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군 고전면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 있는 3·1 독립 만세 기념비. 하동군 고전면과 금남면 청년들은 애국에 뜻을 두고 일신단(一身團)을 조직하였는데, 이는 민족 대표 33인을 본받아 만든 항일 단체였다. 일신단은 1919년 4월 6일 고전면 주교리의 일명 배다리장터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다음날 일본 경찰과 헌병들이 총검으로 출동하자, 일신단원들은 노약자들을 하동군 고전면의...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계천리에 있는 재래시장. 계천시장은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계천리 영천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영천은 원래 곤양군 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계천리로 병합되어 하동군 남면으로 개편되었다가, 1933년에 금남면으로 편입되었다. 계천시장은 옆으로 하동~남해 간 국도 19호선이 지나고 있고, 하동군 금남면과 하동군 고전면의 경계를 이루는 주교천...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계천리에 있는 재래시장. 계천시장은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계천리 영천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영천은 원래 곤양군 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계천리로 병합되어 하동군 남면으로 개편되었다가, 1933년에 금남면으로 편입되었다. 계천시장은 옆으로 하동~남해 간 국도 19호선이 지나고 있고, 하동군 금남면과 하동군 고전면의 경계를 이루는 주교천...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있었던 정기 시장. 경상남도의 서남부인 하동군 남부에 위치한 고전시장은 남해고속도로와 인접한 하동군의 교통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하동군 고전면의 서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있는 섬진강과도 가까운 곳이었다. 『고전면지(古田面誌)』에 의하면 1960년과 1970년대에는 연간 판매고가 하동시장 다음으로 높았다고 한다. 그동안 고전시장은 1일·...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에 있는 사회복지 시설. 고전면 복지회관은 하동군 고전면 관내 각종 기관 단체들의 사무실이 위치해 있어 주민 자치 활동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소외된 노인들의 복지 서비스 제공을 위하여 경로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주민들의 여가 선용 및 자기 계발을 위하여 국선도 교실, 댄스 스포츠 교실, 가요 교실, 장구 교실, 요가 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으...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고려 시대 성곽. 금오산성(金鰲山城)의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성곽의 형태와 시대적 특수성을 감안해 볼 때 고려 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왜구들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지하기 위하여 쌓은 성곽으로 전해진다. 지리산[1,915m]의 남주지맥(南走枝脈)으로 하동군의 동쪽에 있으며 남해 연안에 자리 잡은 금오산[849m] 정상에 위치...
-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있는 사람이나 차가 다니는 비교적 넓고 큰 길. 일반적으로 도로는 고속 국도, 일반 도로, 특별시도, 지방도, 시도, 군도 등으로 구분된다. 2011년 현재 하동군 관내에는 1개의 고속도로[고속국도 10호선, 일명 남해안고속도로], 3개의 국도[국도 2호선, 국도 19호선, 국도 59호선], 6개의 지방도[지방도 1002호선, 지방도 1003호선, 지방도 10...
-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영석·박영창·박첩동 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밀양 박씨는 박혁거세를 원조(元祖)로 하고, 경명왕(景明王)[917~924]의 첫째 아들 박언침(朴彦忱)[밀성대군]을 시조로 한 우리나라 고유한 성씨이다. 밀양 박씨는 고려 중기 이후 크고 작은 분파(分派)를 이루고 번성하여 많은 지파(支派)가 존재한다. 하동 지역의 밀양 박씨는 규정공파(...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성천리 고인돌군은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 입구 삼일 독립운동 의거 기념비(三一獨立運動義擧紀念碑) 주변에 위치한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고전천 제방 공사를 할 때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남성마을에서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는 7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남아 있는 덮개돌[上石]...
-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우리나라 재래시장은 일반적으로 보부상과 행상 중심의 삼일장 내지는 오일장 형식으로 출발하여 오늘의 정기 시장 및 상설 시장으로까지 발전해 왔다. 이렇게 형성된 시장은 주로 교통이 편리하거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중심으로 형성이 되었으나, 근래에 와서는 전통적인 재래시장의 규모는 줄어들고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상설 가게와 같은...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의 역사. 하동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선사 시대와 그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까지 하동 지역에서 확인된 선사 시대의 유적은 하동군의 동북쪽 덕천강 유역과 서남쪽 섬진강 유역 일대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하동의 역사는 수습된 유물을 통해서 보면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러 작은 정치체가...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의 역사. 하동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선사 시대와 그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까지 하동 지역에서 확인된 선사 시대의 유적은 하동군의 동북쪽 덕천강 유역과 서남쪽 섬진강 유역 일대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하동의 역사는 수습된 유물을 통해서 보면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러 작은 정치체가...
-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해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홍근호가 지은 『열부정려기(烈婦旌閭記)』에 “부인의 행실은 죽음으로써 열(烈)을 나타내니, 타고난 천성(天性)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자로 ‘열(烈)’의 뜻은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열녀란 ‘세차고 사납고 굳세며 정열을 지키기 위하여 욕망을 불태워 없애고, 빛나고 밝고 아름다운 큰일을...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석성. 전도리 성지(錢島里城址)의 건립 경위를 알 수 있는 자료는 현재 알려져 있지 않다. 섬진강 하구의 물길을 서편으로 한 천연의 요새에 자리하여 외부 침입에 대비해 축조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섬진강 하구 동안의 구릉, 즉 고남초등학교 북편 야산에 위치한다. 동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4㎞ 정도 떨어진 곳에 하동...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흥(咸興).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구원군에 소속되어 장수로 활약한 추수경(秋水鏡)[1530~1600]의 9세손이다. 부인은 평산 신씨(平山申氏)이며, 그 사이에 아들은 없고 딸만 둘을 두어 양자를 들였다. 추홍순(秋鴻順)[1894~1959]은 1894년 3월 12일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232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매...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있는 3·1 독립 만세 기념비. 하동군 고전면과 금남면의 애국 청년들이 애국 애족의 뜻을 같이하여 일신단 33명을 조직하였는데, 이는 민족 대표 33인을 본받아 만든 항일 단체이다. 일신단은 1919년 4월 6일 고전면 주교리 일명 배다리장터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신단원들은 이튿날 아침 노약자들을 하동군 고전면의 지소마을 뒷산으로 피신...
-
1704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조선 시대에 들어 하동의 읍치는 자주 변경되었으나, 읍격(邑格)에는 큰 변화가 없이 이어져 오다가 18세기 접어들어 읍의 규모와 읍격에 변화를 겪었다. 1702년(숙종 28) 하동 읍민들이 섬진강 일대를 관문으로 삼을 것을 호소하자, 진주목의 악양·화개·진답·적량의 4개 면을 임금의 윤허를 받아 하동으로 분속(...
-
전통 시대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섬긴 자녀. 전통 시대에 경남 하동 지역에서 지극한 효행을 실천한 효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따라서 그와 같은 효자 중에서 특출한 행적이 있어 나라로부터 정려가 내려지거나 신이한 기적이 일어나 사람들에 의해 칭송되어진 사실들을 우선으로 서술하였다. 하동 지역 효자들이 행한 효행의 행적을 중심된 사건에 따라 나...