 식민지 민중에게는 민족 해방 운동으로서도 기능한 사회 변혁 운동이었다. 우리 사회에 사회주의 사상이 전래된 이후 민족 해방과 노동자 중심의 사회 건설을 위한 사회 변혁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1925년 조선공산당의 창립...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의 역사. 하동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선사 시대와 그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까지 하동 지역에서 확인된 선사 시대의 유적은 하동군의 동북쪽 덕천강 유역과 서남쪽 섬진강 유역 일대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하동의 역사는 수습된 유물을 통해서 보면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러 작은 정치체가...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의 역사. 하동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선사 시대와 그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까지 하동 지역에서 확인된 선사 시대의 유적은 하동군의 동북쪽 덕천강 유역과 서남쪽 섬진강 유역 일대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하동의 역사는 수습된 유물을 통해서 보면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러 작은 정치체가...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염삼섭(廉三燮)은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서 태어났다. 하동공립보통학교 재학 중, 서울에서 3·1 운동이 일어나고 얼마 후인 3월 18일 하동읍에서 만세 사건이 일어나는 등 만세 운동의 기운이 고조되자 같은 학교 학생 박문화(朴汶和), 정점금(鄭点金), 전석순(全錫舜) 등과 함께 비밀 회합을 열고 의거를 협의하였다. 그들은 하동 지역의...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하여 경상남도 하동군을 포함한 한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6·25 사변이라고도 하며,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韓國戰爭)[Korean War, 일부에서는 Korean Civil War라고 주장하기도 함]이라고 한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조인되었고, 현재까지 휴전선에 의해 남북이 분단된 채 휴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1950년 6월...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에 속하는 법정리. 읍의 중심지 또는 읍기(邑基)가 있던 곳이므로 읍내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덕양면의 읍동(邑洞)·교동(校洞)·선량동(鮮良洞)이 통합되어 하동면 읍내리가 되었고, 하동읍의 중심지로 1745년(영조 21) 두곡리 고동골에서 항촌(項村)[지금의 서동]으로 구학당(龜鶴堂)이 옮겨 오고, 1937년 하동읍사무소가 옮겨 오면서 하동...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기종(李起淙)으로도 불리는 이강률(李康律)은 1902년(고종 39) 1월 6일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 111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화개면 장날,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과 학생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 등의 주도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이정수(李汀秀)·이정철(李正哲)·임만규(林萬圭) 등과 함께 참가하였다...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경호(李璟鎬)[혹은 李敬鎬로도 씀]는 1890년(고종 27) 6월 17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291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했던 이경호는 1910년 경술국치의 비보를 듣고 3일간 식음을 전폐하였다. 그리고 붉은 글씨로 ‘항일 투쟁’, ‘일본 타도’를 써서 벽에 붙여두고 항일 투쟁의 의지를 다졌다. 이후 성천...
-
일제 강점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범호(李範鎬)는 1883년(고종 20) 2월 10일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에서 태어난 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555번지로 이주하여 살았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중 1919년 3월 정낙영(鄭洛榮)·정재운(鄭在雲)·정희근(鄭禧根) 등과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3월 18일 하동읍 장날 운집한 군중 앞에서 「대한독립선언서」...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원태(李源泰)는 1894년(고종 31) 8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덕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이홍식(李弘植)·정재백(鄭在伯)·정재운(鄭在雲) 등과 하동군 진교면 장날 군중 1천여 명에게 태극기를 나눠 주고 선두에서 군중을 이끌며 진교의 경찰관 주재소까지 진출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에 분노한 시위...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기(李載基)는 1874년(고종 11) 5월 2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이재기는 청년 시절 일본을 다녀온 후 일본의 침략을 예견하고 스스로 심신을 단련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19년 3월, 같은 동리의 문공학(文孔學)·문영빈(文永彬) 등과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3월 21일 하...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정수(李汀秀)는 1888년(고종 25) 9월 3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화개면 장날,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 학생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 등의 주도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이정수는 이강률(李康律)·이정철(李正哲)·임만규(林萬圭) 등과 함께 참가하였다. 이날 화개면 주민과...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인(李宗仁)은 1869년(고종 6) 6월 15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906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이종인은 박영묵(朴永默)·정상정(鄭相正)·정의용(鄭宜鎔)·추홍순(秋鴻順) 등과 동지 33명을 규합하여 일신단(一身團)이란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약하였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고전면 주교리...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홍식(李弘植)은 1896년(고종 33) 3월 28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이원태(李源泰)·정재백(鄭在伯)·정재운(鄭在雲) 등과 하동군 진교면 장날 군중 1천여 명에게 태극기를 나눠 주고는 선두에서 군중을 이끌며 진교의 경찰관주재소까지 진출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에 분노한 시위...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봉규(林奉圭)로도 불리던 임만규(林萬圭)의 본관은 나주(羅州)로, 1893년(고종 30) 1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화개면 장날,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 학생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 등의 주도로 전개된 1차 만세 시위에 임만규는 이강률(李康律)·이정수(李汀秀)·...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봉규(林奉圭)로도 불리던 임만규(林萬圭)의 본관은 나주(羅州)로, 1893년(고종 30) 1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화개면 장날,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 학생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 등의 주도로 전개된 1차 만세 시위에 임만규는 이강률(李康律)·이정수(李汀秀)·...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낙영(鄭洛榮)은 1879년(고종 16) 3월 22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666번지에서 태어났다. 인재를 기르는 것이 국권 회복의 첩경이라 생각하여 1909년 4월 19일 현산학교(懸山學校)를 설립하고, 이후 약 8년간 교사·교감·교장을 역임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양력 과세와 단발 등 주민 계몽에도 앞장섰다. 또한 충의공...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남시(鄭南時)의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1885년(고종 22) 9월 19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궁항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정남시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궁항리 밭에서 대성통곡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누가 죽었기에 그리 통곡하는가?” 하고 물으니, “조선 천지가 모두 죽었다.”고 답하였다....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상정(鄭相正)의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선중(善中), 호는 석정(石亭)이다. 1878년(고종 15) 10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1103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정상정은 지리산에서 의병 활동을 하던 중 의병대장 유명국(柳明國)의 명으로 노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귀향하였다. 1919년 3월 박영묵...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성기(鄭成基)는 1886년 4월 23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에서 태어났다. 재종인 정섬기, 정섬기의 자형인 이경호와 함께 일가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1943년 6월 11일에 작고하였다. 정성기는 1919년 3월 하동군 양보면 일신학교 교원 정섬기(鄭暹基)의 발의로 정세기(鄭世基)·이경호(李璟鎬)·정이백(鄭伊伯) 등과 하...
-
개항기 하동 지역에 은거했던 의병. 최제학(崔濟學)은 1906년부터 최익현(崔益鉉)[1833~1906] 막하의 12의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항일 의병 활동을 하였다. 최익현은 이항로(李恒老)[1792~1868]의 문인으로 개항기의 대표적인 위정 척사론자이다. 최제학은 1882년(고종 19) 전라북도 진안군 목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탐진(耽津). 자는 중열(仲悅), 호는 습재(習齋...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추모탑. 충혼탑(忠魂塔)은 6·25 전쟁 당시 조국을 수호하다 목숨을 바친 호국 영령을 추모하고, 그 얼을 후손에게 길이 전하기 위하여 1971년 8월 10일 건립하였다.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갈마산 하동공원 안에 위치한다. 기단부와 화강석을 쌓아 올린 3층탑으로, 1층과 2층은 3단, 3층은 13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3층 가운데에 한글로 ‘...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전기 누각. 풍화루(風化樓)는 하동향교(河東鄕校)의 출입문이자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는 2층 누각이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 기관이다. 하동군 하동 읍내 하동경찰서 뒤쪽 향교1길을 따라 하동향교 방면으로 가다 보면 약 200m 지점에 갈마산이 자리하는데, 풍화루는 갈마산 기슭...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하동군 관할 치안 행정 기관. 하동경찰서는 경상남도 하동 지역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사회 질서 및 치안 유지를 위하여 설립하였다. 1946년 6월 미군정하 제7관구 제7구 경찰서로 설립되었으며 1949년 2월 23일 대통령령 제58호로 하동경찰서로 개칭되었다. 1953년 4월 30일 법률 제282호로 지리산 공비 토벌을 위해 서남지구...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하동군 관할 치안 행정 기관. 하동경찰서는 경상남도 하동 지역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사회 질서 및 치안 유지를 위하여 설립하였다. 1946년 6월 미군정하 제7관구 제7구 경찰서로 설립되었으며 1949년 2월 23일 대통령령 제58호로 하동경찰서로 개칭되었다. 1953년 4월 30일 법률 제282호로 지리산 공비 토벌을 위해 서남지구...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정기 시장. 하동시장은 경상남도 하동군의 읍 소재지에 위치해 있으며, 하동 군민들의 의식주에 필요한 물품과 재료들을 사고파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역의 장소다. 하동은 지리적으로 지리산과 남해 그리고 섬진강에 연접해 있기 때문에 산, 물, 들판에서 나는 모든 산물들이 풍부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동시장에서는 지리산 임산물과 농작물,...
-
해방 직후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설치된 민간 행정 기구.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조선인민공화국으로 재편되자 지방의 건국준비위원회 지부도 인민위원회로 개편되었으며 일시적이지만 관공서를 접수하여 실제 행정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건국준비위원회 경남도지부도 1945년 10월 5일 경남도 인민위원회로 개편되었으며 경상남도 각 지역에서도 인민위원회가 결성되었다. 당시 경상남도에는 1도 3시 19...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한국미술협회 산하 하동 지부. 한국미술협회 하동지부는 하동 지역의 미술 문화 발전을 도모하고 미술 인구 저변 확대에 공헌하며, 회원 상호간의 협조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2003년 8월에 조직 결성을 위하여 임시 총회를 개최하고 정관 및 서류를 구비하여 한국미술협회에 지부 설립을 신청하였으며, 2003년 9월 공식 인준을 받아 미술 11명,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